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발톱에 할퀴는 ‘골목 상권’의 비명
  • 김세희 기자 (luxmea@sisapress.com)
  • 승인 2012.02.14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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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중심으로 장사를 하는 영세 상인들이 대형 마트 등의 거침없는 확장 탓에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대로 가면 민심이 폭발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온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대기업들이 배후에 버티고 선 기업형 슈퍼마켓 SSM이다. 동네 슈퍼마켓은 그들의 공세에 대응할 무기가 없어 속수무책으로 무너진다. 동네 빵집, 채소 가게, 재래시장도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골목 상권의 현실을 집중 취재했다.

ⓒ 시사저널 김미류, ⓒ 시사저널 박은숙

민생이 폭발 직전이다. 전국상인연합회 등 전국 단위의 연합체들은 대형 유통사들을 상대로 실력 저지에 나섰다. 대형 마트 등의 거침없는 확장에 골목 시장 상인들은 다 죽게 생겼다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입학철을 맞아 학부모들이 느끼는 부담도 크다. 대학 등록금은 쥐꼬리만큼 내렸고, 고교생들의 교복 한 벌은 40만원이 넘는다. 현장에서 느끼는 물가도 많이 올랐다.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래저래 서민들의 우울함은 더 깊어가고 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재벌 개혁 목소리가 날로 높아가자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 2월8일 ‘상생’ 결의문을 냈다. 그러나 구체적인 쇄신안이 없어 의례적인 ‘면피성’ 결의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들끓는 민심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이다.

영세 상인들은 골목 상권이 무너졌다고 말한다. 이런 상태로 가면 민심이 폭발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장준영 민생경제연대 대표는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문제가 터질 수밖에 없다는 위기감마저 느껴진다”라고 현장 목소리를 전했다. <시사저널>은 대기업이 잠식해가고 있는 골목 상권의 현재를 들여다보았다.

골목이 아프다. 언제부터랄 것도 없이 골목은 순식간에 대기업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그들의 새로운 무기는 기업형 슈퍼마켓(이하 SSM)이다. SSM은 대형 마트와 다르게 소규모로 만들어지는데, 대형 마트가 가지고 있는 주차장이나 접근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어찌 보면 SSM은 그저 집에서 가까운 골목 슈퍼마켓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한 슈퍼마켓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대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덧입었다. 게다가 ‘기존 슈퍼마켓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신선 식품을 선보이겠다’는 취지와 통일된 인테리어까지 내보였다. 또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할인 마트 개념까지 더하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네 슈퍼마켓들로서는 SSM에 한번 밀리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적자를 감수하거나 문을 닫아야 한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서 16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김재형씨(53)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씨는 주변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선 이후 한 달에 버는 돈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예전에 한창 일반 슈퍼마켓들이 여럿 생길 때는 밥그릇 싸움이려니 생각했고, 또 그 당시에는 전단지 써 붙이고 제품들 많이 가져다 놓고 그렇게 열심히 하다 보면 매출이 어느 정도 나오기도 했다. 많지는 않았지만 자식들 키우고 먹고살 정도는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때와 180˚ 다르다. 가끔 내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나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큰 거 하나(대형 마트) 들이는 것으로도 부족해서 골목마다 씨를 뿌려놓으려고 하니 우리 같은 영세 자영업자들은 이제 설 곳이 없다. 이 동네 주변에서 가게 하는 사람들은 요새 다들 죽을 맛이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배달도 해보고 별수 다 써도 희망 없어”

근처에 있는 채소 가게도 다를 바 없었다. 오히려 사정은 더 나빠졌다. 이 가게는 최근 5년 사이 주인이 네 번이나 바뀌었다. 주인이 바뀌면서 다루는 품목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손님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박성철씨(가명·49)는 지난해 초 이곳에 새로 들어와 장사를 시작했다. 손님인 줄 알고 반갑게 인사했던 그는, 기자임을 밝히자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인터뷰도 꺼렸다.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에 시작했는데 이제는 월세도 제때 못 내게 된 자신이 부끄럽고 화가 난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 아파트단지도 있고 일반 주택들도 있어 장사가 그래도 웬만큼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자리에) 들어왔다. 이전 업주들이 다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그만두었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진짜 이유를 알 것 같다. 도저히 여기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SSM과 경쟁해보기 위해 애를 쓰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그는 “수박 한 통도 배달하고, 찾는 물건이 없으면 직접 가져도 오고…. 정말 이 짓 저 짓 다 해봤는데도 소용이 없다. 이제 이 일도 그만해야 할 것 같다”라고 말하며 돌아섰다. 

