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에서까지 창피할 수는 없다
  • 김재태 편집부국장 (purundal@yahoo.co.kr)
  • 승인 2011.12.2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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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해의 끝자락입니다. 다 넘겨진 달력 위로 떠난 시간의 허물들이 수북합니다. 회한의 먼지들도 가득합니다. 이룬 것이 그다지 없는, 후회 많은 인생들에게는 시간의 흐름이 유난히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마음은 절로 착잡해집니다. 한 해의 경계에서 교차되는 반성과 희망의 번잡함으로 인한 어지럼증도 상당합니다. 반성은 늘 증거가 분명한 데 반해 희망은 늘 불확실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떠오르는 희망에 몸을 기대는 편이 더 낫습니다. 그래야 전속으로 달려가는 시간에 의한 멀미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것이기에 말입니다.

지난 시간과 현재를 면밀하게 살피는 일은 미래를 조망하는 데 늘 중요한 바탕이 됩니다. 정확한 진단과 반성 없이 설계되는 미래는 자칫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같은 작업을 거쳐 각 연구기관이나 언론 매체들은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다음 해의 상황을 전망하는 자료들을 내놓습니다. <시사저널>도 얼마 전에 각계 전문가들의 분석과 진단을 바탕으로 <핫 이슈 시사 2012>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래를 전망할 때 특히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한반도 정세입니다. 지구촌 유일의 분단 국가인 데다 강대국의 파워게임이 첨예하게 벌어지는 현장인 탓이 큽니다.

2012년 한반도 정세를 전망하면서 각계 전문가들이 가장 중요하게 다룬 부분은 무엇보다 북한의 권력 승계 문제였습니다. 그 추이에 따라 한반도의 안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입니다. 그런데 2012년이 채 열리기도 전에 엄청난 변수가 돌출하고 말았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런 사망은 한반도 전체를 더욱 깊은 안갯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장례 기간은 큰 상황 변화 없이 지나갈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후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입니다. 권력 기반이 아직 취약한 김정은의 주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단하기가 어렵습니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권력 투쟁 가능성과 무리 없는 권력 이양으로 엇갈립니다.

이런저런 예측을 떠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반도의 불안정성이 더 커졌다는 사실입니다. 핵을 지닌 북한의 미래 행보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운명에도 더없이 중요한 변수인 만큼 예의 주시를 늦출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김정일의 사망 사실을 뒤늦게야 인지하고 대북 첩보 라인에도 구멍이 뚫린 우리측 정보기관들의 수준과 행태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자원과 장비를 늘려 만반의 대비를 취해야 합니다.

2012년은 한국의 명운에 매우 중요한 한 해입니다. 특히 외교 분야에서의 분발이 강하게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김정일이 떠난 북한에서 중국에 대한 쏠림 현상이 가속화할 것이 뻔한 마당에 우리는 여지껏 대북 문제에서 이니셔티브도 제대로 쥐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도 매끄럽지 않습니다. 이번 <시사저널> 올해의 인물에서 ‘최악의 인물’로 꼽힐 만큼 곤욕을 치른 이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해에 명예 회복을 할 수 있는 길도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치솟은 물가 탓에 실질 소득이 깎이는 수모를 겪는 등 올 한 해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심히 창피해졌지만, 국가의 위엄까지 창피해져서는 곤란합니다. 내치에 실패한 이대통령이 2012년에는 외치에서라도 좋은 성과를 내주기를 힘들게나마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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