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덕에 날개 단 ‘고가’ 이어폰·헤드폰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2.02.01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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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제품 시장 급성장…마니아층 브랜드가 대중화되기도

ⓒ 시사저널 유장훈
듣는 귀에도 투자가 필요해진 것일까? 수십만 원에서 최고 수백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프리미엄 이어폰·헤드폰’ 제조업체들의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단순히 ‘듣는’ 기능에만 만족하는 사용자라면 이러한 일련의 현상들에 고개가 갸웃거려질지도 모르겠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스마트폰을 포함한 대부분의 음향 기기들이 이어폰을 기본으로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별도로 구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도 사뭇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국내 이어폰 시장 규모는 연간 5백만대, 금액으로는 1천억원 수준에 달한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2년여 전 전체 시장의 1%에 불과했던 고급 제품들은 현재 30%까지 급성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용자들의 관심이 ‘소리를 듣는 것’에서 ‘좋은 소리를 듣는 것’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음향 전문 업체들까지 뛰어들어 경쟁 치열

지난 1월25일 서울 명동에 있는 한 음향기기 매장을 찾았다. 매장 안의 이어폰·헤드폰 코너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가격이 70만원에 달하는 한 이어폰 앞에는 서너 사람이 줄을 지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열된 제품 대부분은 최소 10만원에서 최대 70만원이 넘는 고가의 이어폰·헤드폰이다. 매장 관계자는 “젠하이저나 닥터드레, 페니왕 제품들이 많이 나가고 있다. 20만~50만원대가 가장 잘 팔리는 추세이다. 비싼 가격 탓에 음질 테스트만 하고 돌아가는 고객도 많지만, 최근에는 국내에 시판되지 않는 제품들은 어떻게 사야 하는지에 대한 문의도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오래전부터 일반 소비자에게 잘 알려진 고가 이어폰만이 아니라 소수의 마니아층에게 사랑받던 브랜드 제품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는 것도 새로운 추세이다. 이 매장 관계자는 “슈어에서 나오는 SCL4는 이어폰 마니아층에게 인기가 있었던 제품인데, 최근에는 가수들이 사용하는 것도 노출되고 브랜드에 대한 인지도도 올라가면서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이 제품의 경우 단종되었기 때문에 구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고객들이 같은 브랜드의 다른 제품들을 찾는 편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음향기기 관련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국내에서 판매되지 않거나 절판된 제품들을 아마존 등 해외 사이트를 통해 구입하는 사용자들의 사례가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이어폰이 이런 변신에 나서게 된 것은 단연 스마트폰 덕분이다. 과거 이어폰은 휴대전화나 MP3에 딸려 있는 혹은 끼워 팔던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해외 유명 업체들이 발 빠르게 나서기 시작했다. 피처폰이 음성통화와 문자메시지 위주로 사용되었다면 스마트폰에서는 음악·동영상 등 멀티미디어 기능 사용이 대폭 확대되었다. 그렇다면 격전지는 한 곳으로 좁혀진다. 바로 ‘귀’이다. 뱅앤올룹슨, 닥터드레, 페니왕 등 프리미엄 제품을 만드는 해외 브랜드들은 애플 아이폰에 맞는 잭을 채택한 이어폰과 헤드폰, 스마트 기기 전용 스피커를 선보이며 고급화 전략으로 경쟁 체제를 갖추었다. 젠하이저, 데논, 소니, 슈어 등 전통적인 음향 전문 업체들도 스마트폰에 특화된 제품을 출시하며 치열한 경쟁에 뛰어들었다.