지난 2010년에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과 대·중소 기업 상생 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상생법)이 개정되었다. 이 법안에 따르면 SSM은 전통시장의 반경 5백m 내에 만들 수 없고, 프랜차이즈형 SSM 가맹점은 직영점과 마찬가지로 사업 조정 신청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방법이 만연해 있어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이하 슈퍼마켓연합회) 관계자는 “가맹점 형태의 편법이다. 점주가 51% 지분을 가지고 대기업이 49% 지분을 가진 다음에 법을 개정해서 인수를 할 수도 있고, 사업 조정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서 편법을 쓰는 경우는 많다. 무늬만 중소 사업자라는 말이다”라고 말했다. 법 조항에 따르면 유통업체가 점포 지분 51% 이상을 가지고 있어야 적용이 가능하다. 그런데 대기업이 49%만 가지고 나머지는 외부에서 끌어들인다면 법망을 쉽게 피해갈 수 있다. 결과적으로 SSM업계는 법망을 피해 SSM 점포를 곳곳에 세우고 있는 셈이다.

기존 업체 인수하는 우회 전략도 구사

이런 방식으로 대형 유통업체의 골목 상권 공략은 지속되고 있다. 유통법 등으로 신규 점포 개설이 어려워지자 기존 업체를 인수하는 등 사업 확장을 위해서 우회 전략도 서슴지 않는다. ‘변종 SSM’과 중소 마트를 인수해 SSM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 결과물이다. 롯데쇼핑과 GS리테일, 홈플러스, 이마트의 SSM 점포 수는 약 1천100개로 전년도에 비해 2백80여 개(31%) 증가했다. 대기업의 슈퍼마켓 진출을 제한하는 법률이 시행 중이지만 새로 개점한 SSM은 전년도(2백72개)보다 오히려 10개 이상 늘어났다.

이마트는 지난 1월27일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신청한 SM마트와의 기업 결합 심사에서 최종 승인을 받았다. 현재 SM마트는 파주 등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3백평 안팎의 중형 슈퍼마켓 매장 28개를 운영하고 있다. 이에 앞서 이마트는 지난해 5월 이랜드에서 킴스클럽마트 매장 53개를 인수한 바 있다. 이로써 이마트의 SSM 점포 수는 단번에 이마트에브리데이 19개, 메트로 5개 등 24개에서 77개로 증가했다. SM마트까지 SSM으로 운영된다면 이마트의 SSM은 총 1백5개로 늘어나게 된다.

롯데쇼핑도 지난 1월24일 공정위로부터 CS유통 인수를 조건부로 승인받았다. 롯데쇼핑은 전국에 3백15개 SSM 점포를 운영 중이다. 이번에 인수한 CS유통이 운영하는 2백11개(직영점 굿모닝마트 35개, 임의 가맹점 하모니마트 1백76개)의 점포까지 합치면 5백20여 개로 홈플러스 익스프레스(2백48개)와 GS슈퍼마켓(2백9개)을 압도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이마트의 SSM 사업 가속화에 대해서 앞서 있는 ‘빅3’(롯데슈퍼,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GS수퍼마켓)를 따라잡기 위한 전략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 이마트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롯데슈퍼 등과는 달리 새로 생기는 상권에 진출해 골목 상권과의 마찰을 최소화하겠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해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여론을 고려해 지난해 SSM 출점을 최대한 자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롯데쇼핑이 SSM업계의 선두로 확실하게 치고 나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마트가 그동안 지역과의 상생을 말하면서 동네 슈퍼마켓에는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는 착한 기업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이마트측에서는 SM마트를 어떻게 운영할지 결정이 안 되었다고 하지만 업계에서는 SSM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다. 대형 마트에서는 앞서 있지만 SSM에서 선두를 차지하려면 제쳐야 할 업체가 많아 이마트가 어떤 전략을 들고 나올지는 더 지켜보아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전 경실련 동네 경제 살리기 추진협의회가 지난해 12월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역적 합의가 없는 홈플러스 SSM의 둔산 2동점 입점 강행을 철회하라”라고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SSM 늘어나면 상품 가격이 낮아진다고?

