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NBA 벽 넘어 세계 울린 ‘작은’ 거인
  • 서민교│MK스포츠 기자 ()
  • 승인 2012.02.21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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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닉스에서 활약 중인 타이완계 미국인 제레미 린의 감동 스토리 화제…인종 차별적 편견과 역경 극복해 ‘영웅’ 등극

지난 2월14일 열린 NBA 경기에서 드리블하는 뉴욕 닉스의 제레미 린 선수(왼쪽). ⓒ Xinhua

미국 프로농구(NBA)는 지금 황색 돌풍에 열광하고 있다. 퇴출 위기에 몰리는 등 주목받지 못하던 동양인 가드가 NBA를 강타했다. 미국 전역은 동양인 한 명에 매료되었다. 영화보다 짜릿한 감동 실화이다. NBA 명가 뉴욕 닉스를 이끌고 있는 타이완계 미국인 제레미 린(23·키 1백91cm)의 이야기이다.

뛰어난 기량 보여주고도 농구 명문 대학 진학 못해

제레미 린은 올 시즌 NBA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혜성같이 나타난 린의 깜짝 등장에 미국 전역이 놀랐다. 린은 화려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아니다. 어린 시절 뛰어난 기량을 지니고도 동양인이라는 편견과 인종 차별적 모욕을 견뎌야 했다. 역경을 극복한 ‘신데렐라’ 성공기이다.

린은 1970년대 미국으로 이민 온 타이완계 아버지와 중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슈하우 린(林書豪)이라는 타이완 이름도 있다. 캘리포니아 주 지역 YMCA에서 농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팔로알토 고등학교에 입학해 정상급 가드로 활약했다. 린은 학과 성적도 우수한 데다 기량도 탁월해 농구 명문 대학 진학이 가능했다.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편견이 그를 가로막았다. 그는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 소속 스탠퍼드, UCLA 등 농구 명문 대학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는 아이비리그 소속인 하버드 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장학금도 받지 못했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이 그를 이끌었다. 역사가 깊은 NBA에서도 하버드 대학 출신은 찾기 힘들 정도로 이색 경력이다.

린은 하버드 대학에서도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다. 하지만 NBA 30개 구단은 하버드 대학 출신의 동양인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는 2010년 NBA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 린은 포기하지 않았다. 언드래프티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 입단했고, 올 시즌 개막 직전 휴스턴 로케츠에서도 방출되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계약을 맺은 구단이 바로 뉴욕 닉스이다. 부상자를 대비한 백업 선수 활용을 위한 카드였다. 린은 시즌 초 식스맨으로 경기에 가끔 나섰지만, 출장 시간이 짧아 존재감은 없었다. 그는 뉴욕 산하의 D-리그 에리 베이혹스로 내려갔다. D-리그에서 트리플 더블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그는 뉴욕 닉스로 다시 승격되었다. 그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였다. 그리고 그는 기회를 확실하게 잡았다.

린은 가드 출신의 명장인 뉴욕 닉스의 마이크 디앤토니 감독으로부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식스맨으로 나선 경기에서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이후 선발 출장 기회를 얻으며 무한 신뢰를 받기 시작했다. 린의 돌풍이 시작되었다. 그는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뉴욕 닉스를 살려냈다. 카멜로 앤서니 등 주축 선수가 부상으로 빠졌지만, 팀의 7연승을 이끈 것은 동양인 린이었다.

린은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루키 존 월(워싱턴 위저즈), 리키 루비오(미네소타 팀버울브스)를 상대로 완승을 거두었고, NBA 최고의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LA 레이커스)를 누르고 커리어 하이인 38점 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린은 연속 끝내기 쇼타임을 선보이며 팀의 6연승을 이끌었고, 어시스트 13개를 기록하며 7연승까지 책임졌다.

린은 2003-04시즌 르브론 제임스(마이애미 히트) 이후 처음으로 NBA 선발로 나선 첫 2경기에서 평균 20점 8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한 선수이다. 1976-77시즌 이후 첫 선발 출장 4경기 최다 득점(1백9점), NBA 역사상 최초 20점 7어시스트 이상 기록을 세웠다.

