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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행이냐, 진화냐 두 얼굴의 종편

4개 방송 프로그램 분석 / 같은 방송사 드라마에서도 극과 극 성향 드러내는 등 정체성 ‘애매’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ㅣ 승인 2011.12.12(Mon) 04:3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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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인수대비>. ⓒ JTBC 제공
종편이 방송을 시작하는 첫날, 많은 일이 벌어졌다. 종편 채널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모셔와(?) 프로그램 모두에 세워두었다. 종편 채널이 제아무리 보수 언론의 모태에서 나왔다고 해도 너무 노골적으로 냄새가 났다. 시선을 잡아끌기 위함이었는지 채널A는 난데없이 강호동이 어린 씨름 선수였을 때 우연히 가게 된 야쿠자 조직의 회합 장면을 특종으로 내보냈다. ‘학생 강호동’이 씨름협회 부회장과 감독이 가자고 해서 간 자리를 마치 야쿠자와 연루된 것처럼 보도했다. 한편 김연아가 축하 인터뷰에 나간 것을 가지고 앵커가 된 것처럼 과장 보도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TV조선은 10여 분간이나 화면이 분할된 채 나가는 방송 사고를 겪기도 했다. 이것은 선정에서부터 방송까지 너무 급하게 진행되면서 생겨난 부작용이다. 심지어 시험 방송 기간조차 거치지 않은 방송이니 사고는 당연히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방송 프로그램들의 성향이나 질은 어떨까. JTBC의 주말 사극 <인수대비>는 그 첫 장면에서부터 방송의 성향을 드러냈다. 100여 명의 신하들이 궁궐에서 문종에게 절을 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사극은 요즘의 사극과는 사뭇 다르다. 현재의 사극은 왕보다는 민초를 다루고, 배경도 궁궐보다는 저잣거리이기 일쑤이다. 하지만 <인수대비>는 첫 장면에 왕과 신하가 도열해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 사극이 가진 색깔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정통 사극이라고 불렀던 ‘왕조 사극’으로의 회귀이다. 왕과 신하 그리고 그 사이에서 “뭬야”라며 표독스럽게 눈을 치켜뜨는 여인네의 암투가 주 스토리가 되는 사극. 이 뻔한 스토리의 사극은 ‘인수대비’라는 수없이 많은 사극의 소재가 되었던 인물을 세움으로써 새로운 상상력의 틈입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인수대비>는 마치 MBC가 지난 세기에 방송했던 <조선 왕조 오백년>의 재현처럼 보인다. 과거의 대본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만 같은 이야기의 흐름과 중간 중간 마치 교과서처럼 내레이션으로 역사를 소개하는 스타일은 시간이 거꾸로 흘러간 듯한 인상을 준다.

사극이 이제 상상력으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현재, 왜 이런 퇴행적인 사극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이 사극이 종편 출범 후 첫 1%의 시청률을 넘긴 콘텐츠라는 것은 그래서 꽤나 상징적으로 여겨진다. 드라마에서도 사극이라는 장르는 이제 무언가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새로운 것을 보여주어야 마땅한 장르로 대중에게 인식되어 있다. 하지만 <인수대비>는 정반대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 상상력이 헤집어놓은 역사(그것도 왕조 중심의 역사)를 복원하고 싶다는 듯이. 이 퇴행은 혹시 종편이 가진 보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같은 JTBC에서 방영된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이하 <빠담빠담>)를 보면 또 생각이 달라진다. 노희경 작가와 <아이리스>를 연출한 김규태 감독이 손을 잡고 만든 이 작품은 지상파를 통틀어 보더라도 대단히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시간 여행이라는 판타지적인 장치를 가져와, 마치 인간을 탐구하는 듯 진지하면서도 정교하게 스토리를 만들어놓은 노희경 작가의 저력이 느껴진다. 잘 짜인 스토리에 김규태 감독 특유의 영화 같은 연출이 덧붙여지고 드라마에서의 모습이 낯선 정우성의 인물에 빙의된 연기가 삼박자를 이루는 이 작품은 공중파 드라마보다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핵심인 ‘재미’ 못 주면 시청자 외면은 불 보듯

