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사망이 남긴 ‘의문의 잿더미’
  • 충남 당진·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2.02.14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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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에서 일가족 5명이 불에 타 숨진 사건에 미스터리 많아…제3자 범행 가능성 제기돼 주목

지난 1월26일 일가족 5명이 사망한 충남 당진의 화재 사건 현장. ⓒ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1월26일 자정 무렵, 충남 당진의 한 농가에서 불이 났다. 70대 노부부가 수십 년 동안 살아온 이 집에는 전날 저녁에 고향집을 방문한 아들 김 아무개씨(43) 부부와 손자가 함께 있었다. 모두 다섯 명의 일가족이 참화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참혹한 화재 현장에는 수많은 미스터리가 남았다. 일부 가족들에게서 타살을 의심케 하는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부부의 목에는 흉기에 찔린 흔적이 있었고, 손자 김군(9)의 목에는 전깃줄이 감겨 있었다. 특히 아들 김씨의 폐에만 화재 연기의 흔적이 발견된 것이 눈길을 끌었다. 이는 화재가 발생했을 때 다른 가족들은 이미 죽은 상태였고, 김씨만이 홀로 살아 있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김씨를 제외한 네 구의 시체는 일렬로 배열되어 있었으며 움직인 흔적도 없었다.

천안에 있는 김씨의 아파트 CCTV 화면에는 25일 오후 8시께, 당진의 고향집으로 출발하기 직전 김씨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여기에는 김씨가 먼저 아들을 안고 내려온 후, 다시 집으로 올라가 옷으로 덮은 아내를 업고서 내려오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와 함께 아파트 방 안에서는 신원 미상의 혈흔(현재 경찰이 국과수에 감식을 의뢰한 상태)도 발견되었다. 이런 정황을 들어 경찰은 김씨가 천안 자신의 집에서 아내를 먼저 살해한 뒤 당진 본가로 가서 부모마저 죽이고 집에 불을 질러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많은 의문점이 뒤따른다. 평소 가정불화가 잦았던 김씨가 천안 자신의 집에서 말다툼 끝에 아내를 살해했다손 치더라도 왜 굳이 본가에 가서 부모까지 살해했을까 하는 의문이 우선 생겨난다. 기자가 사건 현장을 취재하면서 추가로 확인된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은 이런 의문을 더욱 짙게 만든다. 기자가 접촉해본 마을 주민들은 한결같이 아들 김씨가 평소 선량한 성품을 지녔으며 이런 일을 저지를 인물이 결코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평소 김씨가 부모와 다투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아들 김씨 가족이 (부모의 집에) 자주 올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 농사일이 바쁜 여름에는 일손을 도우러 주말에 많이 내려왔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의 아버지가 상당한 재산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2천5백여 평에 이르는 논밭에서 큰 규모로 농사를 지을 정도로 부를 쌓았다는 것이다. 반면 아들 김씨는 경제 형편이 좋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사업이 잇달아 실패하면서 빚을 안게 되었고, 일자리가 없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경찰은 아들 김씨가 빚을 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한 사례로 김씨의 아내는 회사 동료에게 “대출을 받아야 한다”라는 투의 언급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김씨가 부모의 재산을 노려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통장 수십 개가 바닥에 널려 있었던 것도 의문

화재로 타다 남은 김씨 가족의 물건들. ⓒ 시사저널 유장훈
이와 관련해 눈길을 끄는 새로운 정황이 있다. 경찰측에 따르면, 사고 직후 현장에서 수십여 개의 통장이 타다 남은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평소 많은 수의 계좌를 개설해 재산을 관리해온 아버지의 것이었다. 집이 화염에 휩싸이기 전 그의 통장을 방바닥에 늘어놓은 이는 누구이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가정불화 끝에 천안에서 처자식을 살해하고, 사체를 은닉하려 당진 본가에까지 왔다가 재산 욕심에 부모마저 살해했으나, 극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방화로 자살을 선택했으리라는 추정이 이어진다. 하지만 그렇게만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도 석연찮은 점이 많다.

우선 25일 저녁 김씨의 천안 아파트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분명하지 않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인물이 있다. 김씨에게는 죽은 작은아들 외에도 고등학생인 큰아들(17)이 있었는데, 그는 가족들을 따라 당진으로 향하지 않고 계속 집에 머물러 있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김씨의 큰아들이 경찰에 “오후에 낮잠이 들었다가 저녁에 일어나 보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라고 진술했다는 점이다. 거짓 진술이 아니라면, 김씨 가족이 당진으로 떠나기 전까지 그의 집은 큰아들이 잠을 깨지 않을 만큼 조용했던 셈이다. 만약 부부가 서로 다퉜다든지 김씨가 아내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큰아들을 깨울 만한 소음이 발생하지 않고도 가능했어야 했다는 뜻이 된다.

김씨가 여동생과 나눈 통화 내용 또한 의구심을 낳고 있다. 1남4녀 중 셋째인 김씨는 25일 오후 10시쯤 자신의 첫째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내일 어머니를 천안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 데려가서 건강검진을 받으려 한다. 시간이 되면 어머니를 모시고 (여동생의 집에) 들르겠다”라는 말을 했다. 그 밖의 대화 내용이나 분위기 또한 평상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김씨가 처자식을 살해한 후 당진의 본가로 가서 모두 함께 죽고자 했다면 굳이 이런 전화 통화가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 사건의 가닥은 크게 두 갈래로 잡힌다. 가정불화로 인한 우발적 범행으로 자신의 처자식을 살해했을 가능성과 부모의 재산을 노린 계획된 범행이었을 가능성이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라면 굳이 당진 본가에 가서 부모까지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 또 후자처럼 계획된 범행이었다면 왜 갑자기 그가 자살을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남는다. 

일가족의 시신에 새겨져 있는 현재까지의 여러 정황은 아들 김씨를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게 만든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조심스럽게 제3자의 범행 가능성도 제기한다. 경찰은 “아직까지 외부인의 흔적은 포착되지 않았다”라고 강조한다.

현재 경찰은 여러 증거에 대한 국과수의 감정 결과를 기다리는 한편, 아들 김씨의 채무 및 신용 관계 등에 초점을 맞추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충남지방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용의자 신원을 확보한 후 수사를 진행하는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르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수사가 마무리되면 곧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나, 그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특정할 수 없다”라고 곤혹스러워했다.

부모와 아내 그리고 아들이 이미 숨을 거둔 상태에서 그 곁에 누워 화재로 인해 질식사한 김씨. 그는 과연 일가족 네 명을 살해한 인륜을 저버린 범죄자였을까. 아니면 일가족을 살해한 용의자로 무고하게 지목되고 있는 억울한 인물일까. 사건을 둘러싼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간다.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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