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어디서, 왜 꼬였나
  • 위영석│한라일보 정치부 차장 ()
  • 승인 2012.03.1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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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 강행 둘러싸고 제주도와 국방부 첨예 대립

지난 2월4일 ‘제15회 제주 정월 대보름 들불축제’ 참가자들이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5년 동안 거북이 걸음을 걷던 제주 해군기지(제주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 사업은 임기 1년을 남겨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월22일 취임 4주년 특별 기자회견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필수 안보 요소이다”라며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부터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발파가 시작된 3월7일 대한민국의 이목은 강정마을로 향했고 트위터 등 모든 소셜 네트워크의 손가락은 ‘구럼비’를 주목했다.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 등은 해군기지 사업단 입구 사거리로 속속 모여들었고 구럼비 해안으로 이어지는 모든 길목을 차량으로 막았다. 하지만 구럼비 해안 발파는 멈출 수 없었다. 한숨, 눈물, 오열, 통제 속에서도 ‘쾅’ 소리를 내면서 발파음은 여섯 차례나 이어졌다.

예고도 없이 해군측이 발파에 나서자 제주특별자치도는 해군참모총장에게 해군기지 공유수면 매립 정지를 예고하는 공문을 긴급 발송해 정부에 대해 초강경으로 맞대응하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해군측의 구럼비 해안 발파는 이튿날인 8일에도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3개월간 더 진행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정부에 맞서며 강정마을 공유수면 매립 공사 정지라는 행정 명령 카드를 꺼내들도록 꼬이게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5년 동안 제주 해군기지 사업에 대해 여러 가지 논란이 있었지만, 최근 핵심은 찬성과 반대보다 오히려 15만t급 크루즈 선박이 안전하게 항내로 들어와 접안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로 귀착되고 있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선 5기 도지사로 취임한 우근민 제주도지사는 찬반을 뒤로 하고 그동안의 얽힌 실타래를 풀기 위해 ‘윈윈 해법’으로 제주 해군기지가 아니라 확실한 민군복합형 관광 미항 건설을 통해 1조원대의 국비 예산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국책 사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겠다고 제시했다.

도지사, ‘공유수면 매립 공사 정지’로 맞서

우근민 지사는 해군기지에 관광 미항 기능을 확충하기 위해 지난해 관련 전문가들로 민관 TF팀을 구성해 해군이 지난 2008년에 실시한 기본 용역 보고서의 시뮬레이션상 오류를 밝혀냈다. 이것은 곧 15만t 크루즈 선박의 안전성 문제로 이어졌다. 국무총리실 기술검증위원회(위원장 전준수 서강대 교수)는 지난 2월17일 현재 설계대로라면 해군이 약속한 15만t 크루즈 선박의 입·출항이 사실상 어렵다고 볼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러나 검증위는 마지막에 현재의 항만 설계를 크게 변경하지 않는 범위에서 항만 구조물 재배치와 강력한 예인선 배치를 반영해 선박의 접안 안전성을 확인하기 위한 선박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고 정부에 건의해 논란이 커졌다.