대형 유통업체들이 4년 동안 무려 세 배가 넘는 점포 성장을 기록하며 공룡 싸움을 하고 있는 반면 슈퍼마켓과 전통시장 등 골목을 지키던 자영업자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 2001년 11만6백85개였던 동네 슈퍼마켓은 8년이 흐른 지난 2009년 7만9천2백개로 줄어들었다. 골목 상권의 다른 축인 전통시장도 타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장경영진흥원에 따르면 전통시장 자체가 감소한 것은 물론이고 지난 2006년 29조8천억원을 기록했던 매출이 4년 만에 24조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 마트는 26조4천억원에서 33조7천억원으로 7천억원이 넘는 매출 신장세를 기록했다. 

영세 자영업자 입장에서 SSM은 골목에서 물러나야 할 대상이다. 그들은 “공정 경쟁에 의해서 도태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의 골목 진출로 소상공인들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대해서 화가 난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이런 모습이 자칫 ‘우는 소리’로 비칠까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슈퍼마켓연합회 관계자는 “대기업들이 진출해서 경쟁력 없는 소상공인들이 죽는다, 밥그릇 싸움에서 밀린다, 이런 것들이 객관적인 사실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를 더 본다. 국가적인 경제 측면 말이다. 대기업이 들어와 골목 상권이 죽고 지역 경제가 죽었을 때 소비자들의 편익이 정말 올라가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궁금하다. 주머니 가벼운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같은 물건이라도 싸게 사는 것이 좋고, 마침 대형 마트나 SSM들이 늘어나면서 물건 가격도 전반적으로 낮아진 것 같다. 자사보다 더 싸게 파는 업체가 있으면 상품권을 주겠다는 마케팅까지 나왔던 판이니 의심할 여지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전혀 다른 설명을 했다. 오히려 물가를 상승시키는 데 대형 마트와 SSM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그는 “대형 마트들도 처음과는 달리 물건 가격을 하나하나 올리고 있다. 또 그 마트에 서 계시는 아주머니들, 그분들은 다 해당 제품 제조업체에서 부담해서 하는 것이다.

대형 마트에 납품을 하게 되면 제조업체가 부담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이것들이 다 원가에 반영된다. 대형 마트에서 장려금 같은 것(그는 이것을 속칭 ‘백마진’이라 말했다)을 요구하면 줘야 하는데 제조업체도 살아야 하기 때문에 결국 원가를 올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물가가 올라가는 것 역시 당연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규모 바잉파워가 없는 중소 상인들은 물건을 비싸게 받아서 비싼 값에 팔 수밖에 없다. 제조업체는 중소 유통에서 돈 벌고 대형 유통업체에서는 현상 유지만 하고 있는 셈이다”라고 말했다.

대기업이 골목 상권을 잠식해가는 현상이 심화되자 서울시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이르면 3월 말부터 시내 대형 마트와 SSM의 심야 영업을 제한하고, 월 2회 강제 휴무제를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유통법에 월 1~2회 의무 휴업일을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지만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최상한선을 정한다는 방침이다. 규제 대상 점포는 0시부터 오전 8시까지는 영업을 하지 못하고, 일요일 하루를 포함해 매월 2회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한다. 해당 점포가 이런 조치를 어기면 1천만~2천만원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이같은 움직임은 전국적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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