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형식 프로그램, 변화무쌍한 것만 산다
  • 정덕현│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2.02.21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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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스케>에서 시작되어 심사 방식 등 끊임없이 진화 / 최근 <보이스 코리아> 등 역발상 ‘눈길’

SBS 의 심사위원인 보아·양현석·박진영. ⓒ SBS

“시청자의 눈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CJ E&M에서 음악 사업을 맡고 있는 신형관 국장은 오디션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는 이유를 이 한마디로 정리했다. 신국장은 크게 화제를 모았던 <슈퍼스타K3>를 기획했고 최근에는 <보이스 코리아>를 기획한 장본인이다. 블라인드 오디션이라는 신개념 콘셉트를 장착한 <보이스 코리아>는 본래 <더 보이스>라는 해외 포맷을 가져와 한국화한 것으로 첫 회부터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비슷비슷한 형식 반복은 위험천만…새로운 콘셉트 발굴해야

오디션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게 된 심사위원의 독설이나 거친 평가에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의 풍경 따위는 <보이스 코리아>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이 오디션은 사실상 심사위원이라는 존재가 없다. 그들은 심사위원이 아니라 ‘코치’로 불린다. 자신의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참가자의 목소리가 있다면 버튼을 눌러 회전의자를 돌림으로써 코치는 참가자를 선택한다. 가창력이 아닌 화려한 퍼포먼스나 외모에 휘둘릴 여지를 ‘등 돌리고 있는 코치’로 넘어선 것이다. 게다가 이 오디션은 기존 심사위원과 참가자 사이에 놓여진 ‘권력 관계’(?)를 뒤집는 장치도 있다. 한 참가자를 복수의 코치가 선택하면, 선택권은 거꾸로 참가자에게 넘어간다. 이렇게 되면 코치가 참가자에게 자신이 무엇을 더 잘 해줄 수 있는가를 어필하는 역(逆)오디션이 되어버린다. 대중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쏟아져나온 오디션 프로그램 때문에 이제 더는 새로운 오디션은 없다고 여겼던 시청자에게 이 전혀 다른 콘셉트의 오디션은 새롭게 다가섰다.

방송계에서는 ‘새롭지 않으면 보지 않는다’라는 것이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최근의 오디션 형식의 예능 프로그램만큼 변화 속도가 빠른 것은 찾아보기 힘들다. 엠넷의 <슈퍼스타K2>가 지상파 시청률을 압도할 정도의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기 전, 오디션 형식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는 낮았다. <슈퍼스타K> 시리즈는 시즌2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환풍기 수리공으로서 우승자가 된 허각을 통해 대중은 일종의 신분 상승의 판타지를 대리 경험했다.

하지만 <슈퍼스타K2>의 대성공은 거꾸로 이 프로그램의 위기로 찾아왔다. 마침 규제가 풀린 지상파 간접 광고 허용으로 지상파에서도 대거 오디션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이다. <위대한 탄생> <댄싱 위드 더 스타> <기적의 오디션> 등등 숱한 오디션 프로그램이 동시에 쏟아져나왔고, 여기에 변종 오디션인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2> 등이 가세하면서 지난해의 예능은 사실상 오디션 빼고는 찾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은 오디션 형식의 소비 속도를 더 빨리 진행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슈퍼스타K3>가 이른바 ‘악마의 편집’이라고 불릴 정도의 편집증적이고 선정적인 편집을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이런 편집 기술은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보다는 참가자의 항의와 반발 등을 이슈로 만들었지만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관심은 시즌2만 못했다. 대중도 무얼 보아도 비슷비슷한 형식이 반복되는 오디션 형식의 프로그램에 시큰둥해진 것이다. 

