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괴물’을 키우고 있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2.01.02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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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 인터뷰 “부모는 그저 귀담아 듣고 공감해주는 역할이면 충분”

ⓒ 시사저널 임준선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나타난 학교 폭력의 잔인함과 집요함은 성인 범죄에 뒤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학교 폭력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여론이 들끓고 있으며, 근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러나 학교 폭력이 한두 해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처럼 해결 방안 역시 묘연한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10대들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고 그들이 학교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0대들의 눈높이에서 그들을 이해할 때 학교 폭력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 박사(50)는 이 분야에서 내로라하는 전문가이다. 최근에 그는 1990년대부터 상담실을 운영하면서 접한 청소년들의 다양한 고민을 엮은 책 <괜찮아, 열일곱 살>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박사는 이 책에서 가정 문제, 이성, 우정, 진로 등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데, ‘왕따’로 대변되는 학교 폭력 문제도 비중 있게 다루었다. 지난 12월28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이나미 심리분석원에서 그를 만났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으로 학교 폭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청소년들과 상담하면서 느낀 학교 폭력의 실태는 어떠한가?

학교 폭력과 관련해 상담하는 건수가 크게 늘어났다. 학교 폭력은 위험 수위까지 도달했다. 학교 폭력이 예전과 달리 일상화·만연화하고 있다. 예전 같은 경우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전형적인 유형이 존재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도,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피해자였던 학생이 다음 학기에는 가해자로 바뀌기도 하고, 그 반대의 상황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가해 집단 또는 불량 학생 집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에서처럼 가해자가 비행 청소년이 아닌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사실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학교 폭력의 이면에는 이른바 ‘일진’이 있다. 이런 애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심지어 사회까지 연결되어 있다. 학교 폭력이 조직화되어 있는 것이다.

‘일진’은 어떤 학생들인가?

청소년 또래 집단에도 서열이 존재한다. 피라미드형 구조라고 보면 된다. 청소년 집단에서의 권력이란 육체적 힘, 사회성(리더십), 외모 등이다. 심지어 부모들의 경제적 지위도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애들이 일진이 되어 친구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른바 불량 학생, 즉 가난하거나 결손 가정의 학생들이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전혀 다르다. 이른바 잘나가는 학생들이 약자를 괴롭힌다.

지난 12월29일 경찰은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가해 학생들이 지난 12월 초·중순과 피해 학생이 숨진 다음 날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 연합뉴스

요즘의 학교 폭력이 예전과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의 10대와 예전의 10대가 다른 점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는 중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의파’들이 없어진 것이다. 요즘 또래 집단에서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중간자들이 학교 폭력을 방관하고 때로는 가해자에게 동조하면서 학교 폭력이 심각해지고 있다. 일례로 가해자가 다른 학생들 앞에서 피해 학생을 무자비하게 때릴지라도 다른 학생들은 자기도 피해자가 될까 봐 침묵한다. 오히려 피해자를 같이 공격해야 또래 집단에서 힘 센 쪽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해자들이 양심의 가책을 받지는 않나?

지난 12월29일 경찰은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의 가해 학생들이 지난 12월 초·중순과 피해 학생이 숨진 다음 날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했다. ⓒ 연합뉴스
요즘 학교 폭력의 문제는 친구를 괴롭히는 뚜렷한 목적이 없다는 점이다. 예전 같으면 금품을 갈취하는 이유가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재미로 한다. 폭력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도 거의 없다. “다들 그렇게 하는데 뭐 어때”라는 식으로 치부해버린다. 오히려 청소년 또래 집단에서는 피해자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피해자가 ‘바보’라서 당했다는 것이다. 가해자를 탓하는 분위기는 없다.

