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보에 로고송까지…총선 ‘대박’ 꿈꾸는 사람들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2.03.1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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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일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선거 특수를 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선거 벽보나 책자, 명함 등과 관련된 제지·인쇄 업체는 물론이고, 각 후보자들의 로고송을 제작해주는 회사나 스피치학원 등도 호황을 맞았다. 서울 충무로 인쇄 골목은 벌써부터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없다. 총선을 앞두고 후끈 달아오른 선거 관련 산업의 현장을 들여다보았다.

지난 2009년 당시 전주 덕진구 재·보선 유세 현장. ⓒ 시사저널 유장훈

오는 4월 총선에서 쓸 수 있는 법정 선거 비용은 후보자 한 명당 평균 1억8천9백여 만원 정도이다. 18대 총선 당시 1천1백19명이 후보로 등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2천5백억원 정도가 4월 총선을 전후로 풀리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12월에는 대선도 예정되어 있다. 지난 17대 대선 때 후보자의 법정 선거 비용이 4백60여 억원이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대선 비용까지 합한다면 올해 4천억원 규모의 ‘돈 폭탄’이 투하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공식적인 비용이 이렇다. 실제 사용한 금액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예비후보 때부터 사용하는 사무실 임차료나 운영 비용은 현재 법정 선거 비용에서 빠져 있다. 이 돈 역시 수천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후보 캠프나 지지자들이 비공식적으로 사용하는 비용도 상당하다. 정치권에서는 이 돈까지 합할 경우 올해 양대 선거로만 최소 3조~4조원 정도가 풀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 컨설턴트는 “선거 때 사용하는 자금이 선관위 신고 비용보다 두 배에서 세 배 정도 더 든다는 사실은 정치권의 불문율이다”라고 귀띔했다.

이에 따라 선거 관련 산업도 덩달아 들썩이고 있다.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전쟁을 하는 조짐이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전초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곳은 로고송 업계이다. 로고송의 파괴력은 이전 선거에서 여러 차례 입증되었다. 지난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될 당시 로고송의 역할이 컸다. 김 전 대통령은 DJ DOC의 <DOC와 함께 춤을>을 <DJ와 함께 춤을>로 바꿔 젊은 층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17대 대선 때도 로고송 열풍이 불었다.

주요 후보들은 전략적으로 로고송을 채택해 선보였다. 이명박 후보 역시 박현빈의 <오빠만 믿어>를 <명박만 믿어>로 개사했다. ‘명박 한 번 믿어봐~’로 시작되는 노래 구절은 경제 활성화를 바라는 표심을 자극했고, 17대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졌다. 총선 후보들 역시 로고송에 목을 매기는 마찬가지다. 중독성 강하고 귀에 착 달라붙는 로고송을 확보하기 위해 앞다투어 연예기획사의 문을 두드렸다. 가수 박현빈·장윤정·박상철 등은 선거 때마다 수백 곡의 로고송을 부르면서 ‘로고송 스타’로 부각되었다. 같은 지역 후보자들이 똑같은 가수가 부른 노래를 이름만 바꿔 사용하다 다투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로고송 제작업체의 홈페이지(왼쪽), 거리 홍보 모습(위).

