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는 ‘닌텐도 왕국’, 애플 효과에 당했다?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2.02.07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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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게임 성장으로 위기…악재 겹쳐 대규모 적자 기록할 듯

지난 1월2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인사하는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사장. ⓒ AP 연합
세계 최대 비디오 게임 업체인 닌텐도가 30년 만에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닌텐도는 지난 1월26일 실적 공시를 통해 올해 3월로 종료되는 2011 회계 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순손실액을 공개했다. 공개된 순손실액은 6백50억 엔(한화 약 9천4백억원)으로 앞서 내놓았던 전망치 2백억 엔보다 3배 이상 많은 수치이고 블룸버그통신 전문가 예상치인 2백90억 엔보다도 훨씬 웃도는 규모이다. 아직 3월이 되지 않아 회계 연도가 종료되지는 않았지만 이같은 전망이 현실로 다가올 경우에 닌텐도는 현재와 같은 회계 기준이 적용된 지난 1981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적자를 기록하게 된다.

‘하드웨어’ 보급에 급급…‘콘텐츠’에는 소홀

닌텐도는 혁신으로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기업이다. 2008년에 무려 7조원의 영업이익을 냈을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닌텐도에 부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10년 상반기에도 닌텐도는 20억1천만 엔(당시 한화 약 2백80억원)의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무려 7년 만의 적자였다. 닌텐도DS 시리즈의 판매량은 전년도의 절반가량인 6백69만여 대에 그쳤고 위(Wii) 역시 전년도 판매량 5백75만대에서 감소한 4백97만대에 그쳤다. 주력 제품인 ‘닌텐도DS’ 시리즈와 타이틀 판매량이 저조했고 엔화 강세의 영향이 컸던 것이 주 요인이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2010년과 현재 모두 닌텐도의 위기 뒤에 애플이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 닌텐도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한 애플은 모바일 게임 시장 점유율에서 급격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2008년에는 5%였던 애플의 점유율이 2009년 말 19%로 급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닌텐도는 75%에서 70%로 점유율 하락세를 보였다. 이는 엔화 강세 요인과 더불어 닌텐도의 상반기 매출을 전년도에 비해 34%나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닌텐도 신화의 위기를 논하는 현재에도 애플은 끈질기게 닌텐도를 따라다닌다.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강력한 제품 하나로 이미 세계 최대 휴대전화 제조업체인 노키아를 무너뜨렸다. 노키아는 불과 1년 만에 순이익 1조9백여 억원(2010년 4분기)에서 순손실 1조5천8백여 억원(2011년 4분기)을 기록하며 롤러코스터를 탔다. 시장 점유율 역시 몇 년 사이 반 토막이 났다.

그런데 애플이 가진 힘은 휴대전화라는 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애플이 마련해놓은 앱스토어라는 장은 모바일 게임 분야를 활성화시키며 점유율을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애플이 직접적으로 생산해내지 않아도 콘텐츠는 끊임없이 공급되었다. 이 무궁무진한 콘텐츠 앞에서 게임업계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거나, 아니면 앱스토어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게임기와 콘텐츠를 동시에 공급하는 닌텐도에게는 어떤 무기가 있었을까? ‘마리오카트’와 ‘슈퍼마리오’ 시리즈로 방어에 성공할 수 있었을까?

1982년 영화 <E.T.>가 개봉했다. 비디오 게임 회사 아타리는 거액을 주고 <E.T.>의 게임 독점 개발권을 따냈다. 아타리가 프로그래머에게 준 개발 기간은 단 5주였다. 단시간에 만들어진 게임이 명작일 수 없었다. 당시 크리스마스 예상 비디오 게임 시장 규모는 30억 달러였지만 1억 달러 미만으로 급속히 줄어들었고 아타리는 이 일로 인해 완전히 몰락하게 되었다. 

