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정신에 침 뱉는 경기장 뒤의 ‘못된 손’들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2.21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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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스포츠계 경기 조작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이다. 프로축구에서부터 프로배구, 프로야구까지 종목을 가리지 않고 검은 덫에 걸려들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에 열광해왔던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도 그만큼 크다. 이같은 경기 조작 사건의 배후에는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라는 범죄의 소굴이 자리 잡고 있다. 불법 도박 사이트와 선수, 브로커들의 담합으로 얼룩진 경기 조작의 실상을 추적했다.

한 직장인이 인터넷에서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프로축구, 프로배구에 이어 프로야구까지 ‘승부 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야구팬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그라운드에서 승리를 열광했던 함성은 실망과 분노의 메아리가 되고 있다. 누가 얼마나 승부 조작에 연루되었는지는 검찰 수사를 더 지켜보아야 한다. 하지만 검은 거래의 실체는 점점 드러나고 있다. 넥센 투수 문성현은 “불법 도박 브로커로부터 경기 조작에 가담하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거절했다”라고 밝혔다. 프로야구선수협회는 경기 조작 의혹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했다.

프로선수들의 ‘승부 조작 사건’은 왜 끊이지 않는 것일까. 그 배후에는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가 있다. 이들이 사실상 추악한 돈거래의 몸통이다. ‘스포츠 토토’는 일명 ‘돈 놓고 돈 먹기’에 비유된다. 한쪽의 승리를 점쳐서 그곳에 돈을 걸고 이기면 배당금을 받는다. 베팅 금액이 적다면 몰라도, 거액이면 경기 결과에 따라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다. 그래서 돈을 주고라도 ‘승리’를 매수하겠다는 유혹에 빠진다. 선수들은 승부 조작에 가담한 대가로 돈을 챙긴다.

불법 도박 사이트와 선수들 중간에는 전문 브로커들이 끼어들었다. 브로커들의 면모를 보면 전직 프로 선수이거나 선수들을 잘 아는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보면 모든 부정 경기에는 현역 선수와 전직 선수 그리고 이들과 가까운 사람이 꼭 연관되어 있다. 브로커들이 사이트를 운영하고, 돈을 대주는 물주가 따로 있기도 하다. 브로커 대다수가 사이트를 운영한다고 보면 된다”라고 말했다.

사실 사설 베팅 사이트의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1년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하는 스포츠토토㈜가 설립된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왔다. 합법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스포츠 토토가 유일하다. 온라인은 베트맨에서만 합법적으로 베팅할 수 있다. 축구·농구·야구 등의 경기를 대상으로 결과를 예측하고 경기 결과에 따라 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 베팅액은 한 번에 최대 1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전체 매출액의 50%가 당첨금, 25%가 위탁 사업자의 몫이 된다. 나머지 25%는 체육진흥기금으로 쓰인다.

하지만 베팅액이 제한되면서 ‘일확천금’을 부추기는 불법 베팅 사이트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들은 금세 승부의 세계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지금은 퍼질 대로 퍼진 상태이며,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직장인, 대학생 심지어 10대 청소년들까지 스포츠 토토에 빠져들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도박 사이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손안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나 베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해 3월 충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가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와 사무실에서 압수한 물품들. ⓒ 충남지방경찰청

회원 가입 절차도 까다로워 단속에 어려움

사설 토토는 베팅액이 무제한이다. 베팅 가능한 게임도 국내 경기뿐만 아니라 중남미, 동유럽 2·3부 리그 축구, 아이스하키, 탁구 등 다양하고 24시간 발매하고 있다. 체육진흥투표권은 승부식(승무패)·기록식(최종 점수) 두 가지 종류를 발행하지만, 불법 베팅 사이트에서는 수백 가지의 파생상품을 발매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지하 자금’으로 분류되는 사설 토토 시장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스포츠 토토측은 적게는 13조원대에서 많게는 39조원대로 보고 있다. 이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조사 결과와는 차이가 있다. 연구원이 지난해 6월에 낸 자료를 보면 국내에서 활동하는 스포츠 도박 사이트는 1천19개에 이르고, 사이트 한 개당 1백25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를 통해 시장 규모를 산출해보면 약 12조원~13조원에 이른다. 합법 스포츠 토토의 시장 규모(연간 1조9천억원)보다 무려 여섯 배가 넘는 규모이다. 전체 매출액의 10% 정도를 배당금으로 보면 범죄 수익금 규모가 1조2천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아 세금 탈루의 온상이기도 하다.

불법 스포츠 도박 업자들의 사이트 운영 방식은 첩보 영화를 방불케 한다. 이들은 관계 당국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서버를 중국·홍콩·일본·베트남 등 해외에 두고 있다. 사이트 운영과 자금 관리는 이원화하고 있다.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무실은 오피스텔이나 가정집 등에 두고 눈속임을 하고 있으며, 건물 지하에 PC방으로 위장해 컴퓨터를 설치한 뒤에 사설 경마를 운영한 업자도 있었다.

