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불청객’ 춘곤증은 무슨 이유로 찾아드는가
  • 김형자│과학 칼럼니스트 ()
  • 승인 2012.04.16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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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변화 따라가지 못해 일시적으로 생기는 ‘생리적 부적응 현상’밤잠 부족도 한 원인…생활 습관 변화·영양 섭취·운동 등으로 예방

ⓒ 시사저널 이종현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 사무실 풍경이 가관이다. 노곤함을 못 이긴 사람들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거나 졸음을 쫓으려고 줄커피를 마시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럴까. ‘혹시 내 몸에 이상이 생겼나’ 하고 고민이 생기는 시점도 이때쯤이다. 식욕도 떨어져 쉽게 지친다. 춘곤증 탓이다.

꽃소식과 함께 찾아오는 불청객 춘곤증은 봄소식을 전하는 ‘봄의 전령사’이다. 봄이 되면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 건강한 사람이 나른해지고 쉽게 피로해지며 졸리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노곤하다고 느끼는 정도에서부터 낮에도 주체할 수 없이 졸음이 쏟아지는 정도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사람을 축 늘어지게 하는 특성도 있다. 봄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 춘곤증은 왜 나타나는 것일까. 따뜻해지면 왜 졸음이 쏟아지는 것일까.

춘곤증(春困症)이란, 글자 그대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특별한 질환이 없는데도 몸이 나른하고 피로를 느끼는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전문 의학 용어가 아니다. ‘명절 스트레스’처럼 일반인들이 광범위하게 겪는 증상을 표현한 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춘곤증은, 증상은 있어도 병은 없다. 병은 아니지만 피로감과 무력감을 동반하기 때문에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생활 리듬을 깨뜨려 자칫 건강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춘곤증이 왜 생기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신체가 계절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일시적으로 생기는 일종의 ‘생리적 부적응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쉽게 말해 겨울에 맞춰져 있던 생체 리듬이 봄과 함께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에 원활히 적응하지 못해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문의들은 “춘곤증은 겨우내 움츠렸던 인체가 따뜻한 봄날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피로이다”라고 진단한다. 즉, 일시적으로 피로를 느끼는 증상이다.

춘곤증은 병이 아니라 피로를 느끼는 증상

또 밤잠 부족도 원인이다. 봄에는 해가 일찍 뜨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밤잠이 조금씩 줄어들어 겨울철에 비해 잠이 부족하게 된다. 따라서 봄철에 특히 더 몸이 나른하고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춘곤증은 시기적으로 2월 하순부터 4월 중순 사이에 많이 나타난다. 봄이 되면 낮 시간이 길어지고 기온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 주요 원인이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몸의 에너지 소비량도 많아지기 때문에 피부의 온도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 이때 추운 겨울 동안 긴장되었던 근육이 풀어져 마치 더운 물로 목욕을 한 것처럼 나른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요즘의 사무실 환경은 사시사철 큰 변화가 없기 때문에 인체 부적응 현상으로만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물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바깥 나들이로 야외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비타민·무기질·단백질 등 각종 영양소의 필요량이 증가하지만, 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춘곤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비타민이 결핍되면 피로하고 졸리기 쉽다. 봄철에 몸이 원하는 비타민은 겨울보다 3?5배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이클린 A 단백질이 줄어드는 것과 관련”

그런데 지난 3월30일자 <사이언스>에는 춘곤증의 원인이 따뜻한 봄볕이 아닌 체내 수면 유도 단백질인 ‘사이클린 A 단백질’의 양 때문이라고 발표되어 이목을 끌고 있다. 겨울철에는 충분했던 세포 내 사이클린 A 단백질이 줄어들면서 잠자는 시간도 줄어들어 춘곤증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사이클린 A 단백질은 한 개의 세포가 두 개로 분열하는 과정을 촉발시키는 단백질로, 사람이 잠자고 깨는 생체 주기를 결정한다. 이 연구는 미국 록펠러 대학 마이클 영 교수팀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 팀이 연구한 대상은 초파리의 신경세포에 있는 수천 개의 유전자. 초파리는 인간처럼 밤에 잠을 잘 뿐 아니라 유전자 조합이 간단해 생체 주기를 쥐락펴락하는 유전자의 반응을 알아내기가 다른 동물에 비해 비교적 쉽다. 초파리의 생체 주기 유전자 반응 실험에서 얻어낸 연구팀의 결과는, 사이클린 A 단백질이 충분한 겨울철에는 깊은 잠을 오래 자는 데 비해 그 양이 줄어든 봄에는 잠을 설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해 잠에 빠져드는 시간이 짧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사이클린 A 단백질은 사람의 신경세포에도 존재한다. 따라서 초파리와 마찬가지로 사람도 이 단백질의 양에 따라 생체 주기가 결정되는 탓에 잠을 푹 자지 못하면서 봄에 춘곤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 연구팀의 주장이다.

그 밖에 스트레스가 봄철 피로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삼성서울병원 수면장애클리닉 홍승봉 교수는 “봄이 되면 학생들은 진학이나 반 편성 등으로 들뜨고 긴장하게 되고, 성인들은 취업과 인사 발령·결혼·이사 등 집 안팎의 대소사로 바빠지게 되는데,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인체에 고스란히 쌓이는 것이 문제이다”라고 설명한다. 

정보화되고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된 현대 사회가 국민의 수면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인들은 과거 농경 사회나 산업 사회 때보다 훨씬 덜 자는데, 그 이유는 인터넷, 게임, 위성 TV와 함께 밤을 새우기도 하고 야근, 술 약속 등으로 자정을 넘겨 집에 들어오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최근 한 취업 포털 사이트에서 직장인 5백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4.5%가 졸음, 과도한 피로감, 집중력 저하 등의 춘곤증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춘곤증을 느끼는 사람의 50?60%는 평소 자신의 몸이 건강하지 않은 데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춘곤증을 예방하는 데는 점심 식사 후 살짝 낮잠을 자는 것도 좋은 아이디어이다. 오후에 20분 이하의 낮잠은 원기 회복에 좋다. 또 규칙적으로 식사하고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는 것도 춘곤증을 이기는 데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이 된다. 생선·두부·채소 등 단백질과 비타민이 포함된 음식을 즐겨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졸리다고 낮에 커피를 자주 마시거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흡연을 한다면 피곤이 심해져 더 졸리게 된다. 흡연은 자율신경계의 민감도를 높이고 산소 소비량을 증가시켜 몸의 피로를 누적시킨다. 특히 인스턴트 음식만 먹으면 비타민이 부족해 춘곤증이 더욱 심해진다.

이제부터 생활의 리듬을 잘 지키고,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먹고, 적당한 운동을 하여, 겨우내 긴장되었던 몸을 풀고 따뜻한 봄 햇살을 맞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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