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환경에 적응하려면 자신부터 바꾸고 바꿔라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3.27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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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직장인이 조직에서 다양한 상황 극복하고 살아남는 법

ⓒ honeypapa@naver.com

변화 없이 한 장소에서 일생을 머무르는 것도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일이지만, 새로운 환경에 들어가 적응하는 것 역시 큰 스트레스이다. 머리도 좋고 아이디어도 반짝이지만, 새로운 직장에 들어섰을 때 낯선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뜻을 펴지 못하는 아까운 인재들도 적지 않다. 결국 어렵게 얻은 직장을 포기하고 이런저런 일자리들을 전전하다가 백수가 되어 부모나 배우자에게 빌붙어 사는 이들이 요즘에는 많다. 이를 이른바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서라고 단순히 매도하기보다는 자세히 들여다보아 여러 가지 심리적 문제를 짚어내고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것도 필요하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핵가족에서 자라 모든 것을 자녀인 ‘나’ 중심으로 성장한 이들이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경우, 성인이 된 다음에도 왜 내가 남에게 맞추어서 살아야 하느냐며, 남과 타협하고 양보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한 자녀로 자라나 제멋대로인 중국의 ‘소황제 증후군(little emperor syndrome)’과 유사하게, 부모로부터 인내와 훈육을 배우지 못했다면 당연히 직장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다. 반대로 너무나 권위적인 부모 밑에서 자라 그 분노 때문에 직장에서의 위계질서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사건건 윗사람들 혹은 어려운 고객과 충돌하는 경우도 있다. 이럴 경우, 상사 등과 싸우다 중간에 그만두면서 대개는 직장의 비민주의적 환경, 권위적인 상사에 대해 불평한다. 그러나 직장과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동시에 자신의 문제도 같이 보아야 할 것이다.

경직된 성격 때문에 융통성 발휘 못하는 경우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거나 사회·문화적 경험 부족으로 능력이 떨어져 의사소통이 힘든 경우도 있다. 예컨대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오로지 앉아서 공부만 한 사람들 중에는 평범한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남들이 다 보는 개그나 음악 프로그램을 보아도 재미가 없고, 드라마 같은 것도 보지 않으니 일상적인 대화에 끼지 못하기도 한다. 외곬이고 경직된 성격 때문에 다양한 상황에서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문제이다. 적응이란 자신을 끊임없이 변화(Modification)시키는 것이다. 스스로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고 주변 탓만 하면 어떤 직장에도 적응할 수가 없다.

왕따나 학교 폭력 등 때문에 마음속 깊이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나 신뢰가 부족한 이들도 새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 혹시나 또다시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나쁜 소문에 휩싸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수도 있다. 꼭 군대가 아니더라도 신참들은 농담이나 경계, 성적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굴러온 돌은 어쨌거나 박힌 돌에 비해 불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예기치 못하게 어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어떻게 순발력을 발휘하느냐는 것도 터득해야 할 과제이다.   

이렇게 뭔가 어색하거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는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고 도와줄 만한 사람을 찾아 조언을 구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이른바 자존심이 강해서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을 꺼린다면, 고치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잘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사소한 질문을 하거나 도와달라고 하면 상대방이 자신을 우습게 보거나 귀찮아 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해 입을 닫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인 경우가 더 많다.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자신이 도움이 되는 존재라고 생각할 때 기분이 좋아져서, 도와달라는 상대방을 오히려 좋게 평가하고 자기 사람으로 간주한다. 물론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한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특히 신참이 기존 직원들에 관한 개인적인 소문 등이나 정치적인 역학 관계에 너무 집중하는 것 같으면 경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마치 무언가를 캐고 다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기 때문에, 질문은 일에 관한 것에만 집중해서 하는 것이 좋다.

