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납품비리에 이어 원전 ‘감시차’ 운행도 조작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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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한국수력원자력 내부 문건 입수…납품 비리에 이어 운행 일보 허위 작성 정황 드러나

부산 기장군 장안읍 월내 포구에서 바라다 본 고리 원자력 발전소. ⓒ 시사저널 유장훈

한국수력원자력의 내부 비리와 안전 불감증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12월8일과 16일 한수원 고리원자력발전소의 간부급 직원 두 명이 수억 원대의 납품 비리에 연루되어 잇따라 구속되었다. 검찰 수사 결과 이들은 납품업체와 짜고 고리원전에 중고 부품을 납품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원전은 나사못과 같은 사소한 부품 하나만 잘못되어도 대형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곳이다. 때문에 한수원의 비리 의혹은 국내 원전의 안전성 자체를 의심받게 만들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 사건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한수원 고리본부가 지난 1998년에 처음으로 국내에 들여온 ‘이동형 환경 감시 차량’이 단 한 차례도 제대로 운행하지 못한 채 10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최근에 결국 폐기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동형 환경 감시 차량’(이하 ‘감시차’)은 방사능 누출이 예상될 경우 누출된 현장에 들어가 방사능 오염 정도와 공기 중의 방사능 농도를 측정하는 중요한 임무를 지닌 차량이다.

방재 훈련과 방사선 조사에 쓰이는 차량

<시사저널>이 한나라당 김정훈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한수원 내부 문건을 살펴보면 이러한 정황은 더욱 뚜렷해진다. 문건에 따르면 한수원 고리본부는 지난 1998년 6월30일 감시차를 인수했다. 당시 감시차 구입 금액은 3억4천여 만원에 이른다. 감시차에는 방사능 유출 여부를 확인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총 13개의 탑재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가운데 세 개 장비가 같은 해 9월25일 제품 수리를 받았다는 점이다. 차량을 도입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감시차는 탑재 장비 가운데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일반 짐차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3개월 만에 수리에 들어간 장비가 탑재된 감시차가 제대로 운행될 수 있었을까. 한수원 내부 문건 가운데에는 ‘환경 감시 차량의 운영 일지와 환경 탐사 활동 내역’이 포함되어 있다. 이를 살펴보면 감시차는 1998년 8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영광, 월성, 울진, 고리를 포함한 4개 원전에서 방사능 방재 훈련과 고리원전의 공간 감마선량률과 환경 방사선 조사를 위해 쓰였다.

운영 일지대로 차량이 쓰였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실제로 차량이 어느 공간에서 어떤 용무로 얼마만큼 운행되었는지를 기록한 ‘차량 운행 일보’를 살펴보았다. 이내 수상한 대목이 포착되었다. 지난 2008년 5월15일 일지에는 총 주행 연거리가 9천2백18km였던 것이 3개월이 지난 8월23일 일지에는 8천9백26km가 되어 차량 주행 거리가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김정훈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사실 ‘고리본부에서 엉터리 장비가 탑재된 감시차를 사들여 차량 운행을 한 차례도 제대로 한 적이 없다’라는 제보를 받고 자료를 요구한 것이다. 운영 일지 및 운행 일보를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환경 탐사 활동 내역을 요구했더니 2009년까지 총 5차례밖에 실시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이 역시도 제대로 측정된 것인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는 ‘4억짜리 차’를 사서 쓰지 못하고 있으니까 고리본부 직원들이 야유회나 회식을 갈 때 사용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한수원 본부의 한 간부가 직접 직원들에게 제재를 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라고 말했다.

한수원은 2010년 7월 장비를 제외한 차량만 외부에 팔았다. 감시차의 13개 장비 가운데 작동이 가능한 장비는 3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 대상으로 분류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한수원은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감시차를 4억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구매한 것이나 다름없다. 감시차를 도입하는 과정에 입찰 비리 등이 연루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한수원측에 문의해보니 ‘당시(1998년도)에 차량 구매에 관계된 한수원 고리본부 본부장 및 기술지원실 실장 등은 모두 퇴직한 상태’라는 답이 돌아왔다. 

고리원전의 감시차 운행일지.

네 대 중 두 대가 고장 난 채로 운행되기도

그렇다면 현재 한수원이 보유 중인 다른 ‘감시차’들은 문제가 없을까. 한수원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환경 감시 차량은 총 네 대이다. 지난 2006년 5월 한수원 영광본부가 감시차를 인수한 이후 나머지 원전 본부에서도 모두 환경 감시 차량을 사들였다. 모든 감시 차량이 지난 1998년에 도입한 차량에 비해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차량의 구입 금액은 총 45억여 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두 대의 감시차가 그동안 ‘고장 난 상태’로 운행되고 있었다. 한수원 고리본부의 감시차는 지난 2010년 11월 방사능 측정을 위한 핵심 장비인 ‘휴대용 감마핵종 검출기’와 ‘광대역 감마 감시기’가 고장 났고 이어 2011년 6월에는 ‘삼중수소 측정 장치’까지 고장 나 버렸다. 고리본부는 고장 난 장비가 실린 감시차로 2011년 11월 이후 총 5차례나 각종 방재 훈련에 참가했다. 울진본부의 감시차 역시 2010년 12월 탑재된 측정 장비의 작동이 중단되었다. 울진본부는 내부 장비가 먹통인 감시차로 2010년 12월 이후 무려 27차례나 환경 방사선 측정 활동을 했다. 그동안 방사능이 유출될 때를 대비한 각종 방재 훈련이 ‘요식 행위’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암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5월에 9,218Km로 기록된 주행 거리가 8월에 8,926Km로 줄어들어 있다. 사진은 이동형 환경 감시 차량. ⓒ 시사저널 이종현

이에 대해 한수원측은 “울진본부에서 27회 측정을 할 때에는 차량 내의 고장 난 장비를 사용한 것이 아니라, 울진본부가 보유하고 있는 휴대용 계측 장비를 이용해 환경 방사선을 측정한 것이었다. 지금은 감시차의 고장 난 장비에 대해 수리가 모두 완료되었다. 또 앞으로 장비가 고장 났을 때를 대비해 예비품 구입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해명했다. 

잇따르고 있는 원전 중단 사태와 한수원 내부의 끊이지 않는 비리 의혹은 결국 한수원의 뿌리 깊은 ‘안전 불감증’과 연결된다. 최근 문제가 불거지자 한수원 내부에서 ‘사장을 포함한 임원진들이 곧 물갈이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이에 대해 김정훈 의원은 “한수원의 역할은 국민들에게 심리적 안정감과 원전에 대한 신뢰를 주는 것인데,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앞으로 한수원에 대한 감사를 더욱 철저히 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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