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기로에 선 공정위 ‘전속 고발권’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2.14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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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보다 중소기업 고발 10배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나…정치권·검찰 “폐지” 한목소리

‘전속 고발권 행사 내역’ 서류. ⓒ 시사저널 김미류
정치권의 ‘재계 때리기’ 불똥이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로 옮겨 붙었다. 공정위가 재벌의 불공정 행위를 감시하는 ‘경제 검찰’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현재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의 ‘전속 고발권’을 쥐고 있다. 기업이 이 법을 위반해도 공정위 고발 없이는 수사를 하거나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제도이다. 심지어 피해자들조차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동안 폐지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김영선(새누리당)·노영민(민주당) 의원 등이 잇달아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했다. 민주통합당 경제민주화특별위원회는 올해의 어젠다로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 문제를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민주화특위의 한 관계자는 “지난 30년간 공정위가 처리한 사건 중에서 검찰에 고발한 건수는 1%도 되지 않는다. 특위 차원에서 전속 고발권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논의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중대한 범죄 ‘바람막이’ 역할” 지적

공정위측은 현재 전속 고발권 유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공정위 경쟁정책과의 한 관계자는 “최근 10년간 형사 고발 건수가 2백79건이다. 전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다. 외국 사례나 국가 산업 전반을 고려할 때 전속 고발권 유지는 타당하다”라고 말했다. 공정위는 특히 전속 고발권이 폐지되면 중소기업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의 관계자는 “대기업의 경우 검찰 수사가 들어와도 법률 자문을 받아 대응할 수 있다. 반면 중소기업은 수사에 대비할 여력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무분별한 검찰 수사나 소송에 대한 안전장치 마련 차원에서라도 전속 고발권은 유지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9월22일 국정감사장에서 김동수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사진 두 번째). ⓒ 시사저널 김미류(서류)

<시사저널>은 최근 7년간 ‘공정위 전속 고발권 행사 내역’을 입수·분석했다. 지난 1981년부터 2009년까지 공정위에 적발된 공정거래법이나 하도급법 위반 행위는 5만3천31건에 이른다. 이 중 2005년부터 2011년까지 7년간 검찰에 고발된 건수는 1백86건에 불과했다. 형사 고발 비율이 1%도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고발한 사건 중 60%인 1백11건은 공정위의 시정 조치 불이행에 따른 조치였다. 담합이나 하도급법 위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된 건수는 77건에 머물렀다. 신건 민주당 의원은 “현행 공정거래법 71조 2항에 따르면 중대한 범죄는 검찰에 고발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공정위의 전속 고발권 행사 내역을 보면 검찰에 고발할 중대한 위반 사건이 해마다 10건 정도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라고 꼬집었다.

검찰 기소율도 매우 낮았다. 공정위가 지난 7년간 검찰에 고발한 사건 중에서 구속 기소된 사례는 두 건(검찰 수사 중인 28건 제외)에 불과했다. 역시 1%에도 못 미쳤다. 불구속 기소 건수를 합해도 10건을 넘지 않는다. 나머지는 구약식(100건), 불구속 구공판(20건), 기소 유예(12건), 입건 유예(4건) 등의 경징계가 대부분이다. 혐의 없음도 일곱 건이나 되었다. 신건 민주당 의원은 “중대한 범죄는 과징금으로 처리하고 경미한 범죄만 검찰에 고발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 전속 고발권의 실효성이 의심되는 만큼 현실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전속 고발권이 폐지되면 중소기업이 가장 먼저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공정위 해명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매출 기준으로 100대 기업이 검찰에 고발된 건수는 14건에 불과했다. 중견기업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나머지 1백60여 건은 중소기업이 고발 대상이었다. “전속 고발권이 사실상 대기업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라는 비난이 정치권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검찰 고발 자체가 일부 심의위원들의 회의에 의해 결정된 터여서 우려가 더했다. 한 대기업 임원은 최근 기자와 사석에서 만나 “심결 위원 몇 명만 관리를 하면 검찰 고발을 피할 수 있다. 전속 고발권이 없어지면 이런 혜택이 사라지게 된다. 현재 기업의 대관(對官)팀이나 재계 관련 단체들이 관련 의원실을 상대로 전속 고발권 유지를 위한 물밑 로비를 벌이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해야”

검찰과도 각을 세우고 있다. 검찰이 전속 고발권 문제를 노골적으로 비난할 정도이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7월 국내 ‘빅3’ 설탕회사의 담합 사건 처리 과정에서 CJ제일제당만 고발하지 않았다. 담합을 자진 신고하고 협력한 CJ제일제당에 대해 검찰 고발을 면제해준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삼양사, 대한제당 등과 함께 CJ제일제당을 기소하면서 공정위와 마찰을 빚었다. 때문에 공정위의 개혁을 준비 중인 민주당 경제민주화특위도 조심스러운 분위기이다.

특위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만 대대적으로 개혁할 경우 검찰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담합이나 하도급 등 중대한 범죄에 우선 적용한 뒤, 순차적으로 보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말했다.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최근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전속 고발권의 필요성을 설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위원장은 현재 정치권의 반기업 정서가 확대되면서 전속 고발권의 폐지나 축소 문제가 거론되고 있는 점에 우려를 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김위원장은 정무위원들을 1 대 1로 만나 전속 고발권이나 동의 의결제 문제에 대한 이해를 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의영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속 고발권이 경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군사 정권의 폐해인 만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전속 고발제가 처음 시행된 것은 5공화국 초기인 1981년 4월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른바 ‘12·12 군사 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했다. 이후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기구인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를 설치하면서 국회를 해산시켰다. 정상 국회가 아니라 혁명법의 통제하에서 전속 고발권이 만들어진 만큼 현재 경제 상황과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교수는 “미국의 경우 공정거래법 관련 소송의 89%가 민간에 의해 진행되고 있다. 공정위가 아니면 피해를 당해도 소송조차 할 수 없는 군사 정권의 유물은 폐지되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박정구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손해액의 다섯 배를 보상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토론회에서 “미국의 경우 손해액의 세 배를 배상하게 하는 세 배 손해액 배상(treble damage) 청구 소송이 있다. 법 위반으로 예상되는 기대 수익보다 처벌로 예상되는 기대 손실이 커야 대기업의 위반 행위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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