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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화 한 켤레’로 드러난 한국 축구의 ‘치부’

대한축구협회, 비리 직원 인사 조치 과정에서 노조 반발 사…부당 개입·비자금 등 간부 비리 의혹까지 불거져

류청│스포탈코리아 기자 ㅣ 승인 2012.02.14(Tue) 11:4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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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3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조중연 축구협회장이 최근 벌어진 비리 사건의 감사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아시아의 호랑이가 쓰러졌다. 외상이 아니다. 심각한 내장 질환이다. 대한축구협회(이하 축구협회)가 창립 이후 최악의 비리 사건에 휘말렸다. 내부 감사, 대한체육회 특정 감사에 이어 결국 공은 수사기관으로 넘어갔다. 사상 처음으로 축구협회의 치부가 바깥 세상에 드러났다.

‘횡령’ 혐의에 면죄부…위로금까지 주며 ‘희망 퇴직’시켜

절도 미수, 횡령, 내부 조사 부당 개입, 업무상 배임, 노동조합(이하 노조) 성명서 발표, 부당 퇴직금 지급, 비자금 의혹, 간부 비리 의혹, 협박, 사정기관 수사…. 어느 악덕 기업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축구의 본산인 축구협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과 2012년 런던올림픽 메달 획득을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축구협회가 흔들리고 있다.

사건의 시작은 사소했다. 2011년 11월8일 새벽, 회계담당 직원인 A씨가 심판국에서 축구화 한 켤레를 훔치려다 다른 직원에게 발각되었다. 단순 절도 미수였다. 그런데 이 직원과 관련한 의혹(세 차례에 걸쳐 리워드 포인트 기프트 카드로 2천4백89만원 횡령)이 제기되면서 일이 커졌다. 조중연 축구협회장은 철저하게 조사하라고 지시했고, 인사위원회에서는 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자체 감사에 들어갔다.

조사위원회의 일 처리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인사위원회는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내렸다. 2011년 12월16일 권고 사직안을 결정했다. 횡령이 아닌 절도 미수 혐의였다. 협회는 ‘인출한 기프트 카드를 축구협회 금고에 보관해왔다’라는 A씨의 주장에 무게를 실었다. 이 직원은  2천4백89만원의 기프트 카드를 인출하고, 협회 금고에 그 돈을 돌려놓은 뒤 면죄부를 받았다. 돈을 썼지만 돌려놓으면 횡령이 아니라는 이상한 규정을 내세워 협회 스스로 눈을 감았다. 축구협회는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해 존재하지 않는 ‘희망 퇴직’ 규정을 적용해 이 직원에게 위로금(2년치 연봉, 1억5천만원)까지 지급했다. 비리 직원에게 형사 고발이 아닌 포상이 내려진 셈이다.

애써 불이 바깥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했지만, 내부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2012년 1월26일, 축구협회 노조가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불은 큰 줄기로 옮겨붙었다. 노조는 A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세 차례에 걸쳐 부당 개입한 김진국 전무이사의 퇴진을 요구했다. 내부자에 의해 바깥 세상에 치부가 드러났다. 노조는 협회에 김전무에 대한 문책을 요청했었으나 오히려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일곱 명의 간부에게 부서 이동 명령(1월25일)이 떨어졌다.

김전무는 서둘러 모든 것을 부정했지만 의혹은 더 커졌다. 이 직원이 수뇌부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입막음용으로 위로금을 지급했다는 의혹, 그가 조사 과정에서 한 인사위원에게 협박 편지(비리 폭로)를 보냈다는 의혹(이후에 편지는 사실로 확인되었고, A씨는 “협박용이 아니었다”라고 말 바꿈)이 흘러나왔다. 축구협회는 발 빠르게 대응했다. 같은 날 저녁 긴급 이사회를 열고 김전무의 사퇴를 결정했고, 김주성 국제부 부장을 신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아시아의 삼손’(김주성)도 불을 잠재우지 못했다. 대한체육회는 1월30일부터 5일 동안 축구협회에 대한 특정 감사를 실시하고 2월3일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논란이 되었던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시정 조치를 내렸다. 위로금 환수와 함께 비리 의혹에 대한 형사 고소 조치와 수사 의뢰 조치(A씨- 횡령과 협박, 김전무- 업무상 배임)를 명했다.

조회장은 감사 결과가 나온 후에야 전면에 나왔다. 그는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라고 말했다. 양해도 구했다. 조회장은 “대표팀 감독 교체 문제 등으로 집중 비판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외부에 알려질 경우 협회 이미지 추락이 우려되어 고육지책으로 그런 결정(위로금 지급)을 내렸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선도 확실히 그었다. 더 이상의 비리는 없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고개를 끄덕인 이는 많지 않았다.

의혹의 불길은 현 수뇌부의 몸통으로 옮겨붙어

   
협회는 2월 초에 해당 직원을 고소하면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김전무에 대한 고소 여부도 법리적으로 따져보기로 했다. 또한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김재윤 민주통합당 의원이 요청한 회계 자료도 제출했다. 수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나름으로 최선의 조치를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의혹의 불길은 다른 곳으로 옮겨붙었다. 바로 20년 동안 축구협회를 지배하고 있는 현 주류(수뇌부)의 몸통으로 튀었다. 잠재되어 있던 불만과 불신이 안팎에서 한꺼번에 터져나왔다. 한 축구계 인사는 “올 것이 왔다”라고 말했다. 

내년 1월에 실시되는 52대 축구협회장 선거 판도도 바뀔 가능성이 커졌다. 조회장은 취임 후 투표권을 지닌 지방축구협회를 배려했다. 친선 경기와 월드컵 예선전도 지방에서 개최했고, ‘균형 발전’이라는 말도 수시로 입에 올렸다. 연임, 혹은 재집권을 위한 포석이었다. 하지만 계속된 악재로 지방축구협회는 현 집행부를 드러내놓고 지지하기 힘들어졌다. 명분이 서지 않는다. 게다가 조회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라며 불출마를 시사했다. 김전무마저 사퇴한 상황에서, 현 집행부 내에는 뚜렷한 후보가 없다.

눈은 지난 51대 선거에서 조회장에게 밀려 낙선한 한국축구연구소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에게 쏠리고 있다. 대표적인 축구계 야당 인사인 허회장은 축구에 대한 이해력과 행정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옆에는 든든한 우군까지 있다. 조광래 전 감독, 이용수·신문선 교수도 있다. 출마에 대한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반사 이익까지 누릴 수 있는 현 상황에서는 가장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비리가 아니다. 20년간 축구협회를 지배해온 주류들의 실상의 단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회의 일반적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그들만의 세상’. 축구협회 노조의 한 관계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다”라고 주장했다.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소나기가 그치기만을 기다렸던 축구협회는 스스로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물론 수뇌부가 교체되어도 바로, 저절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조직적이고 확고한 의지와 시간이 필요하다. 누가 52대 축구협회장이 되든, 월드컵 4강보다는 상식의 회복을 앞세워야 한다. 한국 축구의 위기는 대표팀의 경기력에서 오지 않는다. 내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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