이 때문에 가해자가 아닌 피해 학생이 학교를 그만두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상담을 통해 가해자가 학교를 옮기도록 피해 학생측에 변호사를 소개시켜준 적도 있다. 그러나 고소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피해 학생들이 전학을 간다. 괴롭힘을 당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피해 학생측이 직접 전학을 요구한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에 대해 또래 집단을 벗어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에게 말할 경우 ‘고자질했다’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또래 집단에서 더욱 배척당한다. 그들 사회에서 매장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심각한 학교 폭력을 당하고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아이가 많다. 대구에서 자살한 중학생도 부모님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지만 결국 부모님께 도움을 청하지 못했다. 보복의 두려움도 크다. 가해 학생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갔을 경우에도 지속적으로 휴대전화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서 피해 학생에게 협박을 한다.

이번 대구 사건 피해자의 경우 저항 한번 못 해보다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가해 학생들이 피해 학생을 괴롭히고 때리는 데 사용한 도구들. ⓒ 연합뉴스
폭력에 길들여지면 반항을 생각할 수 없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가 정립되면 여간해서는 이런 관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매 맞는 아내의 경우처럼 말이다. 특히 청소년은 어른보다 시야가 좁기 때문에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다. 자살을 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용기가 없어서라기보다 보복의 수단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도저히 길이 없으니까 최후의 수단으로 자살을 선택한 것이다.

요즘 청소년들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보는가?

아주 심각하다. 요즘 청소년들은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 사례를 들어주겠다. 상담을 하다가 10대들에게 “누구한테 10억원을 강제로 빼앗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질문하면 대다수가 “10억원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감옥 정도는 다녀올 수 있다”라고 답변한다. “감옥 가는 게 대수인가. 전과가 있는 대통령도 있지 않느냐. 대통령도 거짓말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것 뭐 있나. 어떻게 하든 권력만 잡으면 된다”라는 식이다. 청소년들은 우리 사회에 도덕이 없다고 생각한다. 배려와 진실 등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고, 힘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죄를 짓고 산다고 믿는다. 이런 애들이 커서 결국 고려대 의대 성폭행범 같은 어른이 되는 것이다.

왜 청소년들이 이런 지경까지 내몰린 것일까?

지난 12월29일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학교 폭력 대책을 촉구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부모의 잘못이 크다. 70~80대 부모들만 해도 염치·체면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지금 30~40대 부모들은 “돈 많이 벌어 성공해라”라는 교육만 받았다. 절제, 겸손, 배려, 인내 등을 배우지 못한 세대이다. 학부형들끼리 만나면 성적, 과외, 명품 이야기밖에 하지 않는다. 인간적 덕목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이런 식으로 커온 부모들이 무엇을 가르치겠나. 문제는 세대를 거치면서 이런 생각들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부모들은 자신도 모르게 괴물들을 키우고 있다.

학교 교육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되고 있는데?

학교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학교의 상황은 매우 열악하다. 교사에게 지워지는 업무량이 너무 많다. 현 정부 들어 교사들의 부담이 더욱 늘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가 수십 명의 아이들을 일일이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학교마다 상담 전문 교사가 상주해야 한다. 상담 전문 교사란 수업을 진행하지 않고 오직 상담만을 책임지는 사람을 말한다. 문제 학생들은 체계적인 상담 교육을 받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 상담교사 배치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의무화해야 한다. 여건이 된다면 진로 상담교사를 따로 둘 필요도 있다. 상담 교육 시간을 정규 교육 과정의 일부로 의무화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지금처럼 반성문이나 쓰게 하고 벌점이나 부과하는 선에서 그친다면 결코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일정 기간을 정해서 상담교사와 상담을 하고, 그래도 모자라면 2차 조치로 정신과 의사와 상담하는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

교육 커리큘럼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단체 생활을 경험할 수 있거나 육체적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교육 과정이 필요하다. 중학교만 들어가도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친다. 그런데 이 아이들을 좁은 교실에 가둬두고만 있다. 쥐 실험을 보면 좁은 곳에 장시간 가둬두면 쥐들끼리 물어뜯고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들을 풀어놓아야 한다. 선진국에서는 ‘팀 스포츠’를 통해 에너지를 방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넘치는 에너지가 폭력으로 변질되기 전에 방지하는 효과를 볼 수 있으며, 협동심·인내심·희생 정신 등을 배울 수도 있다. 또한 선진국에서는 그룹 면담, 집단 치료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는다. 갈등이 발생했을 경우 평화적인 방법으로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연습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기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못했기 때문에 국회에서조차 드잡이질, 몸싸움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방지하기 위해서 부모가 좀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은 없을까?

