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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부산항 틈새로 총기들이 스며든다

러시아 선원이 권총 휴대하고 시내 활보한 사건 발생…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사각지대 드러나

최현진│국제신문 기자 ㅣ 승인 2012.03.19(Mon) 21: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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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1일 부산 영도경찰서가 러시아 선원에게서 압수한 러시아제 MP-654K 가스발사식 공기권총과 탄창. ⓒ 부산영도경찰서 제공

부산에서 권총을 휴대하고 시내를 돌아다닌 러시아 선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람의 인명을 해칠 정도로 살상력이 큰 총기는 아니지만, 권총이 아무런 제재 없이 국내로 들어왔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러시아 선원 세르게이 씨(22)가 부산항에서 공기권총을 들고 내린 것은 지난 3월11일 오후 4시께이다. 그는 시내 관광을 하려고 부산항에서 정박 중이던 컨테이너선(5천6백t급)에서 동료 두 명과 함께 내렸다. 부산이 낯선 세르게이는 자신의 신변을 보호하려고 러시아산 4.5구경 권총 1정과 직경 2㎜ 총알(쇠구슬) 다섯 발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이 총은 선박 내 창고에 보관되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동료 두 명과 함께 경찰에 총기를 압수당하기까지 2시간30분간 국제시장과 남포동 일대를 활보했다. 그러던 중 이동하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에서 동료들에게 총을 보여주며 장난을 치자 이에 놀란 택시기사가 경찰에 신고해 붙잡혔다.

부산 영도경찰서는 지난 3월13일 공기권총을 밀반입한 혐의(총포 도검 화약류 등 단속법 위반)로 세르게이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이 총기가 살상용이 아닌 레저용인 데다 실제 이를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소지한 점을 들어 이같이 처분했다. 세르게이 씨도 경찰 조사에서 “러시아에서는 갖고 다녀도 문제가 되지 않아 별 생각 없이 들고 나온 것이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 총은 러시아산 가스식 권총 ‘MP-654K Cal’로 밝혀졌다. 서바이벌 게임용으로 쓰이지만 상대를 위협하기에는 충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거리에서 어디를 향해 쏘는지에 따라 중상을 입힐 수도 있다.

세르게이 씨가 권총을 가지고 선박에서 나왔을 때 국내 보안 시스템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는 부산 영도구의 한 조선소를 통해 시내로 들어왔다. 자신이 타고 있던 선박이 수리를 위해 이 조선소를 찾았기 때문이다. 상륙할 때 러시아 선원의 보안을 담당한 곳은 해당 조선소였다. 일반적으로 외국 선박에서 선원이 상륙할 때는 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가 보안 업무를 담당한다. 하지만 해당 조선소는 2002년 부산본부세관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보안 업무를 맡았다. 부산본부세관은 지금까지 이같은 내용의 양해각서를 부산 지역 21곳 조선소와 체결했다.

사정 당국 간에 협조 체계 허술한 것도 문제

조선소는 통관법에 따라 외국인 선원들의 선원수첩과 상륙허가서를 확인하고 금속탐지기를 이용해 몸수색을 해야 한다. 조선소의 청원경찰이 휴대용 검색기를 이용해 외국인을 수색해야 하지만 정밀하게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자신의 조선소를 찾은 고객을 적극적으로 검색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청원경찰은 세르게이의 상륙허가서와 여권만 확인했을 뿐 소지품 검사를 철저하게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부산항과 감천항 등 부산 지역 외국인 출입 항구의 보안은 이처럼 허술하다. 특히 세관과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손이 미치지 않는 이 조선소와 같은 경우가 가장 큰 문제이다. 사실상 구멍이 뚫린 것이나 다름없다. 세관측은 인력 구조상 민간 조선소에 직원을 파견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래서 양해각서를 체결한다는 것이다.

부산본부세관은 지난해 부산 지역 조선소에서 선박을 수리하려고 입항한 외국 선박은 3백95척, 선원은 5천4백9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부산항을 통해 밀반입되는 총기는 연도에 따라 다르지만 한 해 수십 정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총기보다, 외국에서는 허용되는 레저용 총이나 유사 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총도 총포사 등에서 개조를 하게 되면 실제 총과 같은 살상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래서 부산에서는 유사 총기류가 많이 유통되고 있다.

