‘석유화학’ 외길 달려 어깨 겨눈 ‘화공 동문’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1.12.04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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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쌍벽’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김반석 LG화학 부회장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 ⓒ 뉴스뱅크
정범식 호남석유화학 사장과 김반석 LG화학 부회장은 서울대 화공과 2년 선후배 사이이다. 정사장이 67학번이고, 김부회장이 69학번이다. 대학 졸업 후에도 40년 가까이 ‘석유화학’ 외길만 걸었다. 현재는 시장 1위와 2위 회사의 CEO로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정사장은 지난 2007년 3월 호남석유화학 대표에 취임했다. 당시 회사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2천6백억원과 2천7백억원이었다. 정사장은 불과 3년여 만에 회사의 외형을 네 배 가까이 성장시켰다. 지난해 호남석유화학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7조8천9백억원과 9천4백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주가는 7만원대에서 34만원대로 상승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주가가 40% 가까이 급락했다. 하지만 8월까지만 해도 이 회사 주가는 50만원대에 육박했다.

호남석유화학은 롯데그룹 계열사이다. 정사장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인연이 깊다. 신회장은 지난 1990년 그룹 경영에 처음으로 합류했다. 신회장이 한국에서 처음 출근한 회사가 호남석유화학이었다. 그것도 정사장의 직속 상사였다. 당시 정사장은 기획부장으로 근무하며 기획담당 상무로 부임한 신회장을 보필했다. 이런 이유로 정사장은 지난 2월 새롭게 출범한 ‘신동빈호’의 핵심 측근으로도 꼽힌다.

3분기 두 사람 모두 ‘사상 최대 실적’ 기록

김반석 LG화학 부회장 ⓒ LG화학 제공
김반석 LG그룹 부회장 역시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다. ‘직업이 CEO’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룹 내 화학 계열사를 두루 거쳤다. 지난 2006년 LG화학 대표에 취임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상 최대 실적을 해마다 갈아치웠다.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영업이익 2조원대를 돌파했다. 주가는 5만원대에서 34만원대로 여섯 배 이상 성장했다. LG그룹은 최근 ‘전자 3인방’의 실적 부진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는 휴대전화 사업이 부진하면서 영업이익이 크게 감소했다. 지난 3분기에는 영업 적자로 돌아섰다. 주가 역시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9월 오너 일가인 구본준 부회장이 취임했지만 실적이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LG디스플레이는 시장 악화로 4분기 연속 영업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김반석 부회장의 행보가 그룹 내에서 주목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증권가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경기 침체에도 LG화학은 꾸준히 실적을 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만간 그룹의 간판 기업이 바뀔 수도 있다”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두 사람은 지난 3분기에 나란히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롯데와 LG그룹 계열사 중에서도 최고 성적이다. LG화학의 경우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이 2조3천3백50억원을 기록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영업이익 3조원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호남석유화학도 올해 사상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원을 돌파했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1조2천8백49억원. 주력 계열사인 롯데쇼핑을 미세한 차이로 앞서면서 그룹의 핵심 사업군으로 부상하고 있다. 때문에 두 사람의 향후 경쟁 구도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되고 있다.

우선, 회사의 외형 면에서는 김반석 부회장이 정범식 시장을 앞선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11월30일 기준으로 LG화학의 시가총액은 23조9천1억원을 기록했다. 9조8천4백47억원인 호남석유화학을 두 배 이상 앞서고 있다. 매출이나 영업이익 역시 두 배 정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격차는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7년 네 배 정도 차이를 보이던 외형이 최근 두 배 이내로 좁혀졌다. 전문가들은 정사장과 김부회장의 경영 스타일이 다른 것을 주요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정사장은 취임 이후 줄곧 규모의 경제를 추구해왔다. 신사업보다 정통 석유화학 업종에 주안점을 두면서 M&A(인수·합병)로 덩치를 키워왔다. 회사 관계자는 “(정사장은) 글로벌 톱클래스가 되기 위해서는 덩치를 더 키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정사장도 평소 “석유화학업계의 포스코가 되겠다”라는 뜻을 여러 차례 비쳤다.

정사장은 ‘정통’ 고집…김부회장은 ‘전략가’

그동안 굵직굵직한 M&A도 여러 차례 성사시켰다. 지난해 11월 말레이시아의 유화 기업인 타이탄을 인수했다. 인수 규모만 1조5천억원에 달하는 ‘빅딜’이었다. 자회사인 케이피케미칼을 통해서도 영국의 고순도 테레프탈산(TPA) 공장을 인수했다. 공격적인 M&A와 공장 증설로 올해 신용등급 역시 LG화학과 같은 ‘AA+’로 올라섰다. 송수범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타이탄 인수로 차입금이 늘어났지만, 재무 안정성은 여전히 우수한 편이다.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나 계열사 지분 등을 감안할 때 문제는 없을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김반석 부회장은 미래 가치를 중시하는 ‘전략가’로 꼽힌다. 3년째 적자를 기록했던 2차전지 사업을 과감히 지원했다. 본업과 함께 새로운 먹거리를 꾸준히 발굴했다. LG화학의 매출에서 2차전지나 LCD 유리기판 등 IT 소재 비중이 25%에 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LG화학은 지난해 7월 미국 미시간 주 홀랜드에서 LG화학 배터리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당시 기공식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의 ‘러브콜’도 잇따르고 있다. 유럽의 볼보와 르노, 미국의 GM과 포드, 상용차 업체인 이튼 등 현재까지 총 10여 곳이 LG화학에서 리튬이온 배터리를 공급받고 있다. 이길호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최근 대규모로 투자 중인 2차전지나 LCD 유리기판에서 중·장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기대된다. 국내외 업체들과 장기 계약이 체결된 만큼 사업 초기의 리스크도 작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두 회사의 주가 역시 최근 극심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매출에서 IT 소재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IT가 활황이었던 2009년까지만 해도 주가가 수직 상승을 거듭했다. 2009년 LG화학의 주가 상승률은 2백4.26%로 호남석유화학(83.03%)을 압도했다. 2010년 들어서는 양상이 달라졌다. IT 시장이 주춤하면서 LG화학의 주가는 59.82% 상승했다. 같은 기간 호남석유화학은 1백93.5%나 급등했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불투명한 IT 전망을 감안하면 정통 화학업체인 호남석유화학이 유망해 보인다. 하지만 LG화학은 호남석유화학이 하는 사업에 IT라는 성장 발판을 갖고 있어 더 유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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