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논리가 힘을 잃는 세상, ‘막소설’을 쓰기로 작정했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2.01.0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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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만난 사람│소설가 안정효

© 연합뉴스
소설가 안정효씨가 변신을 한 것인가. 안작가는 최근 ‘판타지+역사+정치+풍자소설’이라는 기묘한 소설 <역사소설 솔섬>(나남 펴냄)을 펴냈다. 경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과 다르게 일을 벌인 것이다. 왜 그랬는지 작가는 책 머리말에 ‘막소설을 쓰기로 작정한 까닭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가 그리 논리적이지를 않기 때문이다. 워낙 이상한 세상에서는 정상적인 논리가 힘을 잃는다’라고 썼다. 그래서 펴낸 ‘막소설’은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얽힌 ‘새로운 세상’으로 독자들을 끌어들인다.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하얀 전쟁>, 한국전쟁의 참극을 다룬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 안작가의 대표작들을 떠올려보면 ‘변심’이라도 한 것 같다. 사실 지난 소설들은 무겁고 어두운 내용들이다. 사실적인 글쓰기에서 해학적인 글쓰기로 변신을 했다는 의심(?)을 하게도 만든다. ‘이 정도는 씹어줘야 풍자소설이지’라는 듯 소설에 재미와 활기를 불어넣었다.

서해안에 있는 작은 섬, 솔섬은 주민이 모두 12가구 18명뿐이어서 투표 시간이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래서 폐기청 목설구 국장은 핵폐기물 처리장 건설 장소로 솔섬을 낙점한다. 보고서를 꾸미려 여러 가지 조사를 벌이던 중 어느 날부터인가 솔섬이 조금씩 떠오르더니 개펄이 넓어지고 어느 새 제주도만 한 큰 섬이 된다.

신천지 솔섬 이야기를 듣고 무주공산을 차지하기 위해 투기꾼, 철새 정치인, 기업인, 언론인, 조직폭력배, 종교인 등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한편 목설구는 이런 사실을 한국 정부에는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기업인들을 만나서 건국 비용을 조달하며 솔섬의 독립을 추진하는데….

<역사소설 솔섬>의 줄거리는 한국 현대정치사를 큰 줄기로 한다. 신문 지상에 오르내렸던 인물들을 연상하게 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벌이는 음모, 정경유착, 비리들이 세세하고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다. 판타지까지 곁들여 상황이나 배경이 다소 황당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큰 줄기는 매우 전략적이고 사실적이다.

독자들은 처음에는 낯선 표현을 읽고 “이거 뭐지?”라는 의구심이 들 것이다. 예를 들자면 소설 속에서 한국의 대통령 이름은 이세환, 박세환, 전세환, 노세환이고, 재벌 총수는 한재산, 깡패 두목은 조패구, 나이트 클럽 이름은 ‘Allnight’, 장례식장 이름은 ‘I go’여서 ‘안정효 작품’인지 의구심까지 들 정도이다. 하지만 이런 풍자적인 요소 덕분에 무거운 주제를 유쾌하게 읽어낼 수 있다. 이러한 형식 실험은 현실 정치가 점점 판타지 소설처럼 변형된다는 작가의 문제의식으로도 읽힌다. 소설 속 시간 흐름을 역순으로 잡은 구성 또한 우리네의 왜곡된 정치 행태, 퇴행적 역사에 대한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다.

무거운 글쓰기에서 벗어나 ‘솔섬’에서 새로 탄생한 안정효 작가의 바람 같은 이야기가 답답한 정치에 대한 독자들의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풀어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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