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약점 파고든 ‘위험한 도발’
  • 고유환│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
  • 승인 2012.03.27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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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북·미 합의에 저촉 안 된다며 로켓 발사 강행 추진…‘김정은 시대’ 개막 알리려는 의도인 듯

2009년 4월5일 북한이 발사한 장거리 로켓 ‘광명성 2호’. ⓒ 연합뉴스

북한과 미국은 지난 2월29일 “결실 있는 회담이 진행되는 기간에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영변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임시 중지하고 우라늄 농축 활동 임시 중지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를 허용하기로 하였다”라는 합의(2·29 합의)를 발표했다. 한반도에 봄이 오는 듯했다. 하지만 북한이 돌연 3월16일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4월15일)을 맞아 ‘광명성 3호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라고 밝히면서 다시 얼어붙고 있다.

북한은 그들의 실용 위성 발사가 주권 국가의 합법적 권리이며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3월16일 눌런드 미국 국무부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하면 식량 지원은 상상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또 “베이징 대화 당시 이런 장거리 로켓 발사는 합의 폐기를 의미한다는 점을 북한에 이미 경고했다”라며 북한을 비판했다.

미국, ‘합의’ 파기 선언 쉽지 않을 전망

중국도 즉각 우려를 표명했다. 장즈쥔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3월16일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와 만나 “북한의 위성 발사 계획과 국제 사회의 반응에 주의하고 있다. 각 당사자가 사태가 고조되는 것을 막고 더욱 복잡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올해 지도부 교체를 앞둔 중국은 2·29 합의로 마련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대화 분위기가 북한의 로켓 발사로 깨지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한반도 안정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처럼 북한은 주변 국가들의 우려에도 인공위성 발사는 ‘북·미 합의에 저촉되지 않는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실용 위성 발사와 장거리 미사일은 별개의 문제이다. 남조선이 ‘괴이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라고 화살을 남쪽으로 돌리고 있다.

과거 경험에 따르면 북한이 자주권과 관련해서 양보나 타협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북한이 “위성  발사는 주권 국가의 자주권에 속하는 문제이다”라고 주장하는 것을 볼 때 외부 압력에 굴복해서 발사를 포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위성 발사는 김정일의 ‘유훈 사업’이자 김정은 체제 공고화를 위한 ‘정치 사업’이고 주변 국가들을 겨냥한 ‘외교 사업’이다. 김정은 체제 출범 초기에 외부 압력에 굴복할 경우, 향후 리더십 확보가 어렵다는 점에서 위성 발사 계획을 취소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북한의 로켓 발사 강행을 전제로 향후 정세 관리와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로켓 발사를 중대 도발로 규정하고 발사 저지를 위해 관련 국가들과 공조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지속하겠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중국의 도움이 절실한데, 최근 탈북자 강제 북송 문제로 한·중 관계가 다소 불편해졌고, 이미 5·24 조치 등 대북 제재를 시행하고 있어 추가 제재를 위한 마땅한 수단을 찾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 계획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심사는 매우 복잡할 것이다. 먼저 미국은 북한의 로켓 발사를 계기로 2·29 합의를 파기할 것인가 여부를 놓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2·29 합의는 6자회담 재개가 어려운 조건에서 양자 회담을 통해, 핵과 미사일 실험의 일시 중지와 대북 영양 지원을 맞교환함으로써 양국이 성과를 나누어 가진 것이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핵 활동 중단을 재선을 위한 외교적 성과로 삼고, 갓 출범한 김정은 체제는 미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음으로써 정권 안정화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자 하는 ‘윈윈 전략’이었다.

따라서 미국으로서는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한다고 해도 합의 파기를 선언하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미국의 주된 관심은 북한의 핵개발 억지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합의 파기를 선언할 경우 북한은 핵 활동 재개와 함께 3차 핵실험 카드를 빼들고 미국을 압박할 것이다. 북한은 2006년 7월5일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10월9일 핵실험을 했고, 2009년 4월5일 광명성 2호 로켓 발사 이후 5월25일 2차 핵실험을 했다. 북한은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동시에 시행해 대량살상무기(WMD) 능력을 과시하고 성능을 개량해왔다. 이번 광명성 3호 발사도 어떻게 보면 핵실험의 전조일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은 로켓 발사를 용인하고, 핵 활동 일시 중지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로켓 발사를 강행할 경우 미국이 일시적으로 영양 지원을 유보할 수는 있어도 합의 파기를 선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이러한 미국의 딜레마를 활용해서 북한은 IAEA에 사찰단 파견을 요청하고 핵 활동 임시 중지 의지를 확인하면서 미국을 시험에 들게 하고 있다.

지난 2월21일 북·미 회담 참석차 중국 베이징으로 떠나는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오른쪽). ⓒ AP연합

중국, 내심 불쾌해도 북한 지원에 변함 없어

북한의 로켓 발사 준비로 중국의 고민도 깊어질 것이다. 북한의 WMD 개발은 중국의 안보에도 중대한 위협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미국 주도로 일본과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미사일 방어 체제(MD) 구축의 빌미가 되어왔다는 점에서 중국의 심기도 매우 불편할 것이다.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기대하는 주변국들을 실망시키는 북한의 반복된 위기 조성에 대해, 중국은 겉으로는 냉정한 대처를 말하지만 내심은 몹시 불쾌해하고 있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김정은 체제의 조기 안정을 위해 정치·경제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는 중국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이 ‘제멋대로’인 북한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원하는 이유는 북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차라리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갖는 것이 붕괴되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북한을 지원하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의 이러한 약점을 활용해서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되기도 전에 외부 세계의 우려를 자아내고 제재와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리수를 보인 것에 대해, 북한의 의사 결정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외교부의 북·미 합의를 강경 군부가 뒤집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로켓 발사 계획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생존 당시 오래전부터 계획된 것이고, 일각에서 보도되는 것처럼 지난해 말 이미 미국에 통보되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를 단순히 북한 의사 결정의 모순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광명성 3호 로켓 발사가 김정일의 결정이었다면, 김정은은 유훈을 관철하는 차원에서 외부 세계를 의식하지 않고 발사를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로켓 발사와 북미 합의를 분리하려는 북한 전략의 성공 여부가 향후 김정은 정권의 운명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광명성 3호 발사가 단순히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축포로 끝날 것인가, 아니면 3차 핵실험으로 이어지며 한반도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을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 2012년을 강성대국의 대문을 여는 해로 선포한 김정은은 뚜렷이 보여줄 경제적 성과가 없어 로켓 발사로 강성대국 진입을 알리려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김정은은 북·미 관계, 그리고 북·중 관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하는 숙제도 떠안게 되었다. 아니면 강성대국 진입의 신호탄이 자칫 몰락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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