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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의 배후에는 ‘사냥꾼 콤플렉스’가 있다

스파이 써서 정보 수집하는 행동은 인간의 원형적 심성 중 하나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ㅣ 승인 2012.04.10(Tue) 00:4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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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papa@naver.com

두려운 표정과 약점은 절대로 드러내지 않아야 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어떤 싸움도 꼭 이겨내야 된다는 주문을 들으며 성장하는 아이가 많은 각박한 세상이다. 완벽하게 센 모습만 보여야 남에게 비난 또는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회공포증이나 대인공포증에 걸리는 이들도 있다. 모든 것이 경쟁인 ‘만인이 만인의 적’이 되어 있는 메마른 사회이기 때문일까. 누군가 자신을 감시한다면 불쾌하고, 불안하고, 우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조사의 대상이 되면 죄의 유무를 떠나 사람들에게 큰 창피를 당할 가능성도 많아진다. 다른 이의 시선을 개의치 않는 서양에 비해 특히 ‘체면’과 ‘평판’을 중요시하는 동북아시아 쪽에서는 사생활의 노출은 곧 자신이 모르는 사람들의 술자리 안줏감이나 도마 위의 생선 꼴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내가 감시당하는 것도 불쾌하지만, 내 사생활에 관한 정보나 내가 어렵게 얻은 정보가 나도 모르게 새나가는 것도 기분 나쁜 일이다. 옛 속담에 ‘만 냥 주고 얻은 재주, 한 냥에 팔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힘들게 얻은 지식이나 경험을 남에게 함부로 떠들다가는 결국 자기만 손해 보게 된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얘기일 것이다. 기업이나 정부만 산업 스파이를 경계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엄마들의 모임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사교육에 대한 정보는 다른 사람과 공유하지 않는다고 한다. 소중한 정보를 생각 없이 남에게 퍼주다 보면 정작 중요한 문턱에서 형편없이 지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나를 알고 상대를 알아야 이긴다(知彼知己면 百戰百勝)며 정보를 중요시하는 것은 손자(孫子)가 살았던 고대부터 모든 사생활이 기계에 저장되는 21세기 테크놀로지 사회에까지 모두 통하는 충고이다. 내 소중한 정보는 노출시키지 않고, 상대방에 대한 정보는 더 많이 확보하는 것이 게임을 이기는 제일 원칙인 셈이다. 노름판에서 표정이 전혀 변하지 않는 이른바 포커페이스들이 결국 판돈을 따가지 않는가.

예로부터 중앙 집권제에서는 감찰 활동 활발

다른 나라보다 비교적 빨리 중앙 집권제가 확립된 우리나라에서는 일찍부터 국가 차원에서 정보를 관리했다. 감사원이나 국정원에 해당되는 기구들이다. 통일신라의 외사정, 발해의 중정대, 고려의 어사대, 조선의 사헌부 등이 그것이다. 만화로 만들어질 만큼 대중에게 알려진 ‘암행어사 박문수’는 그처럼 오랜 감찰의 전통 속에 민중에게 많이 회자되는 인물 중 하나일 뿐이다. 양반을 감시해서 벌을 내리는 어사 박문수가 신화적인 영웅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양반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가 컸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의 감찰 기능이 박정희 정부 수준의 반 정도만 되었어도, 크고 작은 친인척 비리가 예방되지 않았을까도 싶다.

