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사기 앞에서 경찰은 ‘우왕좌왕’
  • 이승욱 기자 (smkgun74@sisapress.com)
  • 승인 2012.04.10 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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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50억원대 카지노 투기 사건 드러나....수사 과정에 석연치 않은 구석 있어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 규모만 50억여 원에 달하는 이른바 ‘베트남 호텔 카지노 투자 사기’ 사건이 <시사저널> 취재 결과, 처음으로 밝혀졌다. 수사 과정에서 경찰의 석연치 않은 사건 처리 행태가 더해져 ‘편파·축소 수사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수사 도중 사기 혐의를 받고 있는 피고소인이 위장 전입을 해 이 사건을 특정 지역으로 이송시킨 사실이 취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특정 지역 경찰서로 사건이 이송된 후부터 잡음이 일기 시작하면서,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은 “피고소인과 경찰 간에 은밀한 커넥션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사건의 전말을 파헤쳤다.

‘베트남 호텔 카지노 투자 사기’ 사건은 한국인 이 아무개씨(57·베트남 한인 사업가)가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건설업자 김 아무개씨와 재미교포 사업가 전 아무개씨, 카지노 사업가 서 아무개씨 등 투자자 네 명으로부터 베트남 호치민 시에 있는 두 개 호텔의 카지노 사업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총 4백42만5천 달러(약 50억여 원)를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는 사건이다(34쪽 상자 기사 참조). 이 사건은 지난해 8~9월께, 피해자 중 한 명인 서씨가 “베트남 D호텔의 카지노 사업 투자 계약금으로 이씨에게 52만5천 달러(약 5억9천여 만원)를 지급했지만, 그가 계약 사항을 이행하지 않아 계약 해지를 요구했는데도 계약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라고 이씨를 고소하면서 사건화되었다. 서씨는 이씨의 국내 거주지 관할인 수원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했고, 사건은 수원중부경찰서로 배당되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수원중부서의 한 아무개 수사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쌍방의 주장이 다를 수 있는 고소 사건이지만, 피해액이 억대에 이르는 만큼, 적극적으로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피고소인 이씨가 당시 해외에 머물러 있었고 연락이 되지 않아 체포영장까지 받을 계획이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원활히 진행될 듯이 보였던 수사는 꼬이기 시작했다. 이씨가 자신의 “주소지가 바뀌었다”라며 사건을 전주지검으로 이송해달라는 요청을 했던 것이다. 결국 서씨의 고소 사건은 수원지검에서 전주지검으로 이송되었고, 조사 주체도 수원중부서에서 전주 완산서로 바뀌었다. 사건 수사가 완산서에서 진행되면서 고소 사건을 대하는 경찰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는 것이 고소인 서씨 등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피해자들, “경찰-피의자 커넥션 의혹” 주장

서씨는 “경찰에서 피고소인 이씨와 대질 조사를 했는데, 이씨가 허위 진술을 하기에 위증을 한다고 수사관에게 이야기했다. 하지만 수사관은 오히려 이씨와 상의하고는 이씨의 진술 내용을 일방적으로 수정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건 조사 과정에서 수사관에게 이씨가 투자금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사례가 있어 이씨의 개인 통장 거래 내역을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수사관은 오히려 ‘내 마음대로 조사를 못 한다’라고 큰소리를 치고 화를 내면서 (나를)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취조했다”라고 주장했다.

서씨의 주장에 대해 당시 사건을 수사한 해당 수사관은 강하게 반발했다. 완산서 권 아무개 수사관은 “고소 사건의 특성상 대질 조사에서 고소인과 피고소인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철저하게 수사했을 뿐이다. 고소인과 피고소인 간의 주장을 상호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 화를 내거나 큰소리를 친 적도 없다”라고 해명했다.

