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뜨자 전열 가다듬는 큐브·쏘울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1.12.25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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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카’ 새 시장 열리면서 치열한 경쟁 예고…각각 차별화된 디자인과 실용성으로 공략 나서

지난 12월 열린 ‘2011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기아차 전시 공간에 선보인 ‘레이 디스코’. ⓒ 기아자동차

국내 박스카 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다. 원조 격인 큐브(닛산)가 최근 쟁쟁한 수입차 메이커들을 제치고 판매율 1위를 기록했다. 2천만원대의 수입차가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례적이다. 기아차 역시 새로 출시한 레이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출시한 지 한 달 만에 8천대의 사전 계약을 체결했다. 다음 자동차의 인기 모델 순위에서도 레이가 1위를 차지했다. 세단과 SUV(스포츠 유틸리티 차량) 위주의 국내 자동차 시장에 새로운 소비 트렌드가 형성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박스카의 인기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한다. 소비자 트렌트 분석 전문 업체인 스카이벤처의 지성복 선임연구원은 “기존 경차의 경제성에 디자인과 실용성을 접목한 것이 박스카의 최대 장점이다. 새로운 차를 원하던 소비자의 갈증을 해소했다는 점에서 당분간 인기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닛산 큐브, ‘토종’ 쏘울의 자존심에 상처 입혀

2008년 출시되어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기아차 쏘울. ⓒ 기아자동차
닛산이나 기아차측도 예상치 못한 반응에 고무된 분위기이다. 닛산은 지난 2011년 8월부터 3세대 큐브를 국내에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출시 3개월 만에 1천대 이상이 팔렸다. 특히 11월에는 전달보다 1백25% 늘어난 7백73대가 팔렸나갔다. 코란도나 SM7, 에쿠스 등 국내 차량의 판매량에 근접한 수치이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출시 전만 해도 월 3백대 정도를 목표로 잡았다. 그런데 실제 판매 대수가 예상치를 넘어서면서 내년 목표 역시 소폭 수정했다”라고 귀띔했다.

토종 박스카 1호인 ‘쏘울’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쏘울은 그동안 해외에서 큐브를 멀찌감치 앞서왔다. 기아차는 지난 2011년 1~10월 미국에서 8만5천78대의 쏘울을 팔았다. 같은 기간 큐브는 1만3천8백50대를 파는 데 그쳤다. 캐나다 시장에서도 쏘울이 선전하고 있다. 환율 효과를 통해 형성된 가격 경쟁력으로 큐브를 크게 앞서고 있다. 한국에서는 반대였다. 큐브 돌풍이 불면서 쏘울의 판매량이 급락했다. 지난 2011년 9월과 10월에만 30% 이상 판매율이 하락했다. 지난 2008년 처음 국내에 출시된 쏘울은 월 1천5백대씩 꾸준히 팔렸다. 하지만 9월 들어 1천3백28대로 판매가 주춤했다. 10월에는 1천2대까지 하락했다. 기아차측은 쏘울의 저조한 판매가 내수 시장 위축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비슷한 급의 준중형 차들이 대부분 플러스 상승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기아차는 11월 쏘울의 동생 격인 ‘레이’를 선보였다. 이 차는 기아차의 박스카인 쏘울의 계보를 잇고 있다. 개발에만 4년간 1천5백억원을 투입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쏘울보다 박스 형태인 큐브에 가까웠다. 특히 조수석 뒷문을 슬라이딩 방식으로 열게 하면서 시장에서 주목되었다. 인터넷에는 ‘레이를 최대한 빨리 받는 법’ 등의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스카이벤처는 최근 SNS 분석 시스템을 통해 2주간 박스카 관련 VoC(고객의 소리) 분포 현황을 조사했다. 모니터링 결과 박스카와 관련된 VoC는 기아차의 레이가 80% 이상으로 압도적인 수치를 보였다. 쏘울과 큐브가 양분하던 국내 박스카 시장에 레이가 새롭게 등장한 것이다. 때문에 향후 큐브와 쏘울, 레이로 이어지는 ‘박스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에 관련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업계에서는 2011년 12월 판매량이 발표되는 2012년 초가 되면 전황의 윤곽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레이 출시에도 큐브의 판매량 증가가 지속될 경우 기아차는 또 한 번 씁쓸함을 삼킬 수밖에 없다. 반대로 큐브 구매 수요자들 중 상당수가 레이의 출시를 기다릴 수도 있다. 이 경우 큐브의 판매율이 하락하면서 업계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싸움에 빨려들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세 차량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큐브와 쏘울은 준중형차이다. 배기량이 각각 1천8백cc와 1천6백cc이다. 레이는 1천cc로 경차인 모닝이나 스파크(마티즈)와 동급이다. 최대 출력 역시 큐브와 쏘울은 각각 1백20마력과 1백40마력인 반면, 레이는 78마력이다. 차량 성능만 놓고 보면 큐브나 쏘울이 레이를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레이, 연비나 경차 혜택 등에서는 앞서나가

지난 8월 국내에 선보인 일본 닛산의 큐브. ⓒ 한국 닛산
하지만 연비나 경차 혜택을 고려하면 레이가 실용적이다. 레이의 연비는 17㎞/ℓ. 쏘울(15.7㎞/ℓ)이나 큐브(14.6㎞/ℓ)보다 경제적이다. 1천cc 미만 차량은 경차 혜택도 받는다. 차량 구입 시 취득세와 도시철도 채권 구입이 면제된다. 고속도로와 혼잡 통행료, 공영 주차료 등의 감면 혜택도 있어 이익이라는 평가이다. 물론 레이의 가격에 대해 일부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레이의 경우 뒷좌석의 슬라이딩 기능이나 내비게이션을 장착할 경우최대 1천7백45만원에 달한다. 동급 차종인 모닝이나 스파크보다 5백만원 가까이 가격 차이가 난다. 경차임에도 버튼 시동 스마트키와 열선 시트, 스티어링 휠, 슈퍼비전 클러스터 등 차급을 뛰어넘는 편의 사양을 대거 적용한 탓이었다. 한편으로 안전성과 편의성을 높였다는 점에서 여성 고객들로부터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레이의 출현으로 인해 박스카라는 새로운 분야가 한국 시장에서 본격화되었다는 점이다. 내년 세계 경제를 감안할 때 관련 시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업계에서는 기대하고 있다. 이미 닛산은 내년도 판매율을 14.1% 올려잡았다. 닛산의 한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큐브는 여성들의 차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는 남녀 고객의 비율이 5 대 5로 비슷하다. 나이 역시 20대가 20%, 30대가 55%, 40대 이상이 25%로 고르게 분포되어 있는 만큼 꾸준한 상승세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아차 역시 내수 불황에도 레이의 선전에 기대를 하는 눈치이다. 레이의 본격 출시를 계기로 내수 판매의 하락세 역시 주춤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계약이 폭증하면서 출고가 늦어진 사례가 최근 거의 없었다. 레이의 경우 12월 초에 차를 신청해도 1월이 되어야 받을 수 있다. 레이 출시를 계기로 박스카 시장이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큐브와 쏘울, 레이 모두 차별화된 디자인과 실용성, 가격 경쟁력으로 무장하고 있다. 경차이면서 활용도 높은 레이를 선택할 것인가, 최저 가격 수입차인 큐브를 선택할 것인가.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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