게임 하나가 한 회사를, 그리고 미국 전체의 게임 산업을 붕괴시키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비디오 게임계의 대공황이라 불리는 ‘아타리 쇼크’는 실제로 발생했다. 당시 비디오 게임 업계에서 독보적인 선두였던 아타리는 한 해 20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내고 있었지만 순식간에 판매량은 바닥을 헤맸다. 심지어 반품된 게임팩들이 너무 많아 그것들을 콘크리트에 넣은 후 뉴멕시코 사막에 묻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콘텐츠의 막강한 힘은 이렇게 반증되었다. 굳이 라이선스를 따지 않아도 누구나 게임을 만들어낼 수 있게 했던 아타리2600 게임기에 저급 게임들이 범람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혹자는 ‘아타리 쇼크’를 떠올리며 닌텐도를 연관 짓기도 한다. 하드웨어 보급에만 급급할 뿐 소프트웨어를 구성하는 콘텐츠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이다. 닌텐도의 대표적인 휴대형 게임기 ‘닌텐도 3DS’는 지난해 2월 발매를 시작으로 당해 1분기에 전세계 72만대, 2분기에는 2백37만대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현재까지 누계 판매량만 약 1천5백만대에 이른다. 처음 출시했던 ‘닌텐도DS’와 비교했을 때에는 판매율이 다소 부진하다고도 볼 수 있지만 성능을 끌어올리고 입체 영상을 추가한 3DS는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문제는 콘텐츠였다. 최근 닌텐도가 출시한 게임 대부분은 ‘포켓몬’ ‘젤다’ 등 기존 인기 게임의 후속작이거나 ‘두뇌 훈련’ 등 기능성 게임뿐이다.

바뀐 IT 환경에 맞춰 변화 꾀할지 의문

지난해 9월1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 게임쇼’에서 관람객들이 ‘닌텐도 3DS’를 체험하고 있다. ⓒ EPA 연합
닌텐도가 전과 크게 다르지 않게 비슷한 게임을 만들어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이용자는 유입되지 않고 기존 이용자는 빠져나가는 악순환에 빠지기 시작했다. 국내의 한 중소 게임사는 닌텐도에서 혁신이 사라졌다고 비판했다. 이 게임사는 게임 개발을 위해 닌텐도에 찾아갔다가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비디오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나 엑스박스(XBOX)가 나왔을 때 닌텐도는 닌텐도DS와 Wii를 내놓으면서 전혀 다른 경쟁 구도를 만들어냈다. 온몸으로 게임 조작을 하는 콘솔 게임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혁신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비슷비슷한 게임들만 나오면서 성인들은 닌텐도DS를 손에서 놓고 Wii에도 먼지만 쌓이기 시작했다. 아이폰으로도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게임기를 따로 들고 다니면서 할 생각이 들까. 그래픽만 향상시켜서 같은 것을 또 내놓는 것을 반복하다가는 점점 더 소비자에게서 멀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엔화 강세도 적자의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닌텐도는 과거에 거두어들인 천문학적 이익을 예금이나 채권으로 쌓아두었다. 외화 비중이 높은 닌텐도 금융 자산은 엔화 강세로 그 가치가 땅에 떨어졌다. 닌텐도는 앉아서 5백억 엔(한화 약 7천3백억원)이라는 막대한 환차손을 입은 셈이다.

닌텐도는 이번 영업적자를 계기로 닌텐도 3DS 판매 예상 수준을 기존 1천6백만대에서 2백만대 줄여 1천4백만대로 하향 조정하고, 콘텐츠 판매 역시 기존 5천만개에서 3천8백만개로 대폭 줄였다. 이와타 사토루 닌텐도 대표는 “연말 시장에서 3DS의 판매 호조가 예상되는 만큼 현재의 악재들은 조만간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올해 말에는 차세대 게임기 WiiU의 발매가 예상되어 있는 만큼 현재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닌텐도의 한 자문관이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용자를 확보하는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현재 닌텐도의 사업 전략에서는 쉬운 상황이 아니다”라고 언급한 만큼 닌텐도가 바뀐 IT 환경에서 근본적인 변화는 배제한 채로 또다시 전성기를 되찾는 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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