베트남 카지노 사건과 관련한 경찰의 편파·축소 수사 의혹은 서씨의 경우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베트남 호치민 시 R호텔 카지노 투자를 명목으로 이씨에게 총 2백40만 달러(약 27억1천여 만원)를 투자했던 재미교포 사업가 전 아무개씨도 완산서의 다른 수사관으로부터 비슷한 경험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씨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해 12월께 서씨의 고소 사건을 완산서에서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전씨는 사기와 업무상 배임 및 횡령 혐의 등으로 이씨를 고소하기 위해 완산서를 방문했다. 하지만 전씨는 고소장을 경찰서에 접수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전씨는 “완산서의 담당 수사관이 조사 내내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고 ‘증거가 불충분한데 이런 식으로 고소를 하면 무고죄로 역고소를 당할 수 있다’고 했다. 수사관이 판사도 아닌데 무고죄 운운하면서 겁을 주는 태도에 분개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고소장을 내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결국 전씨는 지난 3월17일 완산서가 아닌 전주지검에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했다.

전씨의 주장에 대해, 당시 그를 만났던 김 아무개 수사관(현재 타 지역 경찰서로 전출)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전씨가 고소장을 임시 접수한 후 상담하는 과정에서 전씨에게 이런저런 자료가 더 필요하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했지만, 무고죄를 언급한 적은 절대 없었다. 당시 고소 사건의 성격상 고소인에게 무고죄를 언급할 사안은 아니었다”라고 반박했다. 김수사관은 또 “고소장을 제출하지 않은 것은 (전씨) 본인의 의사였다”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베트남 호텔 카지노 사기 사건을 수사한 경찰과 편파·축소 수사 의혹을 제기하는 피해자들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피고소인인 이씨가 첫 고소 사건과 관련해 조사받았던 수원(주소지)에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전주로 사건을 이송하기 위해 위장 전입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서씨 등 피해자들이 더욱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는 대목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피고소인 이씨는 고소인 서씨가 수원지검에 고소 사건을 접수한 지 두어 달 뒤인 지난해 11월께 전북 전주시 완산구의 한 아파트로 전입 신고를 했다.

하지만 이씨가 전입 신고한 주소지의 아파트에 실제 거주하고 있는 송 아무개씨는 “지난해 10월께 지인으로부터 한 아무개씨를 소개받았다. 한씨가 ‘친한 분(이씨)이 소송 때문에 임시로 주소를 옮겨놓아야 한다’고 부탁해서 전입 신고를 허락했다”라고 밝혔다. 송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씨가) 실제 거주하는 것도 아니고, 또 잘 아는 분의 부탁이고 해서 전입을 하도록 해주었다. 하지만 (이씨가 사기 사건의) 피의자 신분이라는 것을 알고 불안한 마음에 퇴거를 하도록 했다”라고 증언했다. 이 사건의 피해자들은 송씨의 증언에서 등장하는 한씨를 주목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전주가 고향인 한씨가 지역 경찰 관계자 등과 친분이 두터울 정도로 지역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한씨가 이씨의 브로커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다.

 

피의자, “고소인들이 짜고 공격하는 것” 반박

지금까지 드러난 베트남 호텔 카지노 사기 사건의 피해자 네 명 중 세 명이 전주지검에 이씨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한 상황이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경찰은 피해자 서씨와 또 다른 피해자 김 아무개씨(피해액 30만 달러 주장)의 고소 사건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현재 전씨의 고소 사건은 경찰이 수사 중이고, 나머지 피해자 심 아무개씨(피해액 1백20만 달러 주장)는 현재 고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지만, 피해자들은 여전히 경찰 수사에 대한 의혹과 불신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서씨 고소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무혐의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했고, 이후 검찰에서 재수사 지시를 받은 후 기소 의견으로 다시 송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대해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담당 수사관은 기자의 확인 요청을 받고 “(수사 의견은) 수사관의 개인적 의견으로 언론의 취재라고 해도 확인해줄 이유는 없다”라며 구체적인 확인을 거부했다. 또 해당 수사관들은 피해자들이 브로커로 지목한 한씨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입을 모았다.

한편 사기 사건의 피의자로 지목된 이씨는 고소인들의 주장에 대해  “오히려 내가 피해자이다”라면서 “내 카지노 사업을 가로채기 위해 고소인들이 짜고 공격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위장 전입에 대해 “지병을 앓는 아내가 내가 고소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놀랄 수 있어 주소지를 (전주로) 옮긴 것뿐이다. 위장 전입을 한 사실도 없고 당분간 한국(전주)에 있을 예정으로 언제든 (수사기관에) 출두할 용의도 있다”라고 말했다. 