실제 인명 살상용 권총이 밀반입될 가능성도 크다. 사정 당국에 따르면 현재 부산에서는 러시아 선원 등을 통해 실제 권총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권총 가격 한 정은 100만원대로 알려졌다.

사정 당국의 한 관계자는 “웬만한 폭력조직원은 총을 가지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총기 사고가 드러나지 않는 것은 워낙 사건의 후폭풍이 거세기 때문에 이들이 조심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정 당국 간에 협조 체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문제이다. 한 기관에서 첩보를 입수해도 인력과 장비가 모자라 쉽게 단속에 나서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검찰이 범죄 정보를 입수해도 경찰의 도움 없이는 사실상 이들을 제압하기가 곤란하다. 검찰 수사관은 방탄복에 삼단봉 정도만 휴대할 수 있다. 총을 가지고 있는 용의자를 제압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수사권 조정을 둘러싸고 검찰과 경찰이 힘겨루기를 하는 상황에서 두 기관이 협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부산의 총기 사건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2009년 5월 서울지방경찰청 외사과와 국가정보원은 총기류를 영화 소품으로 위장해 국내로 밀반입해 불법 대여한 밀반입 조직과 인터넷 상에서 권총을 판매한 일당을 검거해 조사를 벌였다. ⓒ 연합뉴스
부산에서 총기 밀반입 사건이 일어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선원이 개인 휴대용으로 몰래 반입한 것에서 조직폭력 세력이 연관된 것까지 다양하다. 주로 러시아 선박과 러시아 선원을 통해 반입된다. 부산은 러시아 선박의 주요 수리처로 이용되고, 러시아 무역상과 수산물 무역 등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일어난 총기 밀반입 사건 중에서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2003년 부산 영도 주택가에서 벌어진 러시아 마피아 권총 살인 사건이다. 러시아 마피아가 적대 관계에 있던 상대편 마피아 두목을 권총으로 살해한 사건이었다. 2003년 4월17일 오후 8시6분께 부산 영도구 영선동의 한 아파트 1층 현관에서 30대 러시아인이 러시아 마피아 두목 등 두 명에게 총기를 난사했다. 이로 인해 두목이 숨지고 한 명이 크게 다쳤다. 여기에 사용된 총은 소음기가 달린 러시아제 4.5구경 권총 두 자루로 이 남성은 모두 10발을 쏘았다. 이 사건 탓에 부산 시민은 밤길을 무서워했다. 부산이 러시아 마피아 활동의 근거지임이 확인됨과 동시에 총기가 유통된다는 사실 때문에 시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

2006년에는 총기를 다량 밀반입하려 한 사건도 사정 당국이 적발했다. 부산지검 외사부가 중국에서 권총과 실탄을 가져와 부산항을 통해 밀반입하려던 40대 남성을 구속했다. 이 남성은 다롄 항에서 부산항으로 입항하는 무역선 컨테이너에 3.8구경 리볼버 등 권총 4자루와 실탄 1백15발을 몰래 숨겨 부산으로 가져왔다. 그는 권총과 실탄을 컨테이너 하단부에 실은 뒤 용접했다. 난로의 미닫이식 쓰레기받이로 위장해 반입을 시도했으나 물품 검사 과정에서 미리 첩보를 입수한 조사관에게 덜미를 잡혔다.

국내 선원이 필리핀에서 권총과 실탄을 구입해 부산항을 통해 밀반입한 사건도 있었다. 그는 필리핀 마닐라의 한 항구에서 미제 3.8구경 리볼버 권총 1정과 실탄 9발을 구입한 뒤 국내에 몰래 들여와 이를 팔려고 했다. 1996년 10월 부산세관과 국정원은 감천항을 통해 러시아제 총기류를 밀반입해 국내에 판매한 러시아 선원 두 명을 구속했다. 2001년 10월에는 감천항을 통해 입국한 러시아 선원이 부산 도심에서 공기권총을 쏘면서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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