피부색을 빗댄 ‘돼지’ 혹은 ‘중국 음식’이라는 모욕을 들어야 했고, ‘특별하지 않은 동양인의 스타 만들기’라는 비아냥거림도 참아야 했다. 이런 모욕적인 발언에 대해 린은 “그런 얘기는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라며, 자신을 향한 조롱을 비웃듯 연일 상종가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주 동부 컨퍼런스 ‘주간 MVP’에 선정된 린은 이미 NBA 최고의 스타로 발돋움했다. 미국은 물론 아시아 언론에서도 린의 농구 인생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NBA 공식 홈페이지와 ESPN에서도 연일 린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NBA 최고 스타들의 전유물이던 메인 화면을 차지했고, 린을 위한 ‘톱10’ 영상도 제작되었다.

린은 현재 NBA에서 가장 폭발적인 인기와 인지도를 누리는 선수이다. 그의 감동 스토리는 스포츠 영웅에 굶주리던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다. 린의 농구 저지(jersey)는 지난주 한 시간 반 만에 62개가 모두 팔렸고, 현재 구하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지난 한 주간 뉴욕 닉스 경기의 전미 시청률은 66% 급등했고, 린의 시장 가치는 코비 브라이언트와 견줄 수 있는 1천4백만 달러로 환산되었다. 짧은 시간 최고의 가치 상승이다.

린에게서 파생되는 경제 효과도 상상 이상이다. 소속팀 뉴욕 닉스의 모기업인 메디슨스퀘어가든(MSG)의 주가는 린과 함께 연일 상종가를 치고 있다. 게다가 NBA에서 기대하는 아시아의 대규모 시장을 겨냥한다면 폭발적인 경제 효과는 숫자로 환산하기조차 힘들다. 린을 놓친 명문 대학과 그를 방출시킨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는 팬들의 비난을 받으며 막대한 손해를 입어야 했다.

린은 광기를 의미하는 합성어인 별명 ‘린새니티(Linsanity)’로 미국을 흔들어놓고 있고, 영문 이름 앞 글자를 딴 ‘레전드 인 뉴욕(Legend In Newyork)’으로 침체되었던 뉴욕을 열광의 도시로 만들고 있다.

린에게는 중국 출신 장신 센터 야오밍과 다른 뭔가가 있다

동료와 승리의 기쁨을 나누는 제레미 린. ⓒ AP연합
린의 활약은 놀랍기만 하다. NBA는 동양인의 무덤이었다. 농구는 신체 조건의 한계를 극복하기 힘든 스포츠 종목이다. 1946년 출범한 NBA 역사상 동양인의 성공 사례는 극히 드물다. 중국 출신으로 휴스턴 로케츠에서 9시즌 활약한 뒤 은퇴한 야오밍이 유일했다. 야오밍은 2백29cm의 장신 센터이다. 탁월한 신체 조건이 NBA의 성공적인 활약을 안겨주었다. 신체 조건만 뛰어나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탄탄한 기본기와 기술이 요구된다. 2백21cm의 하승진(전주 KCC)은 NBA 도전에 실패하고 돌아왔다.

NBA에서 가드의 성공 사례는 전무했다. 포인트가드로 팀을 이끌고 있는 린이 위대한 이유이다. 린의 돌풍은 깜짝 쇼가 아니다. 린은 7경기 연속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개인 플레이로 기록만 양산하는 선수가 아니다. 린의 활약에 힘입어 소속팀 뉴욕 닉스는 연패를 끊고 7연승했다. 15승15패로 승률 5할을 만들었다.

린은 천부적인 재능이라는 바탕에 끊임없는 노력을 더해 완성된 모델이다. NBA에서 크지 않은 1백91cm의 신장이지만, 순발력과 스피드, 탄력, 신체 밸런스가 뛰어나다. 동양인에게서 쉽게 나타나지 않는 능력이다. 꾸준한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만들어진 탄탄한 근육질 몸과 체력은 흑인 선수와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특히 린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영리한 두뇌이다. 하버드 대학 출신답게 코트 비전이 뛰어나다. 농구에서 말하는 ‘가드의 눈’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평가받는 포인트가드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조건이다. 그의 드리블과 슈팅력은 흑인 못지않은 유연성과 안정성을 갖추었다. 후천적 노력의 산물이다. 야오밍은 부상으로 일찍 은퇴했다. 코트에서 보여준 활약보다 코트 밖 재활 기간이 더 많았다. 부상 위험성이 작은 린은 야오밍보다 더 다양한 능력과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린이 평범한 동양인이라는 조건은 미국 사회의 편견을 없애고, 아시아 농구 꿈나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져주었다. 린은 국적을 넘어선 ‘영웅’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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