SBS 출연자들. ⓒ SBS
반전은 지난해 말에 시작한 <K팝 스타>에서 나타났다. 거대 기획사 3사, 즉 SM, YG, JYP가 함께한다는 사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방송이 시작되면서 일거에 사라졌다. 사실 방송 전, 거대 기획사와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여겨졌다. 물론 거대 기획사에서는 늘 오디션을 실시하지만, 그 오디션과 오디션 프로그램은 정서적으로 확연히 다른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즉,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존 기획사 시스템 바깥에 놓인 가수 양성 시스템으로 인식되었다. 나이와 성별, 심지어 외모와도 상관없이 누구나 가창력만 있으면 참가할 수 있고 가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기존 거대 기획사 시스템과는 차별화되는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만의 장점으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일반 대중의 판타지가 섞여 있는 판단일 뿐이다. 현실은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결국은 다시 기획사를 찾아가는 그 구조에서 드러났다. 오디션을 통해 인지도는 높아졌지만 가수 활동을 위해서는 기획사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난 셈이다.

따라서 거대 기획사 3사가 참여하는 <K팝 스타>는 이제 그것이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오디션이 가진 판타지가 사라진 대신 좀 더 현실적인 시선으로 오디션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기획사가 참여하는 오디션이라는 차별성은 프로그램 형식의 차별성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기획사가 발굴해내려는 아이돌 콘셉트는 참가자의 연령을 현저히 낮춰놓았고, 참가자를 심사하는 방식은 3대 기획사의 개성과도 맞물렸다. 심사위원으로 앉은 YG의 양현석과 JYP의 박진영은 같은 참가자의 노래를 듣고도 의견 대립이 잦았는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하는 YG와 기본기를 중시하는 JYP의 기획사 특징이 드러나는 식이다.

“대중이 새로운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속도도 빨라져”

게다가 각 기획사가 선택한 참가자가 그 기획사의 트레이닝을 받는 점도 이 오디션만의 특징이 되었고, 그들이 또 서로 경연을 벌일 때 드러나는 기획사 간의 긴장감은 기존 오디션 형식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결국 <K팝 스타>는 이러한 차별점이 있었기 때문에 숱한 오디션 형식 속에서도 대중의 열광을 끌어낼 수 있었다.

<나는 가수다>를 기획한 김영희 PD는 “대중이 프로그램에 익숙해지는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처음 먹혔던 방식을 오래도록 지속한다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되었다”라고 말한다. 즉, 일단 형식에 적응하기 시작하면 무언가 끊임없이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대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의 시즌2는 시즌1과는 사뭇 달라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사실 어찌 보면 지난해 <나는 가수다>가 대중문화계 전반에 미친 충격파는 기존 오디션 형식을 뒤집은 데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일반인이 참가’하는 오디션에 톱클래스 가수가 참가하고, 거꾸로 청중평가단이 탈락자를 선정하는 방식이 그렇다. 하지만 이 역발상은 1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이제 새로운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 진화 또는 변화는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계속적인 진화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엠넷의 신형관 국장은 “할 수 있는 것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란 결국 음악 프로그램이라는 큰 틀에 있는 한 가지이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음악 프로그램이 당대의 방송 트렌드와 맞물려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온 것처럼 앞으로도 이 진화는 끝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현재의 오디션 형식은 다큐적인 리얼리티 형식과 무대 형식이 맞물린 형태이지만 이것은 또 대중의 기호와 맞물려 새로운 형식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국장은 “이제 모든 유사 프로그램을 오디션이라는 하나의 틀로 묶기가 애매해진 상황이다”라고 말한다. 그가 <보이스 코리아>를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니라 ‘슈퍼 보컬 서바이벌’이라는 구체적인 명칭으로 부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확실히 지금 오디션 형식은 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이 트렌드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끊임없는 진화 덕택이다. 그것이 없는 한, 오디션 형식은 쉽게 소비되고 잊힐 것이다. 이 오디션의 진화는 또 새로운 다른 형식과 맞물려 전혀 다른 이종 예능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크다. 모든 생태계가 그러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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