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 큰’ M&A 마술사를 왜 또 못 믿는 것일까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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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대한은박지 입찰 때 1천억대 제시 인수 자금의 출처·조달 방법 놓고 뒷말 무성

ⓒ 뉴스뱅크이미지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M&A(인수·합병)의 마술사’로 불린다. 굵직한 M&A를 잇달아 성사시키면서 재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7년간 인수한 기업만 10여 곳에 달한다. 1년에 한 곳 이상의 기업을 계열사에 편입시킨 셈이다. 지난 2005년 6월 인수한 한국투자증권이 ‘신호탄’이 되었다. 동원증권은 당시 덩치가 두 배나 큰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 덴마크우유(디엠푸드)와 해태유업을 잇달아 집어삼키면서 동원데어리푸드를 설립했다. 김회장은 인수한 기업을 통해 금융과 식품 양대 지주회사를 출범시켰다. 장남인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대표가 현재 금융 부문을 맡고 있다. 차남인 김남정 동원시스템즈 부사장은 식품 부문에 집중시키면서 2세 체제의 밑그림을 완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후에도 김회장의 ‘확장 경영’은 계속되었다. 지난 2007년 조미식품업체인 삼조셀텍과 티에스큐를 동시에 인수했다. KT로지스택배와 아주택배를 삼키면서 택배업에도 진출했다. 김재철 회장이 무역협회장을 그만두고 “공격적인 M&A를 하겠다”라고 밝힌 직후였다. 이 과정에서 동원그룹은 식품, 금융, 건설, 택배 등을 아우르는 그룹으로 성장했다. 2008년과 2011년에는 통조림업체인 미국 스타키스트와 세네갈의 SNCDS마저 삼켰다. 스타키스트는 국내 식품업계의 해외 M&A로는 역대 최대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높은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이면 인수를 검토한다는 것이 (김재철 회장의) 기본 방침이다”라고 말했다. 김회장도 언론에 “식품 기업인 본업에 충실하되 이를 바탕으로 신사업과 기업 M&A에도 적극 나서겠다”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지난해 발생한 허위 공시 악몽 재현할까 우려

최근 거침없던 김회장의 M&A 행보에 제동이 걸렸다. 김회장의 주특기였던 ‘M&A’가 발목을 잡았다. 동원그룹은 지난 12월21일 은박지업계 3위 업체인 대한은박지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었다. 인수 자금만 1천2백47억원에 달하는 비교적 큰 규모의 입찰이었다. 동원그룹측은 계열사 보유 지분을 매각해 인수 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수 자금의 출처나 조달 방법을 놓고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대한은박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12월29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회사의 자산이 7백억원대이다. 부채를 빼면 100억원대에 불과하다. 경쟁 입찰자들이 6백억원 안팎을 제시한 상황에서 동원만 1천2백47억원을 써낸 배경을 놓고 내부적으로 뒷말이 파다하다”라고 귀띔했다. 대한은박지 내부에서는 인수 이후 특별 배당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한은박지의 반발에 동원그룹측은 적지 않게 당황하는 분위기이다. 연일 회의를 통해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수 금액을 높게 책정한 것은 회사 가치를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투자금은 전액 노후된 시설을 교체하거나 보수하는 데 사용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금 조달의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여전히 언급을 꺼렸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직 우선협상자 단계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내부적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 논의 중이다. 적절한 시기가 되면 공개하겠다”라고 짧게 답했다.

동원그룹은 지난 2011년 9월 건설업체인 삼전건설과 급식업체인 삼보유통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허위 공시 논란을 빚었다. 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한 5백억원 중 3백25억원을 인수 대금으로 사용하겠다고 서둘러 공시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피인수 기업으로 지목되었던 삼전건설과 삼보유통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 업체는 “동원그룹의 일방적인 공시로 영업에 큰 차질을 빚었다. 허위 공시이다”라면서 법적 대응을 엄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대한은박지를 인수하는 자금에 대해서는 여전히 소극적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진통이 확산되고 있다. 회사 노조는 지난 12월20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며칠 후 생산을 재개했지만, 불신의 눈초리는 여전하다. 인수 부당성을 알리는 탄원서도 최근 법원에 제출한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되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동원그룹 역시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동원그룹에서 아직까지 이 부분에 대한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동원그룹측 “커뮤니케이션에 오해 있었다”

김재철 회장의 확장 경영을 둘러싼 잡음은 이뿐만이 아니다. 동원그룹은 지난 2007년 택배업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도 논란을 빚었다. 당시 동원그룹은 KT로지스택배와 아주택배를 잇달아 인수했다. 하지만 택배업 진출 1년 만에 ‘사업 포기’를 선언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김선호 대표를 포함한 직원들 역시 일방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하루아침에 생계를 잃은 전국 1백95곳의 지사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법적 대응에 나섰다. 서울 양재동 사옥뿐 아니라, 김재철 회장의 본가인 전남 강진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룹측은 “정상적인 영업을 할 수가 없을 정도로 회사 경영이 악화되었다.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대위 안팎에서는 동원택배가 사후 정산을 피하기 위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비대위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동원택배는 은행 부채 1백10억원을 승계하는 조건으로 아주택배를 넘겨받았다. 아주그룹이 신한은행 부채 70억원에 대해 지급 보증을 섰는데, 만기가 오는 10월이다. 이 돈을 갚지 않기 위해 파산이라는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많았다”라고 귀띔했다. 동원택배는 당시 아주택배를 인수한 지 9개월이 지나도록 통합 CI를 만들지 않았다. 김선호 전 대표는 지사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회사를 매각할 테니 대신 운영해달라는 요청까지 했다. 이렇듯 김재철 회장은 M&A를 통한 확장 경영에 몰두해왔다. 이 과정에서 여러 뒷말이 끊이지 않았다. 업계에서 대한은박지 문제를 두고 우려가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동원그룹측은 “일부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있었다”라는 입장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외형보다 내실에 치중하는 것이 그룹의 운영 방침이다. M&A 역시 내실을 키우기 위한 전략 중 하나이다. M&A 과정에서 일부 오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은 잘 마무리되었다”라고 해명했다.

서울 포이동 사거리에 있는 동원그룹 본사. ⓒ 시사저널 임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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