학부모들 중에는 심리학적 소양이 있는 고급 인력이 많다. 이들을 자원봉사자로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신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를 제외하고 학부모들끼리 교차해서 상담을 진행한다면 부모가 자식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아이들 역시 다른 사람에 비해 쉽게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엄마 교사, 엄마 지킴이’ 등을 활성화해야 한다.

학원 폭력에 대한 징벌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도 있는데.

선진국에서는 학원 폭력에 대한 징벌이 매우 강하다. 우리나라도 심각한 학원 폭력이 발생했을 때에는 가해자에게 진학에 대한 불이익을 주는 방안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다. 부모들도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가해 학생을 만든 부모가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와 같이 사회 봉사 명령을 받아야 하며 치료도 함께 받아야 한다. 그 밖에도 가해자는 피해자측에게 위자료를 주어야 하며, 13세 미만 청소년을 처벌할 수 없게 한 법 조항도 강화해야 한다. 13세 미만의 아이들 중에도 어른 뺨치는 괴물이 많다.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들이 학원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는 징후들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피해 학생의 경우 말이 없어지고, 수면이 줄어드는 등 생활 패턴에 변화가 온다. 성적도 떨어지고 쉽게 짜증내는 경향이 있다. 신체 접촉을 피하고 부모 앞에서 옷을 벗는 것을 꺼린다. 손톱을 깨문다거나 변비, 설사가 오기도 하고 심각한 경우 탈모 증상이 나타난다. 가해자들의 경우에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인 경우가 많은데, 학원 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순간 부모에게 반항하기 시작한다. 자신도 폭력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밖에 씀씀이가 커지거나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

가해자이든 피해자이든 모두 가족과 대화가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면 부모와의 대화 시간이 당연히 줄어드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10대가 되면 인격이 형성되는데 부모가 여전히 아기 취급을 하기 때문에 부모와 대화를 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휘두르려 하니까 갈등이 생긴다. 부모는 그저 귀담아 듣고 공감해주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신의 아이가 학원 폭력에 노출되었을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폭력에 상처 입은 피해자들은 자존감이 낮아진다. ‘나같이 가치 없는 사람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라는 식으로 생각하면서 극단적인 경우 자살을 실행에 옮기곤 한다. 상처 입은 자존심을 회복시켜주는 것이 급선무이다. 네가 못나서 당한 것이 아니라 가해 학생의 문제이고, 전체 시스템상의 문제라는 것을 이해시켜주어야 한다.

폭력에 의한 상처는 합병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 수면 장애, 대인 공포증 등을 동반하는데 이런 현상들을 해결하는 일은 전문 기관에 맡길 필요가 있다. 이때 피해자의 부모까지 함께 치료를 받아야 한다. 가해자의 경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줄 필요가 있다. 가해자는 스스로 불행하기 때문에 남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풀 수 있도록 취미 등을 가질 필요가 있다. 학업만이 아닌 자기 생활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이다.

이나미 박사는 인터뷰를 끝내면서 자신도 두 아이의 엄마라고 말했다. 두 아이는 구김살 없이 건강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어엿한 성인이 되어 있다. 이박사는 자신의 아이들이 학원 폭력에 물들지 않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자신만의 비결을 귀띔해주었다. “새학기가 되면 아이들에게 가장 약한 급우의 친구가 되어주라고 말해왔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은 약자 축에 속하는 아이들로 항상 북적였다. 가장 약한 아이들에게 친구가 생기자, 그 반 전체에 집단 따돌림 같은 일이 자연스럽게 없어졌다. 이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학교 폭력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았다. 학교 폭력을 해결하는 것은 간단하다. 내 아이부터 모든 아이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건강한 마음 상태만 갖게 해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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