질문은 자세하게 많이 하지 않아도, 잘 관찰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 직장도 나름으로 작은 하위 문화(Subculture)를 가진 공간이다. 내 직장에는 어떤 관습과 전통이 있는지 빨리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남들은 다 무채색이나 톤이 낮은 정장 계열을 입는데, 신참인 나만 패션 감각을 뽐내기 위해 튀는 색깔과 현란한 디자이너 드레스를 입는다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직장의 공간 배치도 하루빨리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장에 출근하기 전, 웹사이트를 통해 직원 조직이나 배치도를 파악하는 것도 괜찮다. 미리 빌딩에 나와 화장실, 식당, 비상구, 근처 카페나 슈퍼 문방구 같은 것을 파악하는 것도 좋다. 선배들이 소소한 심부름을 부탁할 때 한 시간 넘게 헤매고 다니면 무능하거나 게으른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어디서 커피들을 마시는지, 담배는 어디서 피우는지, 어떤 상사 근처에 부하 직원들이 많이 모이는지, 동선을 어떻게 하는지 같은 것들은 매뉴얼에는 없지만 꼭 필요한 정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 얼굴과 이름을 빨리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Prosopagnosia라고 해서 사람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 증상도 있다. 올리버 삭스의 책 <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남자>처럼 극단적인 예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의 이름과 얼굴에 무심하면 어느 직장에서나 아주 성공하기는 힘들다. 사람들의 특징들과 이름을 매칭해서 성뿐 아니라 이름을 같이 불러주면,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으로부터 호감을 사게 된다.

시간 관리가 중요 … 다른 사람과의 조화와 협동 능력도 길러야

신참에게는 시간 관리도 중요하다. 절대로 늦게 출근하는 것은 용납이 되지 않는다. 또, 일이 끝났다고 해서 칼같이 퇴근할 경우, 많은 중요한 것을 놓치기 때문에 조금 힘들어도 일정 기간 가장 일찍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도 좋다. 무심히 내뱉는 한마디 중에 자기에게 독이 되는 말들도 적지 않다. “귀찮아” “짜증 나” “어, 뭐야” “어이가 없네” 같은 습관적인 말들은 상대방에게 들릴락 말락 한 크기로 이야기해도 감점 요인이 된다. 상대방이 이야기할 때, 자신의 눈에는 조금 무식해 보이고 한심해 보인다 해서 비웃는 듯 웃는 것도, 적을 만드는 지름길이다. 자신의 좋은 배경을 자랑하거나 어학이나 컴퓨터 실력 등을 너무 강조하는 것 또한 때로는 독이 된다. 그만한 장점들을 갖지 못한 기존 직원들에게 거부감을 주면 쉽게 공격의 대상이 되거나 이상한 소문에 휩싸이게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무사는 칼을 뺄 때, 과연 꼭 필요하고 적절한 시기인지 판단할 것이다.

성적이나 점수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학교와는 달리 직장에서는 특히 다른 사람과의 조화와 협동 능력을 매우 중시한다. 이른바 스펙이 좋고, 외모나 배경이 출중한 사람들이 오히려 직장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빨리 퇴사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요즘에는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는 매니저 부모들의 캥거루 자녀가 많아져 더 문제이다. 직장 상사가 꾸중을 하게 되면 부모가 전화를 넣어 불평을 하거나 협박을 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내 자식이 그런 취급을 받으라고 이제껏 뒷바라지하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고소하겠다는 어이없는 부모들도 있다. 고소를 해도 본인이 해야 하는 나이인데도 말이다. 돈 많은 집안의 자녀들에게는 특히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고 그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그만두라는 압력을 넣기도 한다. 일은 꼭 돈 때문에 하는 것만은 아니다. 

워낙 경쟁이 심하다 보니, 입학할 때나 입사할 때 한국인들은 이미 모든 진을 다 빼고, 마치 큰 성취를 한 것처럼 착각한다. 그래서 좋은 직장에 나가게 되는 순간,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고는 곧 실망감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상투적인 말이지만 첫술에 배부르겠는가.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 신참의 설움을 꾹 참고 살아남는 것도 성인이 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의식(Initiation rit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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