사용자층이 고가 제품의 사용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패션 소품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스타를 통한 노출 마케팅도 고가 제품의 인기몰이에 한몫했다. TV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를 통해 알려진 일명 ‘박정현 이어폰’은 뱅앤올룹슨에서 나온 제품으로 <나는 가수다> 방영 후 판매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20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이지만 사용자들의 관심은 고가 음향 기기에 대한 호기심에서 직접 구매로 넘어가고 있다. 젊은 세대를 자극하는 스타 마케팅 요소는 헤드폰에서도 마찬가지다. 박태환·김범수·빅뱅 등 인기 스타의 헤드폰으로 화제가 된 비츠바이닥터드레 프로(54만9천원), 슈어(SE535·54만원), 소울바이루다크리스(SL300·44만9천원) 등의 제품들은 수십만 원에 달하는 고가임에도 ‘박태환 헤드폰’ ‘빅뱅 헤드폰’ 등으로 불리며 성공을 거두었다.   

지난해에는 다양한 프리미엄 이어폰·헤드폰 제조사가 국내에 진출하고, 이미 자리를 굳히고 있던 제조사 역시 여러 신제품을 선보이며 시장의 규모를 크게 키웠다. 최근 1년여 사이 소울바이루다크리스, 나카미치, 페니왕, 에리얼7, 소노로, 어반이어스, 스코시 등 무려 10여 개의 해외 브랜드가 국내에 새로 정착했다. 응치순 젠하이저 아시아총괄사장이 “한국 시장에서 2009년과 비교해 헤드폰 매출액이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고음질 수요를 채우며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한국은 그들에게 새롭게 떠오르는 시장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커진 만큼 경쟁도 뜨거워졌다. 오디오테크니카, 슈어 등은 눈에 띄는 신제품을 발표하며 기존에 지키고 있던 자리를 고수하기 위해 애쓰고 있고 ‘노이즈 캔슬링’ 기술로 유명한 독일의 음향기기 제조업체 젠하이저도 인기 라인인 IE 시리즈의 최신 이어폰과 프리미엄 헤드폰을 출시하며 공세에 나섰다. 로지텍 역시 자사의 고급형 이어폰 브랜드인 얼티메이트이어(UE)의 보급형 모델을 통해 국내 인지도를 한층 끌어올렸다. 소니는 신기술을 채택한 이어폰 11종(XBA시리즈)을 출시하며 프리미엄 이어폰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해외 브랜드 각축전에 삼성전자도 가세

그렇다면 국내 음향기기 제조업체들의 사정은 어떨까. 국내 제조업체 대부분은 1만~2만원대 보급형 제품을 제작하는 데에 치중하고 있다. 자금이나 기술 면에서 국제적인 기업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다. 음향기기 유통업체 우성음향이 20만원대의 고급 이어폰을 선보인 것이 눈에 띄는 성과로 꼽히지만, 브랜드 인지도가 떨어져 국내에서 1% 미만의 시장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가격 대비 성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음에도 브랜드 힘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국내 대기업이 이쪽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CJ E&M은 지난해 유명 힙합 뮤지션 닥터드레가 참여한 이어폰 ‘비츠 바이 닥터드레’의 정식 수입·유통을 맡으면서 제조업체인 몬스터 사의 국내 입지를 확고하게 굳혔다. ‘비츠 바이 닥터드레’는 10만원대 제품이지만 같은 라인의 프로 제품은 54만9천원으로 고가의 제품군을 형성하고 있다. CJ E&M이 이처럼 정식 수입원의 역할만 하는 데 비해 삼성전자는 더욱 적극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8일 자사가 제작한 이어폰 ‘유어 사운드’ 시리즈 4종을 선보이며 이어폰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고가가 10만원 중반대인 삼성전자의 이어폰은 저가 이어폰과 고가 이어폰 사이에서 경쟁력을 강화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음향기기 업계 관계자는 “이제는 번들 이어폰으로 제공되는 것도 제품의 질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해외 브랜드들이 맞춤 전략을 쓰고 있는 것도 그렇고 기능을 수준급으로 맞춘 중저가 제품이 양산되는 것을 보아도 그렇다. 경쟁이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만큼 각 브랜드들은 위치 선정을 잘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도 기존에 나왔던 제품들에 대한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좋은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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