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외길 ‘똥박사’가 일궈낸 ‘분뇨의 재발견’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1.12.25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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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오수·분뇨 처리에 획기적인 변화 이끈 박완철 KIST 책임연구원

<시사저널>은 2011년 올해의 인물 과학 부문에 박완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책임연구원(57)을 선정했다. 그는 분뇨 처리 연구와 실용화에 평생을 바친 공로를 인정받았다. 지난 11월에는 한국과학기자협회가 주는 ‘올해의 과학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박사는 지난 30년 동안 가정의 화장실에서 나온 사람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그의 노력은 생활 오수와 가축 분뇨 처리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맑은 강을 볼 수 있고 깨끗한 수돗물을 마실 수 있는 것도 그의 숨은 노력으로 맺어진 결실이다. 분뇨 정화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자치고는 조금 고약한, ‘똥박사’라는 별명이 그를 따라다닌다. “젊을 때부터 똥만 연구하다 보니 꿈도 똥꿈만 꾸었다. 똥꿈을 꾸면 돈이 생긴다고 하지 않는가. 실제로 똥 연구로 지금까지 먹고살았으니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1982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한강 시찰에 나섰을 때이다. 물에서 나는 악취를 해결할 방법을 찾으라는 지시가 한국과학기술원으로 떨어졌다. 고상하게 말해 분뇨 처리 연구이지, 사실 똥을 만지는 일에 아무도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그때 손을 든 사람이 박박사였고, 고생길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인분부터 가축 분뇨까지 똥이란 똥은 다 만져보고 냄새를 맡았다. 지역마다 똥 성분이 달라, 지방에서 분뇨통을 차에 실어 연구실로 나르기도 했다. 분뇨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인분통을 집 냉장고에 보관하는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분뇨통을 집에서 쏟아 오랫동안 구린내에 시달려야 했고, 땅에 파놓은 가축 분뇨통에 목까지 빠지는 ‘참사’를 겪기도 했다.

분뇨를 만져보고, 채로 걸러 성분을 검사하는 연구가 일상이었다. 똥을 걸러내는 채는 지금도 그의 연구실에 있다. 냄새 때문에 그의 연구실은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내에서도 멀리 떨어진 구석으로 밀려났다. 그래도 그는 분뇨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똥에 대한 분석을 마치자 이를 정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세계적으로 화공 물질이나 분뇨 자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미생물로 분뇨를 정화했다. 수질 오염도 문제이지만, 냄새를 잡지 못했다. 등산을 좋아하는 박박사는 산행 길에서 힌트를 얻었다. 섬유질이 많은 낙엽을 분해할 정도면 분뇨도 정화할 것으로 생각했다. 15년 동안 한라산 등 전국의 산을 훑으며 부엽토를 실어날랐다. 부엽토에 있는 미생물 중에서 분뇨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찾기 위해 각종 분뇨에 적용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가장 적합한 바실로스 균을 찾아냈다. 청국장에도 있는 균이다. 

“바실로스 균에는 병원성과 비병원성이 있다. 병원성은 한센병 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비병원성은 분해 능력이 탁월하다. 부엽토에서 찾은 바실로스 균은 청국장의 것과 조금 다르지만 분해력은 두 가지 모두 좋다. 그래서 두 종류의 바실로스 균을 섞었더니 분해 효과가 더 좋아졌다.”

일본 등 외국에서는 분뇨 자체에서 발생한 미생물을 분뇨 정화용으로 사용한다. 박박사의 미생물은 효과 면에서 월등하다는 평을 받는다고 한다. 또 천연 물질이라서 안전성도 높은 데다 예상 밖의 부가적인 효과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분뇨에는 모기 알이 많다. 정화해서 깨끗한 물을 만들어내도 모기 유충이 생긴다. 그런데 바실로스 균으로 처리하면 모기 유충이 생기지 않는다. 또 분뇨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약한 냄새를 제거하는 효과도 있다. 박박사가 내세우는 노하우는 또 다른 것에 있다.

특허 얻은 기술, 국내 80여 곳에서 사용돼

ⓒ 시사저널 임준선
“액체 상태의 미생물은 유실이 잦다. 분뇨 처리장에서 분뇨가 이동하는데, 이때 미생물도 같이 휩쓸려 다음 공정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분뇨 처리장에 미생물을 자주 넣어주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고, 액체 상태의 미생물은 보관하기도 불편하다. 그래서 사용의 편리성을 높이기 위해 액체 상태에 있는 미생물을 고체로 만들었다. 환경 조건이 나쁘면 미생물은 포자 상태로 가만히 있다가도, 수분·온도·먹잇감 등의 조건이 갖춰지면 활발히 증식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성을 이용했다. 즉, 포자 상태로 고체로 만들어 보관하다가 분뇨 처리장에 넣고 조건을 맞춰주면 서서히 풀리면서 미생물을 증식시켜 분뇨를 분해하는 것이다. 1kg짜리 고형 미생물로 10년 동안 사용할 수 있어 관리도 편리하다. 분뇨에 너무 잘 풀어져도 안 되고 너무 안 녹아도 안 된다. 적정 조건에서 서서히 녹으면서 미생물을 증식하게 하는 기술이 비법이다.”

이 기술로 특허를 획득했다. 일본이 분뇨를 원료로 만드는 과정에서 박박사의 기술을 도입하고자 접촉해오기도 했다. 앞으로 수출 의뢰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도 그의 기술은 인분 처리장, 생활 오수 처리장, 가축 분뇨 처리장 등 80여 곳에 사용되고 있다. 이런 성과로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과학자로서는 드물게 억대 연봉을 받았다. 또 지금까지 수많은 상도 받았다. 정년 퇴임까지 앞으로 5년 남은 그는 ‘똥 연구’를 계속하겠다고 했다.

“앞으로 이 미생물의 적용 범위를 넓히는 방법을 찾고 싶다. 모기를 없애는 방법을 연구할지도 모르겠다. 미생물로 모기를 없앤다니 신기하지 않은가. 또 냄새 없는 인분 비료를 개발할 수도 있다. 밭에 화학비료 대신 인분을 사용하면 농작물이 더 잘 자라고 토양 성분도 좋아진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정책에도 관여하고 싶다. 과학자가 한 가지 연구에 평생 동안 몰두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고 싶다. 연구비를 따기 위해 이것저것 하면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 과학에도 전문성이 갖춰져야 나라가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한편, 박박사 외에도 올해의 인물 과학 부문에서 주목된 사람이 여럿 있었다. 우선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있다. 컴퓨터부터 휴대전화, 태블릿PC, TV까지 각 부문에서 올해 그가 미친 영향력은 작지 않았다. 그는 지난 10월5일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김빛내리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마이크로 RNA에 대한 연구로 신체 성장의 비밀을 밝힌 인물이다. 정하웅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석좌교수는 복잡계 네트워크 과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한 국제적인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는 2008년 발표한 도로 교통 네트워크 분석이다. 미국 보스턴과 영국 런던의 도로 네트워크를 분석해, 교통 체증을 막으려면 도로를 신설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있는 도로를 없애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름길을 없애면 차량이 분산되어 흐름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오세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기초과학연구원 원장은 고체·실험물리 분야 전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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