여기서부터 국방부와 제주자치도의 불통과 대립이 격화되었다. 똑같은 보고서를 두고 국방부는 지난 2월29일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열고 잘못된 것이 없다며 2015년까지 예정대로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우근민 지사는 검증위 보고서가 군항 중심의 항구를 민항 중심으로 바로잡는 계기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지난 2009년 작성된 국방부와 국토해양부, 제주자치도의 협약서 제목도 한몫했다. ‘제주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 건설 사업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업으로 다르게 표시되었기 때문이다. 국무총리가 주재해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결정된 명칭을 하부 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국방부가 수용하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계속되면서 국방부와 제주자치도는 서로를 의심하고 있다. 우근민 지사가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관광 미항의 성격을 바로잡는 것이 해군기지의 열쇠이다”라고 강조해온 이유도 이같은 명칭 혼란이 사업 추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부와 제주자치도는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 공사를 위해 협의를 진행하면서 양측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추진 과정에서도 잘못된 점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만큼 소통이 부족했고 이것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제주 해군기지 공사 관계자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제작된 케이슨 1호를 임시 투하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와 함께 2월29일 강행 발표에 이어 우근민 지사가 제시한 요구 사항을 하루 만에 일축한 것도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우지사는 새누리당 제주도당 위원장 등과 공동으로 지난 3월5일 기자회견을 열었다. 구럼비 해안 발파와 공사를 일시 보류하고 제주자치도와 해군이 함께 참여하는 시뮬레이션을 추가로 실시해 그것을 통해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면 강정마을회가 해군기지 수용 여부를 주민총회에 부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하지만 바로 뒷날 국무총리실과 국방부는 공개적으로 거부해버렸다. 정부와 군 당국이 충분한 검토도 없이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고 해군기지 건설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더는 물러설 곳이 없게 된 제주도가 막다른 선택으로 맞서 대립각을 세우게 되면서, 지난해 4대강 살리기 사업에 이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총선과 대선 등 양대 선거가 다가오자 정치권이 이 문제를 이슈화한 것도 사태 해결을 어렵게 만들었다. 민주통합당은 대안 없는 원점 재검토를 요구했고 새누리당은 안보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정이나 제주도민은 뒷전이었다. 우지사가 지난 3월5일 회견에서 “정치권은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해달라”라고 말한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 국책 사업의 당사자인 해군이나 국방부의 무관심도 한몫했다. 지난 5년간 국방부장관이나 해군 참모총장이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득에 나선 것은 단 한 번뿐이다. 제주자치도에 떠넘기면서 제주자치도의 의견을 제대로 수용하지 않는 표리부동의 태도를 보였다.

돌제 부두 문제가 청문회 주 쟁점 될 듯

제주특별자치도가 해군의 공사 강행에 맞서 지난 3월7일 예고한 공유수면 매립 공사 정지가 과연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도 주목된다. 제주자치도는 오는 3월20일 해군을 대상으로 청문을 열고 정지 명령을 내릴 것인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청문에서는 국방부가 보완 사항으로 내놓은 관광 미항 내 서측 돌제 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조정하는 계획이 쟁점이 될 전망이다. 국방부는 제주자치도가 안전성 문제를 계속 제기하자 다시 시뮬레이션을 실시하고 이같은 보완 사항을 내놓았다. 제주자치도는 이같은 계획은 공유수면 매립 공사 실시 계획 변경이 수반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고 있다. 즉, 서측 돌제 부두 조정이 공유수면관리법 제52조 1항8호가 규정하고 있는, 관련 산업이 공유 수면의 변경을 필요로 하는 것이므로 면허를 취소하거나 공사 정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안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는 15만t 크루즈 선박의 동시 접안과도 연관되어 있는 만큼 안전성 검증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같은 사안으로 인해 공사를 정지할 경우 현저하게 공익을 해하는 처분이라고 보고 지방자치법 제169조(지방자치단체의 사무에 관한 그 장의 명령이나 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히 부당해 공익을 해친다고 인정되면 시·도에 대하여는 주무부 장관이, 시·군 및 자치구에 대하여는 시·도지사가 기간을 정하여 서면으로 시정할 것을 명하고, 그 기간에 이행하지 아니하면 이를 취소하거나 정지할 수 있다)의 규정으로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돌제 부두 변경이 당초 공유수면 매립 공사 실시 계획 변경 사유가 될 만큼 중요한 사안인지, 그리고 그에 따른 처분이 법령에 위반되거나 현저하게 공익을 해칠 수 있느냐를 두고 청문에서 대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얽혀버린 제주 해군기지 문제를 풀기 위해 정부는 제주를 대한민국의 1%에 불과한 섬이라는 단편적으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통 크게 소통하는 것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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