회원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뽑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회원 가입’만 하면 누구나 베팅이 가능했다. 하지만 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강화했다. 지금은 몇 단계의 신분 확인 절차를 더 거쳐야 한다.

지난해 6월 부산지방경찰청은 100억원대의 불법 스포츠 토토 도박 사이트 운영 조직을 검거했다. 이들은 기존 회원의 추천을 통해서만 회원들을 모집했다. 일단 전화 면접을 통해 스포츠 토토를 한 경험이 있는지, 경찰에 단속된 사례가 있는지 등을 꼼꼼하게 확인한 뒤 가입을 승인했다.

이들은 경찰이 수사를 위해 회원으로 잠입하는 것을 차단했다. 이를 위해 일단 회원으로 등록한 사람들에게는 예비 사이트를 이용하게 했다. 그런 후 IP를 추적해 관공서 등에서 사용되는 고정 IP이거나 의심이 들면 아예 접근을 차단시켰다. 예비 사이트를 통해 ‘도박꾼’들만 골라냈다. 가령 거액을 베팅하거나 사이트를 자주 이용하는 회원들을 따로 골라내 정식 도박 사이트로 유인해 가입시킨 것이다.

이재홍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은 “사설 스포츠 토토 사이트 운영 초기에는 휴대전화와 이메일 광고를 통해 회원을 유치하지만 2~3개월 이후부터는 회원 수가 일정 규모에 달하면 사이트에 대한 광고를 중단해 추천인 제도로 변경하면서 비공개로 운영한다. 회원들에게는 수사기관에서 단속당할 위험이 없어졌다며 안심시키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는 이용자들의 사행심을 조장하기 위해 각종 장치를 마련했다. 공식 스포츠 토토 사이트의 경우 일주일에 두 번, 한 번에 10만원씩만 베팅할 수 있지만, 이들이 운영하는 사이트는 최소 1만원에서 100만원까지 언제든지 베팅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상한선을 없앴다. 또 공식 스포츠 토토에 없는 핸디캡(잘하는 팀에 -1.5 핸디캡), 오버&언더(기준 점수보다 높거나 낮은 점수에 베팅), 스페셜(야구는 4회, 축구는 전반전까지 승무패 베팅) 등 게임 방식을 세분화해 승률이 50%까지 되도록 만들었다. 

범죄 수익금 관리도 철저하게 했다. 전문 인출꾼을 고용해 매월 5백만원을 지급했다. 현금 인출기(CD)는 사무실과 거리가 먼 곳을 이용했다. CD에서 한번 돈을 인출하면 곧바로 다른 장소로 옮겨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회원들은 활동 실적에 따라 최저 단계인 이병 계급에서 최고 단계인 원수 계급으로 차등화했다. 계급에 따라 당첨 금액도 달랐다. 이병 계급은 당첨되면 최대 100만원까지 지급했고, 원수 계급은 1천만원까지 지급하는 것이 가능했다.

장기 회원에게는 더 많은 당첨금을 주는 방식으로 고액 베팅을 유도했다. 이같은 방식으로 1년 동안 정회원 2천7백여 명이 몰렸고, 판돈은 모두 1백1억원에 이르렀다. 이용객들은 대부분 지인들의 소개로 사이트에 가입한 회사 동료, 사회 선후배 사이였다. 이 가운데 한 30대 남성은 1년 동안 9천만원을 베팅했다가 6천만원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다. 

배당금 등 온갖 이벤트로 고객 끌어들여

불법 스포츠 토토는 상상을 초월하는 이벤트로 고객을 끌어모은다. 경기 수가 많아질수록 추가 배당금을 제시하고, 적중되지 않아 잃게 되는 돈의 일부를 마일리지로 적립해주기도 한다. 또 매일 1회 첫 입금 때에는 충전 보너스를 10% 추가해 지급하기도 한다. 기존 회원이 지인 등에게 가입을 유도하면, 신규 가입 회원 손실액을 일정 비율로 기존 회원에게 지급하는 ‘추천인 제도’를 통해 이용자를 늘리고 있다.

강신성 (사)전국도박피해자모임 사무국장은 “도박 사이트를 이용한 사람은 로그인 기록이 남는다. (경찰에서 수사하면) 도박 계좌에 입금했던 사람들은 잡히는데, 초범일 경우 약 50만원의 벌금이 나온다. 그러면 해당자는 도박 사이트 운영자에게 하소연을 한다. 그러면 인심을 쓰는 척하며 50만원을 입금해준다. 벌금을 보존해주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도박자는 그 돈으로 또 게임을 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도한다. 요즘 불법 사이트 운영자들이 이 정도까지 머리를 쓴다”라며 혀를 찼다.

회원 유치를 위한 홍보 활동도 날로 지능화되고 있다. 이들은 사이트를 홍보하기 위해 이메일, 쪽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등을 가리지 않는다. 불특정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발송해 회원을 모집한다. 사이트에 접속이 이루어지면 미끼를 문 것으로 판단한다. 그때부터 베팅을 하도록 작업한다.

