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묵계 깨고 왜 영역 침범 나서나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1.1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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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타워, LS타워. ⓒ 시사저널 박은숙
국내 재벌그룹이 그동안 지켜왔던 묵계를 깨고 상대의 사업 영역까지 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친족 분리 과정에서 대기업들이 무차별적으로 핵분열하는 것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2세나 3세로 넘어가면서 생존 전략의 하나로 사업 다각화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룹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서도 이같은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주요 그룹이 창업주에서 2세 체제로 바뀌면서 쪼개진 회사는 모두 23곳이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이 IT 서비스나 레저, 건설, 호텔, 물류 등의 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었다. 대부분 그룹의 지원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사업이었다. 업종별로 보면 IT 서비스가 가장 많았다. 전체 그룹 중 14곳이 IT 서비스회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었다. 호텔이나 건설, 물류 계열사를 둔 곳도 각각 13곳과 12곳, 10곳이나 되었다. 선대의 ‘문어발식’ 확장 전략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실제로 범LG가는 지난 2000년을 전후로 LG그룹과 GS그룹, LS그룹, LIG그룹 등으로 분리되었다. 현재 건설업 진출설이 나오는 LG그룹을 제외하고 모든 그룹이 건설사를 보유하고 있다. LS그룹은 지난 2003년 분리 직후 한성피씨건설을 설립했다. LIG건설 역시 그동안 전문 주택 건설 분야에 주력해왔다. 지난 2006년 건영을 인수하면서 종합건설사로 변신하는 등 형제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범삼성가 역시 일차적으로 분가한 삼성과 CJ, 신세계, 한솔그룹 등이 모두 건설업체를 보유하고 있다. 특히 신세계가 최근 이마트 피자를 판매하면서 뒷말이 나왔다. 이마트 피자를 파는 곳은 장남인 정용진 부회장이 운영하는 이마트이고, 만드는 곳은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이 대주주인 조선호텔 베이커리이기 때문이다. 정부사장은 조선호텔 사업부를 조선호텔 베이커리로 분사하는 과정에서 40%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마트 납품을 통해 벌어들인 돈이 대부분 정부사장에게 돌아간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가 최근 정부사장이 대주주인 조선호텔 베이커리를 기습적으로 조사한 것은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마트 피자 기획에 참여했다는 한 전직 신세계 인사는 “이마트 피자뿐 아니라 와플 등이 내부적으로 기획되고 생겨났다. 사실상 정부사장의 사업을 돕기 위한 의도로 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동생 신춘호 농심 회장.
재계에서는 3세나 4세 체제로의 전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이같은 추세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재벌의 계열사 늘리기는 결국, 안정적으로 부를 대물림하기 위한 용도가 크다. 비슷한 계열사들이 양산되는 것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할 체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IBM, 엑센추어, 후지쓰 등 글로벌 IT 서비스업체의 경우 해외 비중이 70%에 이른다. 하지만 국내 IT 서비스 1, 2위 업체인 삼성SDS와 LG CNS의 해외 사업 비중은 2010년 기준으로 각각 19%와 5.7%에 불과했다. 그룹 내 물량에 안주하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 확보를 등한시한 결과였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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