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죽이는 학습 스트레스, 부모의 마음속에 ‘처방전’ 있다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2.21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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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들, 아이들의 정신 건강 해친 원인으로 지목 / 부모들이 교육관·인생관 바꿔 자녀들의 인성 교육 나서야

서울 목동에 있는 한 학원 앞에서 한 남학생이 참고서를 보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지난 2월14일 서울 강남의 한 고교생이 성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공통적으로 국내 사교육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아이들의 정신 건강이 급격하게 나빠졌다고 말한다. 동기나 학습 능력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공부하는 척하게 만드는 요즘의 교육은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은 불행하고, 불행한 만큼 불만도 많다. 학교 폭력, 성적 방종, 부모와의 갈등이 임계치에 이른 것 같다. 근본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거나 교육 방향을 바꿀 힘이 없는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지 난감하다. 그렇다면 과연 공부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선 공부를 격려한다며 무심히 뱉는 부모들의 말, 혹은 생각들 중에 크게 잘못된 결과를 야기하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부모들은 생각 없이 말한 것인데, 아이는 크게 상처를 받아 공부는커녕 부모를 증오하게 만든다. 예컨대,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와 아이들로서는 숨 좀 돌리고 스트레스 풀려고 게임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이다. “또, 게임하니? 또 휴대전화나 들여다보니?” 하는 부모가 많다.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아이가 힘이 들었는지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대신 지적부터 하는 것이다. 당연히 “나도 사람이야, 좀 쉬면 안 돼?”라는 반응이 나오게 마련이다. 집에 들어서면 일단 얼굴부터 살피면서,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뭐 맛있는 것 좀 줄까?” “피곤할 텐데 좀 쉬고 일찍 자라”라고 말한다면 실컷 놀다만 왔다 해도, 그런 부모님들의 태도에 마음이 뜨끔할 것이다. 또, 공부하느라 정말 힘이 들었다면 자신을 인정해주는 부모가 있으니 더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옆집 누구, 학원의 누구, 신문에 난 누구 등과 비교하는 말도 아이들의 마음을 할퀸다. 그 아이들은 어떠어떠한 방법으로 공부하고 성공했는지 정보를 알려주고 싶은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오히려 아이들의 화만 돋울 뿐이다. 아이들은 나름으로 취미도 꿈도 다른 것이니 누군가를 닮으라고 말하면 내 아이의 개성과 자존심을 무시하는 셈이다. 입장을 바꾸어 아이들이 옆집 부모나 신문에 난 유명 인사와 내 부모를 비교하며 무능함을 비난한다면 얼마나 깊이 상처를 받겠는가.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 잃는 계기와 이유 다양

“왜 넌 공부를 그렇게 안 하니”라고 끊임없이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왜’ 안 하는지에 대해 관심도 없고 파악도 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문제이다.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는 계기와 이유는 다양하다. 애초부터 유전자가 나빠서 처음부터 공부를 못 따라가는 아이들도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지 아이들을 비난할 거리가 아니다. 주의력 집중 장애, 불안, 우울증 등이 있어서 공부에 집중을 못하다 보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선생님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대개는 초등학교 고학년쯤부터 학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우리나라 교육 체계상 다시 궤도에 올라가는 것은 거의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

힘들게 공부하고 일해야 할 이유도 동기도 없는 경우가 사실은 더 문제이다. 부모가 엄청나게 부자인 경우, 그래서 내가 죽을 때까지 다 써도 마르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부모의 자식 중에는 왜 힘들게 사냐고 진심으로 반문하는 아이들이 있다. 또, 그리 큰 부자가 아니더라도 부모가 모든 것을 다 해주고 결정도 해주는 분위기에서 자라면, 내가 뭘 하려 하지 않아도 부모라는 뒷심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부모에게 화가 많이 나 있어서 공부를 잘 해서 부모가 행복해하는 꼴을 보기 싫을 때도 공부를 하지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아야 할 이유는 많고 공부를 해야 할 이유는 없을 때, 부모의 잔소리는 아무 소용이 없다. 

지나치게 긍정적인 태도나, 지나치게 부정적인 태도도 해롭다. 예컨대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올라가지 않아서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때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무조건 하면 되지. 이 세상에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은 없어”라는 식의 반응은 곤란하다. 남들은 다 하면 된다는데 나만 되지 않는다면 과연 내가 살 필요가 있는 사람인가, 내게 미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또 반대로 성적이 올라도 “겨우 그깟 성적 받아오면서 좋아하느냐”라는 식으로 아이의 기를 죽이거나, 오른 성적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떨어진 성적에만 초점을 맞추는 식도 해롭다. 성적이 오르면 돈이나 물건을 사 주고, 성적이 떨어지면 용돈을 줄이는 식의 돈과 성적을 연결하는 것도 해롭다. 아이는 자신을 위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거래를 하기 위해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존경받는 부모의 조건이 무엇인지 깨우쳐야

부모들은 실컷 놀고 돈 쓰고 전화기에 매달려 있으면서 아이들에게만 금욕적인 태도와 공부를 강요하거나 형제 중 한쪽만 편애할 때, 아이들은 부모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존재가 아니라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도덕군자처럼 공부하라고 말하면 반항을 유발할 뿐이다. 자녀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배운다. 만약 자녀들이 열심히 사는 것을 원한다면 본인들부터 책을 보고, 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부모와 함께 책을 보고 토론하는 데 익숙한 아이들과 노름하고 돈 쓰고 게으름 피우며 싸움만 하는 집안에서 자란 아이들이 같을 수는 없다.

비싼 과외를 시키면 성적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다. 사교육 시장에서 유명해진 사람들은 학부모의 마음을 쥐락펴락하는 능력과 단기적으로 성적을 올려주기 위해 잘 찍어주는 사람들이다. 이런 능력은 장기적인 학습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 혼자 사고하기보다는 요령만 배우니 어려서 비싼 과외만 한 아이들 중에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폐인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진심으로 아이의 장래를 위한다면 비싼 과외 선생을 구해줄 것이 아니라, 당장의 결과는 좋지 않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왜 시키는가. 어른이 되어서 자기 앞가림은 자기가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지금은 왜 공부를 시키는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당장 과시하기 좋은 성적과 학벌에만 집착한다.

이런 조언에 아마 많은 학부모가 그래도 비싼 과외를 어려서부터 해주어야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학교를 나와야 좋은 직장에 취직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나마 시키지 않으면 노후에 자녀들 뒷바라지하느라 고생이라고 말한다. 노후에도 부모에게 기대는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부모가 그렇게 키운 것이다. 학생들이 과도한 공부 부담과 사회적 불평등 때문에 얼마나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지, 또 젊은이들이 왜 한없이 백수로 살고 있는지, 어려서부터 공부만 강조하고 직업 윤리와 남을 배려하는 덕성을 가르치지 않은 사회의 책임이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른 척한다.

베이비부머 세대는 그 전 세대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자녀 교육에 개입했고, 인생의 가치를 돈과 연결시켰다. 그 결과가 정신질환의 급증이고, 부모와 교사, 약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들의 증가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불행한 노후는 그런 교육관과 인생관에 따른 자업자득일 수 있다. 이제라도 자녀들의 성적에만 몰두하지 말고, 자녀가 기본적인 사람 노릇은 할 수 있도록 먼저 자신과 자녀들의 마음 공부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지 않을까. 인성을 배우게 해주지 않는 부모는 아무리 자녀 교육에 돈을 많이 쓰고 억만금을 물려주어도 결코 존경받거나 사랑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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