   
JTBC 드라마 <빠담빠담… 그와 그녀의 심장 박동 소리>. ⓒ MI 제공
물론 종편 드라마라고 무슨 색깔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인수대비>를 보면서 그 보수성을 떠올렸던 시청자라면 <빠담빠담>이 보여준 진화된 드라마의 모습에 살짝 놀라움을 가졌을 것이다. 도대체 종편 프로그램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한편 채널A에서 방영된 <이수근의 바꿔드립니다>는 어딘지 <일밤> 같은 프로그램에서 이미 했었던 코너에서 포맷을 약간 바꾼 듯한 인상을 준다. 일반인의 집에 있는 중고 물품을 놓고 가족이 한바탕 퀴즈를 벌이고 문제를 맞추면 그 중고 물품을 신상품으로 바꿔주는 이 프로그램은 전형적인 퀴즈쇼의 형식에 버라이어티쇼적인 요소를 덧붙였다. 과거 <일밤>이나 <느낌표>에서 했던 공익 버라이어티쇼를 닮아 있지만 분명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답 맞히기에 틀리면 그 집의 중고 물품을 가져간다는 규칙으로, 기존 공익 버라이어티쇼가 갖고 있는 일방적인 느낌을 상쇄시킨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어디선가 본 듯한 형식은 종편처럼 이제 막 시작하는 채널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으로 세우기에는 어딘지 부족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채널A의 또 다른 대표 프로그램인 <불멸의 국가대표>는 한때 대한민국을 주름잡던 스포츠 스타가 모여서 자신의 종목이 아닌 다른 종목의 선수와 대결을 벌이는 전형적인 스포츠 버라이어티라고 말할 수 있다. 스포츠 스타를 한자리에 모았다는 참신성은 분명히 있지만, 이 프로그램 역시 그 전형성의 틀을 깨지는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종편처럼 새롭게 시작하는 채널이라면 지상파에서 보지 못한 좀 더 실험적이고 도발적인 예능을 기대하게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 기대감에 못 미치는 상황이다.

중앙 종편의 <인수대비>와 <빠담빠담>이 퇴화와 진화의 서로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종편이 가진 정치성이 프로그램의 보수성으로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또 채널A의 <이수근의 바꿔드립니다>나 <불멸의 국가대표>처럼 종편의 예능이 지상파 예능을 반복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의 색깔일 것이라고 예단하기에도 너무 이르다. 그렇다면 도대체 종편 프로그램들은 향후 어떤 방향성을 보일까.

많은 이들이 종편을 가지고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댄다. 당연한 일이다. 종편은 그 태생이 보수 언론이기 때문이고 그 탄생 과정 역시 친정부적인 입김이 작용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송사가 그런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그 속을 채우고 있는 방송 프로그램이 같은 방향성을 보일 것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특히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처럼 제작자의 색깔이 확실히 드러나는 장르는 더더욱 그렇다. 외부에서 수혈되는 드라마나 예능은 그래서 종편 방송사와는 다른 결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빠담빠담>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실 방송의 핵심은 재미이다. 대중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 인식시킬 수 있는 것이 결국 방송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그런 점에서 종편의 자기 존재 증명은, 종편 시작과 함께 비판을 가져온 ‘박비어천가(종편이 일제히 보여준 박근혜 인터뷰 방송)’가 아니라, 자신의 방송이 얼마나 재미있는가를 증명하는 일이다. 잘 만든 한 편의 드라마와 한 편의 예능이 방송사의 생존을 가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대중들은 이 재미있는 드라마와 예능 속에 담겨질 가능성이 있는 정치성을 견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결국 대중이 추구하는 재미 속에는 그 자체로 정치성이 들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보수적인 어떤 콘텐츠는 그래서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고 대중에게 외면받게 될 것이다. 항간에는 종편이 진보적인 드라마나 예능으로 보수적인 방송사의 성향을 물타기한다고 하지만, 어디 대중이 그렇게 단순한가. 대중은 재미라는 방식으로 거꾸로 방송사의 콘텐츠 성향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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