개별적으로 투자 이뤄졌다면 피해자 더 있을 수도 

이른바 ‘베트남 호텔 카지노 투자 사기’ 사건은 지금까지 드러난 피해액만 50억여 원에 달하는 대규모 국제 투자 사기 사건으로 추정된다. 피해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사업가 이 아무개씨(57)는 베트남 현지 호텔 두 곳의 카지노 영업권 취득을 명목으로 피해자들에게 거액의 투자금을 받았다. 현지 호텔의 카지노 사업에 투자하면, 자신이 주주로 있는 카지노 운영회사인 P사(홍콩법인)의 지분을 나눠주겠다고 약속하는 식이었다.

전형적인 사기 수법으로 추정되는 방식도 동원되었다. 이씨는 건설업자인 피해자 김 아무개씨와 만날 때는 카지노 사업이 아닌, 베트남 정부가 추진 중이라는 77층 규모의 ‘대형 부동산 건설 프로젝트’를 우선 제안했다고 한다. 김씨에 따르면, 이씨는 이 과정에서 ‘3성 장군 출신의 고위층 로비스트’라며 ‘미스터 롱(Long)’이라는 현지인을 소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이씨는 김씨에게 카지노 사업 투자를 요청했고, 김씨는 아파트 대출까지 해 30만 달러(약 3억3천여 만원)를 투자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사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김씨 등 고소인은 네 명 정도이지만, 피해자는 더 늘어날 수도 있어 보인다. 이들 네 명의 고소인도 이것이 사건으로 비화되기 전까지는 서로 일면식도 없었고, 철저하게 개별적으로 투자가 이루어진 점을 감안하면 숨겨진 피해자와 피해액이 더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베트남 정부는 국내법상 ‘딜러’를 고용하는 기존 카지노는 불허하지만, 디지털 스크린 화면을 이용한 ‘e-카지노’는 허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소규모 카지노 사업장에서도 거액을 챙길 기회가 크다. 떠오르는 신흥 시장인 베트남에서 ‘잭팟’을 꿈꾸며 카지노 사업 투자에 뛰어든 한국인 투자자의 추가 피해가 우려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정정 및 반론보도문]

가. 제목 : '베트남 호텔 카지노 사기사건'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

나. 내용 : 본지는 지난 4월11일자 32면 「국제 사기 앞에서 경찰은 '우왕좌왕'」제목의 기사에서 베트남 호텔 카지노 투자 사기사건 피해자들의 발언을 인용해 전주완산경찰서 수사관이 이 사건을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 경찰과 친분 관계에 있는 한모씨가 피고의 브로커 역할을 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취재 결과, 경찰은 무혐의 의견으로 검찰에 지휘건의 했으나, 검찰의 보완수사 지휘를 받아 수사 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으며, 피고소인의 브로커로 보도된 한모씨는 고소 당시 고소인의 대리인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편, 수사관이 '무고죄'로 겁을 주어 피해자가 고소장을 접수하지 못했다는 보도에 대해 담당수사관은 "고소장은 정식 접수를 했으나 범죄사실을 특정하지 못해 보완자료를 요청했고, 이후 고소인측의 요청에 의해 고소장을 반려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위 내용은 언론중재위원회 조정에 의한 보도입니다.

 


 



[베트남 한인 사업가 이모씨 관련 반론보도]

본지는 지난 2012년 4월10일자 제1173호 ‘국제 사기 앞에서 경찰은 우왕좌왕’ 제목의 기사에서, “베트남 한인 사업가 이모씨가 투자자 네 명으로부터 베트남 호치민시에 있는 두 개 호텔의 카지노 사업에 투자한다는 명목으로 약 50억여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모씨는 “제보자들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투자자 전씨는 당초 투자계약과 달리 P사 배당 수익 전부를 차지하려고 고의적으로 투자금 일부만 납입하는 등 P사의 업무를 방해해 업무방해 및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습니다.

한편 이모씨는 “투자자 심씨는 D호텔 카지노 사업동업자로 투자금 대부분을 자신의 관리 하에 집행한 것이고, 투자자 김씨는 심씨의 권유에 따라 D호텔 카지노 수익을 배분 받는 조건으로 30만 달러를 투자한 것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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