반대로 20세기에 들어서는 감찰기관이 지나치게 공룡화된 측면도 있다. 겉으로는 민간인을 적국으로부터 보호한다는 애국적 기치를 내걸었지만 미국의 FBI와 옛 소련의 KGB가 권력을 위해 민간인을 감시하고 사찰하는 역할도 해왔다는 점은 부정할 수가 없다. FBI는 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즉 연방 사찰 본부의 약자가 아닌가. 솔제니친이 쓴 <이반데비니소치의 하루>를 들먹이지 않아도, 정치범 수용소인 굴락(Gulag)과 KGB가 과거 민간인들의 자유를 잔혹하게 억압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FBI의 치사한 민간 사찰도 만만치 않다. 아무런 범죄 사실도 없는 흑인 대학생들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기도 하고, 마틴 루터 킹에게 자살하라는 편지를 보냈다고 고백한 요원도 있었다. 1970년대는 특히 FBI의 추악함이 집중적으로 드러나는 시기였다. 1971년 펜실베이니아의 FBI 요원 사무실에 도둑이 침범해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사찰한다는 증거를 빼내 언론에 뿌린 사건, 1972년 대통령 선거 기간 중 민주당 본부를 침입한 도둑을 조사하는 과정에 FBI와 닉슨 대통령이 관련되었다는 이른바 워터게이트 사건이 대표적이다. 불법 도청 조사를 받으며 하야 압력을 받고 있는 와중에, 닉슨은 공작 정치를 도모해서, 국민이 정당하게 뽑은 칠레의 대통령 아옌데를 하야시킨다. 국민의 시선을 외국으로 돌린 후 냉전 논리에 기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연장할 계획이었다. 결국 아옌데가 죽고 난 뒤 미국의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 독재 정권이 들어선 후 칠레 국민은 오랜 기간 동안 독재 정부의 고문과 납치와 살해에 시달려야 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네루다는 이런 미국의 공작 정치에 분노해 닉슨을 피에 굶주린 인종 청소자라고 단언하는 내용의 시, <월트 휘트먼을 기리며>를 쓴 바 있다.

사찰로 민간인 관리하려는 것은 사람을 사냥감으로 생각하는 것과 같아

미국보다 더 냉전 논리에 휘둘렸던 우리나라도 중앙정보부, 보안사, 기무사 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었다. 군부 독재 와중에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정보기관은 어쩌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을 것이다. 최근에는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같은 정부 기관뿐 아니라, 대기업 안의 감사 부서가 사원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감찰을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성이나 돈 문제로 사생활이 복잡해지면 권고 사직을 당한다고도 한다. 이혼을 앞두고 있는 부부들이 흥신소나 심부름센터를 찾아가 배우자의 약점을 잡아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한다. 곳곳에 CCTV가 있고, 이메일이나 메신저, 트위터, 페이스 북을 통해 언제든지 내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으며 알리고 싶지 않은 정보도 해킹으로 수집되는 세상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한 장면처럼 우리는 알 수 없는 빅브라더의 손바닥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셈이다.

소설에서뿐 아니라, 정신질환자의 증상 중에는 간첩, 중앙정보부 요원, 국가 정보원들이 자기들을 감시하고 음모를 꾸며 자기를 괴롭힌다는 내용도 자주 등장한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사라졌기 때문에 과연 어디까지가 망상이고 진실인지 헷갈릴 때도 적지 않다. 미국의 경우 통화 중 테러, 폭파, 알카에다 같은 몇 가지 단어들을 반복적으로 쓰면, 그 전화번호가 자동적으로 감시 리스트에 올라간다는 소문도 있다. 만약 ‘적’이 아닌 민간인들을 사회의 ‘공적’으로 취급하고 비정치적인 사생활까지 감시했다면 윤리적 책임을 떠나, 쓸데없이 예산을 낭비한 것만으로도 누군가 책임져야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따지고 보면 먹잇감을 손에 넣기 위해 스파이를 써서 적의 정보를 수집하는 행동은 인류의 원형적 심성 중 하나인 사냥꾼 콤플렉스의 발현이다. 기술이 좋은 사냥꾼들은 목표의 약점을 파악하고, 가는 길을 미리 알아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짐승을 잡는다. 사찰로 민간인을 관리하려는 의도는 어쩌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사냥감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전쟁의 기술을 가르치는 <손자병법>은 속임수와 모략인 궤도(詭道)로 시작해 간첩을 잘 이용하자는 내용의 용간(用間)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나 ‘지혜와 도덕, 어질고 정의로움, 섬세함이 없으면 어떤 간첩을 써도 제 발목만 잡힐 뿐이다’(非聖知不能用間 非仁義不能使間 非微妙不能得間之實)라는 구절도 나온다. 허접하고 시시한 모략 쓰기에만 모든 에너지를 다 쓰면 단기간의 작은 싸움은 혹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오랫동안 치러내는 큰 전쟁은 절대 이길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략에 강했던 진시황·수양제 같은 이들의 나라들이 단명한 이유이다. 오랫동안 역사에 기록되는 큰 지도자라면 돈 버는 재주, 무력, 음모 같은 비본질적인 것에 치사하게 기댈 것이 아니라, 민중이 보내는 깊은 신뢰와 존경에 목숨을 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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