기자의 개인 이메일에도 하루에 수십 통의 ‘스팸 메일’이 전송된다. 이 중 상당수는 불법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서 보낸 것이다. ‘확실한 수익 보장, 스포츠 토토 사이트 LIVE24’라는 제목으로 도박 베팅을 유도하고 있다.

이들의 홍보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유명 포털 사이트에 광고를 게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포털 사이트 이용자가 원하는 키워드를 검색하면 검색 결과 화면의 첫 페이지 사이트에 노출하는 방식이다. 실제 네이버·다음·야후 등 포털 사이트에 ‘스포츠 베팅’을 입력한 후 검색하면 불법 토토 사이트들이 뜨는 것을 알 수 있다.

안경률 새누리당 의원은 “각 포털 사이트는 키워드 광고를 이용하는 곳이 문제가 없는지를 사전에 별도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도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를 홍보하는 내용이 아무런 제약 없이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 이는 포털 사이트가 불법 스포츠 베팅업자로부터 광고비를 받고 중개·알선 행위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라고 지적했다.

2009년 6월22일 K리그와 KBO 등 6개 경기단체 선수단이 기자회견을 통해 스포츠 토토에 대한 전자카드제 도입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피해 줄일 수 있는 전자카드제 도입하라”

스포츠 중계 사이트를 이용한 홍보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최근 인터넷을 통한 스포츠 중계 방송이 활성화된 점을 이용해 불법 스포츠 베팅업자들이 직접 중계 방송을 개설해 불법 베팅을 유도하고 있다. 대다수 포털 사이트가 운영 중인 스포츠 경기 중계 서비스 게시판도 불법 베팅업자들의 홍보 창구로 변모한 지 오래다.

스포츠 베팅과 관련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불법 스포츠 베팅 사이트를 홍보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커뮤니티 운영자가 회원들에게 노골적으로 불법 사이트를 홍보하는 곳도 있다. 회원들이 비공개적으로 이용하는 채팅창을 통해 불법 사이트를 중개하거나 알선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트위터, 유튜브, 블로그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MS)가 불법 사이트의 홍보 채널로 악용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노세호 충남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장은 수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는 “불법 베팅 사이트들은 5~6개의 도메인을 가지고 있다. 불법 사이트를 적발하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폐쇄 요청을 하면 실제 차단까지는 약 2주간의 기간이 걸린다. 그러면 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은 다른 도메인으로 변경해서 계속 영업을 한다. 도박 사이트들이 인터넷 주소를 변경해서 영업할 수 있는 시간을 주지 않으려면 실시간 차단 조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국무총리실 직속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는 지난 2009년 과도한 베팅을 방지해 도박 중독 등 사회적 부작용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전자카드제 도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스포츠계의 강력 반발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현재 스포츠 토토의 수익금 25%가 체육진흥기금으로 쓰이는데, 만약 전자카드제를 도입하면 기금이 줄어들고 체육 꿈나무 육성 등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시민단체들은 “불법 스포츠 토토 사이트를 없애고, 도박 피해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완전한 전자카드제(생체 인식 본인 확인, 베팅액, 베팅 횟수 기재 필수)가 꼭 필요하다”라며 전면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합법 사행 산업에서 발생한 중독자들이 불법 도박으로 옮겨가는 것을 막고, 장외발매소와 신규 사행업의 진출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0년 4월 도박 산업 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 네트워크 소속 회원들이 사행 산업 감독 강화와 도박 중독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박은 인간성을 파괴하는 중병이다. 계속 방치할 경우 도박 중독으로 인해 재산 탕진, 가정 파괴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심하면 자살로도 이어진다. 이로 인한 사회적인 손실은 엄청나게 크다. 강신성 (사)전국도박피해자모임 사무국장은 ‘도박 중독’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셀 수 없이 보았다. 그를 통해 스포츠 토토 중독자들의 실상을 알아보았다. 

‘토토 중독’은 쉽게 진단할 수 있다. 만약 한두 번 이상 토토를 샀던 사람이 자기가 관심 있는 경기가 끝난 후에 결과를 확인하면 중독 증세로 보아야 한다. 합법이나 불법 토토에 베팅을 하다가 중간에 안 했다고 치자. 그 사람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데이터를 가지고 의도적으로 결과를 찾아보면 이것 또한 중독 증상이다.

10대 청소년들도 스포츠 토토 중독이 심각하다. 요즘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일진’으로 불리는 학생들이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의 거의 100%가 토토를 한다고 보면 된다. 합법이나 불법 토토가 다 포함된다. PC방에 가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PC방 업주가 제재를 해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 토토가 도박으로 가는 첫 단계라고 보면, 그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투기성 게임에 빠져들고 그것이 성인 시절까지 이어진다.

이렇듯 사람들이 스포츠 토토에 쉽게 빠져드는 것은 스포츠에 대한 지식이 많기 때문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카지노나 경매는 처음에는 접근하기가 어렵다. 전 국민이 ‘토토 도박’에 빠져들기 전에 사행 산업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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