간판 가수 앞세워 뜨거운 영업전 펼치기도

올해 역시 치열한 로고송 전쟁이 예상된다. 일부 기획사는 이미 ‘선거 모드’에 돌입한 상태이다. 간판 가수를 내세워 국회나 예비후보자들을 상대로 피나는 영업전을 펼치고 있다. 언론에 ‘공짜로 로고송을 제작해주겠다’라는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한다. 장윤정, 박현빈 등이 소속된 인우기획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회사는 최근 작사·작곡가 및 스튜디오 모임인 한국선거로고송제작자연대와 연합 전선을 구축했다. 회사 관계자는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되면 로고송을 녹음할 스튜디오가 동난다. 녹음실을 미리 확보하는 차원에서 선거로고송제작연대와 같이 영업을 벌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홈페이지도 선거용으로 리모델링했다. 소속 가수를 앞세운 로고송 제작 홍보물이 홈페이지 초기 화면에 배치되도록 했다. 해당 항목을 클릭하면 로고송 제작이 가능한 소속 가수의 곡과 샘플이 펼쳐진다. 견적서를 통해 즉석에서 단가를 문의할 수도 있다. 회사 관계자는 “로고송제작자연대의 경우 소속 회사별로 국회 영업을 시작한 상태이다. 회사의 경우 내부적인 준비 때문에 아직 예약을 받고 있지 않고 있음에도 로고송 제작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일부에서는 소속 가수나 회사를 사칭해 국회에 영업을 하기도 한다. 어떤 업체인지는 파악하고 있지만, 별도로 조치를 취하지는 않고 있다”라고 말했다. 

싸이더스HQ의 경우 기획 단계에서부터 총선 로고송을 겨냥한 앨범을 최근 출시했다. ‘제2의 장윤정’으로 불리는 신인 가수 연지후가 주인공이다. 연지후는 최근 <언니가 간다>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트로트곡임에도 각종 음악차트에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이 노래는 사실 선거 로고송을 노리고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상황이 가세하면서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싸이더스측은 귀띔한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오빠나 누나가 들어가는 로고송은 많지만, 언니를 표방한 노래는 드물다. ‘왕언니가 간다’로 시작하는 노래가 여성 정치인에게 적당할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은 현재 모두 여성들이 이끌고 있다. 4월 총선에 내보낼 여성 후보들을 영입하려는 노력 역시 활발하다. 18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민주당)의 여성 후보자 공천 비율은 8%였다. 올해는 여성 지역구 공천 비율을 15%로 확대했다. 새누리당은 여성 후보자 비율을 30%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싸이더스 입장에서는 로고송 수요가 그만큼 늘어날 수 있어 고무된 분위기이다. 이 노래를 작곡한 작곡가를 통해 그동안 여러 정치인과 접촉했고, 유명 여성 정치인과 로고송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다. 회사측은 시간이 지날수록 추가 계약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제지나 인쇄 업계 역시 선거를 앞두고 후끈 달아올랐다. 선거 벽보나 책자, 명함, 심지어 투표 용지나 봉투에 이르기까지 종이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두 차례 선거에 소요될 종이만 2만t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2백50억원  정도가 선거를 통해 풀리게 된다. 업계 1위와 2위 업체인 한솔제지와 무림페이퍼는 선거 물량을 따내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회사에서 연간 생산하는 규모만 100만t에 달한다. 전체 매출에 비하면 2백50억원은 큰 규모가 아니다”라면서 선을 그었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홍보전을 펼치고 있다.

제지업계 직원들이 국회에 진을 치고 있을 정도이다. 한솔제지의 한 관계자는 “친환경 선거 용지를 홍보하기 위해 현역 의원뿐 아니라 예비후보자에게도 샘플북을 제공하고 있다. 후보자들의 페이스북이나 이메일, 트위터 등을 통해서도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이 회사의 영업사원들은 한동안 국회로 출근해야 했다. 의원회관에 들러 홍보 팸플릿을 나눠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틈나는 대로 예비후보자들의 사무실이나 홈페이지에도 들러 ‘우리 종이를 써달라’는 홍보 게시물을 올리고 있다.

