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으로 갈린 마을, 갈등만 ‘첩첩’
  • 홍재혜 인턴기자 ()
  • 승인 2012.03.12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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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으로 알아본 제주 해군기지 쟁점 / 구럼비 바위의 생태학적 가치 싸고도 논란

지난 3월8일 열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촉구하는 시민대회(왼쪽)와 3월7일 열린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시위. ⓒ 연합뉴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찬성파와 반대파가 갈등하는 현장은 전쟁터가 따로 없다. 철조망과 펜스가 둘러쳐진 가운데 경찰들이 쫙 깔려 현장을 지키고 있다. 정치권 인사들은 선거 국면과 맞물려 이슈화에 한창이다. 강행하는 측은 밀어붙이고 반대하는 측은 막무가내이다. 갈라진 우리 사회 갈등의 최전선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제주 해군기지를 둘러싼 주요 궁금증들을 정리했다.

1.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은 언제, 어떻게, 왜 시작되었나?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은 1993년 김영삼 정부 당시 해군본부 합동참모회의에서 제기되었다. 대한민국 수출입 물량의 대부분이 제주 남방 해역을 지나기 때문에 남방 해역을 효율적으로 방어하고 자원 수송 항로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당초 예정지는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항이었다. 그러나 화순 주민들과 환경단체가 반대해 무산되었다. 다른 마을이 해군기지 유치를 희망하면서 2005년에는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항으로 변경되었다가 이 또한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2007년 강정마을에서 마을회의를 거쳐 제주도에 유치 건의서를 제출했다. 제주도는 강정마을을 후보지로 올렸다. 2007년 6월 당시 노무현 정부는 여러 평가 끝에 강정마을을 해군기지로 결정했다. 

2.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계획은 다른가?

강정마을이 해군기지로 결정된 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 해군기지는 평화를 지키기 위한 예방적 군사기지이다”라며 주민들의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분란은 끊이지 않았다. 강정마을의 주민 유권자는 약 1천명이었지만 당시 유치를 찬성하는 회의에 참여한 주민은 87명이었다. 이들은 총회는 51명 이상만 참석하면 성립하기 때문에 향약 규약에 위반되는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몇 달 뒤 열린 마을회의에 8백명이 넘는 주민이 모여 유치를 반대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고 갈등은 깊어졌다.

사업이 진척되지 않자 제주도와 도의회에서는 크루즈선도 출입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을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았다. 대선 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였고 당선 후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계획을 변경했다. 2008년 9월, 정부는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15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입·출항할 수 있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 건설을 최종 결정했다.

총선·대선과 맞물리면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정치권에 일대 논란을 불러왔다.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는 “참여정부 시절 제주 해군기지는 민군 복합형 기항지로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지역 주민들의 의견 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군항 시설로 변경해 밀어붙였다”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에서 종교 지도자 등을 만나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직접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대표의 ‘말 바꾸기’에 대해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한겨레는 지난 3월8일 “참여정부의 국무총리 시절인 2007년 국회 답변에서 ‘해군기지 건설은 불가피하다’라며 해군기지 건설의 당위성을 역설했던 한대표는 자신의 입장이 왜 변했는지에 대해 책임 있는 대국민 설명은 제시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제주도당 또한 “한명숙 대표가 참여정부 총리 시절 해군기지 사업의 불가피성을 역설해놓고 이제 와 총선을 겨냥해 정략적으로 말을 바꾼다”라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의 황영철 대변인도 “제주 해군기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지역 주민과 정보·안보 관계자들이 다 모여 토론·협의한 결과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결정한 것이다. 한대표도 당시 국무총리로서 해군 기지 건설의 불가피성을 역설하며 최종 확정한 바 있다”라고 비판했다.

3. 구럼비 바위의 생태학적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구럼비 해안의 바위는 길이 1.2km 폭 1백50m의 거대한 용암 너럭바위이다. 한라산에서 흘러나온 용암이 바다에서 솟은 바위와 합쳐진 것이다. 구럼비 바위는 세계자연유산도 아니고 생물권 보전 지역도 아니다. 하지만 바위에서 솟아난 용천수로 국내 유일의 담수 습지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구럼비 바위와 인근 해안에는 멸종 위기의 붉은발 말똥게와 맹꽁이 등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인 연산호 군락도 있다. 구럼비 해안 일대에서 약 1.7~9km 떨어진 범섬, 문섬, 섶섬은 2002년 12월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되었다. 환경운동가들은 제주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생물권 보전 지역에 서식하는 희귀 생물들까지 피해를 입는다고 주장해왔다.

국방부는 구럼비 바위의 보존 가치가 크지 않다고 말한다. 2009년 문화재청 조사 결과 구럼비 바위의 보존 가치가 크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고, 1백95만km 제주 해안에 이런 바위가 산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해군기지 사업단장은 “구럼비 바위는 특정 지역의 희귀한 바위가 아니며, 제주 전역에 흔하게 보이는 까마귀쪽나무를 뜻하는 일반 보통명사이다”라고 구럼비를 설명한다. 하지만 일부에서 서귀포시 지명 유래집에 따르면 구럼비는 강정동 해안가 논지대를 일컫는 고유 지명이며, 구럼비 바위는 구럼비 해안에 있는 바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4. 공사는 어느 정도 진행되었나?

2007년 해군과 정부는 2014년까지 1조3백억원을 투입해 전투함 20여 척과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45만㎡의 건설 계획을 내놓았다. 국방부 관계자에 따르면 제주 해군기지는 제반 인·허가 과정, 부지 매입 및 어업 보상이 완료된 상태로 항만 공사 진도율은 약 13%이다.

지난해 국회는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제주 해군기지 예산 1천3백27억원 가운데 1천2백78억원을 삭감했다. 항만 등 기지 시설 공사 1천65억원, 토지 보상비 1백96억원, 설계 조사비 38억원 등 대부분을 삭감한 셈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해 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 때문에 지난해 예산 약 1천억원을 쓰지 못했기 때문에 이 돈으로 공사를 계속하겠다고 말한다.

제주도는 공사를 강행하는 해군에게 ‘공사 정지 행정 명령’을 내렸다. 청문회도 실시하겠다고 해군측에 통보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현재 공사 진행에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고, 공사를 중단하라는 법적인 결론이 날 때까지 공사를 멈추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5. 강정마을 주민들은 어떤 생각일까?

강정마을 주민들은 6년째 해군기지를 둘러싼 갈등에 지쳐 있다. 2008년 주민투표에서 94%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했지만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들도 존재한다.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 친인척끼리도 찬반이 나뉘었다. 명절과 제사도 따로 하는 상황에서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반대 집회와 시위가 늘어가면서 경찰에 연행되는 주민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 동네에 살던 이웃과 가족이 남이 되고,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예삿일이 되면서 주민들이 받는 스트레스도 극에 달하고 있다. 지난해 반대측 주민이 개를 일부러 풀어 찬성측 주민의 개를 물어뜯게 했다는 파출소 신고까지 들어왔을 정도이다. 주민들은 찬성이냐 반대냐에 따라 이용하는 슈퍼도, 휴식 공간도 다르다. 수년째 농사에 집중할 수 없어 생계에 곤란을 겪는 주민들도 존재한다. 구럼비 바위 발파 작업이 진행되면서 강정마을에 흐르는 긴장감은 나날이 더해가고 민심은 날로 쪼개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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