무림페이퍼도 최근 선거 용지 납품과 관련된 환경보고서를 영업사원에게 배포했다. 무림의 경우 선거 물량이 많은 기획사나 인쇄소를 타깃으로 잡았다. 선관위가 발주하는 인쇄소를 방문하기 위해 전국 투어를 하기도 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2002년에 개발한 투표 용지가 국내 최초로 특허를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주부터 전국 투어를 하면서 제품을 홍보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제지업계의 특수는 인쇄업계 호황으로 이어졌다. 서울 충무로 인쇄 골목은 벌써부터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느라 분주한 분위기이다. 일각에서는 올해부터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한 선거운동이 가능해진 점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종이의 수요가 그만큼 감소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만난 인쇄업자들의 의견은 달랐다. 이들은 “예년만큼은 주문이 나온다. 공천이 모두 확정되고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돌입하면 물량이 늘어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매달 발표하는 ‘중소 제조업체 가동률’ 조사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엿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1천4백10개의 중소 제조업체 가동률은 최근 9개월여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인쇄업이나 비디오 복제업은 ‘나 홀로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전년에 비해 5.3%나 가동률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중소기업중앙회조차 놀랄 정도였다. 황재규 조사통계팀장은 “중소기업의 가동률을 조사하기 시작한 2002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였다. 총선을 앞두고 선거 홍보물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 말 발표한 1월 가동률은 소폭 하락했다. 계절적 영향일 것으로 중소기업중앙회측은 분석하고 있다.

선거철이라는 큰 대목을 맞아 활기가 살아난 서울 충무로의 인쇄 골목(왼쪽). 오른쪽은 역시 총선을 앞두고 인기를 끌고 있는 스피치학원의 강의 모습. ⓒ 시사저널 전영기

제지업계 1위와 2위 간 신경전도 치열

이 과정에서 제지업계 1위와 2위 간의 신경전도 벌어지고 있다. 서로 먼저 친환경 용지를 개발했다면서 각을 세우는 모습이다. 한솔의 경우 생산 단계에서 재생 원료를 사용하는 만큼 자사 제품이 ‘친환경 원조’라고 홍보한다. 회사 관계자는 “국내에서 재생 용지를 원료로 사용하는 곳은 우리뿐이다. 환경부와 선관위도 현재 친환경 선거 용지를 사용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무림 역시 맞불을 놓고 있다. 통상적으로 친환경 제품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 무림의 경우 제지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종이의 원료인 펄프 목재 칩을 분리하면 섬유소와 리그닌으로 나뉘게 된다. 이 송진을 농축한 흑액 연료를 연소해서 종이를 만들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제로이다. 제품 가격 역시 경쟁사에 비해 15% 정도 싸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펄프와 제지 공장의 연동을 통해 친환경 제품을 생산하는 곳은 무림이 유일하다. 업계 최초로 인쇄용지 탄소성적표지 인증을 받았다. 폐지를 섞어 만드는 제품과는 차원이 다르다”라고 반박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스피치학원 등에서 과외를 받는 정치인 또한 늘어나고 있다. 굵직한 선거를 치르면서 거리 유세나 TV 토론회 등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치트레이너는 의사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말하는 습관이나 자세를 교정해준다. 대상은 후보자 본인만이 아니다. 후보자의 배우자나 보좌관까지 불러 교육을 시킨다. 일부는 연설문 원고까지 대신 써주기도 한다. 때문에 총선을 앞두고 전국 100여 개의 스피치학원이 벌써부터 성황을 이루고 있다. 유명 학원의 원장을 초청해 교육을 받기도 한다. 한 스피치학원의 원장은 “4월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를 모아 교육시키는 일정을 여러 차례 소화했다. 일부 정치인은 스타급 트레이너를 초청해 개인 교습까지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스피치트레이너를 초청할 경우 1박2일의 속성 과정을 받는 데만 수백만 원이 들게 된다. 그럼에도 문의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정소화 스피치트레이너는 “선거를 앞두고 문의가 많다. 의뢰를 받은 고객 중에는 현직 의원도 포함되어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들은 보통 3~4번 정도 과외를 받게 된다. 실제 TV 토론회처럼 카메라를 든 PD 앞에서 대화를 하고, 문제점을 일일이 교정받는 방식이다. 지방의 경우 일정이 빡빡하기 때문에 2박3일이나 3박4일 동안 지방을 돌면서 한꺼번에 강의를 한다. 정트레이너는 “지방 후보자의 경우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달라붙어 강습을 한다. 강습은 물론이고 집의 옷장 점검이나 쇼핑까지 동행해서 진행한다”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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