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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없는 무덤 없듯이 막말·욕설에도 이유 있다

공감 능력 부족한 사람이 책임지지 못할 말 내뱉을 때 문제 커져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ㅣ 승인 2012.04.23(Mon) 00: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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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papa@naver.com

“익명의 가면에 감췄던 살의(殺意) 가득한 질시…끝을 봐도 배고픈 듯한…스마트한 감옥에 갇혀…언어 쓰레기만 나뒹구는 삭막한 벌판… 죽고 죽이고 싸우고 외치고 이건 전쟁이 아니야… 박고 치고 편을 나누고….” 신인 아이돌 그룹 Exo-K의 <MAMA>라는 노래이다. 기성세대라면 들어본 후 젊은이들에 대한 편견을 버릴 만한 노래이다. 최근 들어 언어가 과격해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지만, 훈육을 못한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다. 어린이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욕을 배운다. 선악의 구별을 잘 못하는 미성년자들은 욕을 통해 폭력성에도 익숙해진다. 학교 폭력이 점점 늘어나는 것과 욕하는 청소년이 늘어나는 것에는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다. 특히 인터넷·트위터 등의 사이버 공간에서는 익명 뒤에 숨을 수 있기 때문에 더 심한 욕도 한다. 욕이란 승자의 언어가 아니다. 잃을 것도 없는 SNS 폐인들은 이익도 되지 않는 욕을 하며 세월을 보낸다. 심신도 편안하고, 할 일도 많은 사람이 시간을 쪼개 제 입을 더럽혀 남의 일에 핏대를 올릴 리 없다.

무의식의 파괴적 심성 불쑥 튀어나오는 것이 ‘욕’

욕을 하지 않는 민족은 이 세상에 없지만, 나라마다 강도와 빈도는 좀 다르다. 캐나다가 미국에 비해, 일본이 한국에 비해 욕을 덜 한다는 조사도 있다. 비교적 다양하게 발달한 한국의 욕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벼락 맞아 죽을, 천벌을 받을!” 같은 운명적 저주이다. 두 번째로는 징벌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육실할 : 육시를 할(戮屍刑: 죽은 사람의 시체를 꺼내 머리를 베는 벌), 찢어죽일(車裂刑: 두 팔다리, 머리를 수레로 찢어 죽이는 형벌), 경을 칠(墨刑: 죄명을 이마에 새겨넣는 형)” 같은 욕이다. 셋째, “멍청한, 등신 같은, 미친…” 등으로 상대방을 깎아내리는 경멸형이다. 넷째, 감히 입에 담지 못할 근친상간적인 내용과 성적 조롱이다. 모두 최근에 만들어진 것들은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 이런저런 욕설을 듣고 수십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힘들어하는 환자들도 있는데, 그들의 부모들 역시 그런 욕을 들으며 자란 사람들이다.    

물론 세상이 더 후안무치해져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창세 신화에도 일종의 욕들이 꽤 등장한다. 예컨대 미륵과 석가가 세상을 처음으로 만들며 서로 자리를 다투는 장면을 보자. 창조신인 미륵은 우위를 다투는 또 다른 창조신인 석가에게 “니 세월이 되고 보면, 인간은 난 날부터 도둑의 심성을 품게 되고, 밤이면 석 자 세 치 다리 얼고, 낮이면 석 자 세 치 다리 타고 인간은 얼어죽고 데어죽고…오리에 도둑 나고 문 안마다 악질 나고…” 같은 저주의 말을 “싸악 지껄여 남겨놓고…들어가겠다”라고 마무리한다. 김쌍돌이라는 무속인의 구연에 미륵은 “축축하고 더럽은(더러운) 이 석가야, 너 무릎에 꽃이 피어도 열흘이 못가고, 심어도 십년이 못가리라. 너 세월이 되면 가문마다 기생 나고, 과부 나고, 무당 나고, 역적 나고, 백정 난다”라고 저주한다. 욕치고는 귀여운 욕이다.

심지어는 가장 성스러운 성서에도 ‘제 똥을 먹고 제 오줌을 마셔야 할 저 성벽 위에 앉아 있는 자들’(2열왕기 18: 27) 이라는 대목이 있다. 아프리카의 모시(Mossi)족 족장 취임 축가에는 ‘똥이고 쓰레기인 우리를 죽이려 왔지만, 또 동시에 우리를 구원하러 왔다’라는 구절도 있다. 아마 과거에는 그 정도만 해도 가장 극악한 욕이 아니었을까 싶다.

성스럽다는 뜻의 라틴어 ‘Sacer’는 ‘이롭고 해롭고 성스럽고 저주받은’이라는 양가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멜라네시아의 Mana, Sioux 인디안의  Wakan, Iroquois 인디안의 Orenda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또, ‘비속한’이라는 뜻의 Profane의 기원인 라틴어 Profanus는 신전 밖이라는 뜻이므로 항상 성스럽게 신전에만 살 수 없는 우리는 잠재적 무뢰배들이다. 프랑스의 사상가 르네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이라는 책에서 파괴적이고 나쁜 폭력을 없애주는 좋은 폭력이 제의(Ritual)를 만들고 그것이 종교의 기원이라고 말했다. 신화든, 종교든, 결국 인간의 원시적인 폭력성을 신성한 무언가로 다스리려 한다. 무의식의 파괴적 심성은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다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운전하다, 돈을 잃었을 때, 누군가와 심하게 부딪쳤을 때, 욕 한 번 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만나보고 싶다. 동생을 죽인 카인도, 형을 속이고 장자의 권리를 빼앗은 이삭도, 연쇄살인범 앙굴라마 왕도 용서받았으니 욕 좀 했다고 지옥에 떨어질 것 같지는 않다.

주류 문화에 대한 분노와 불만, 대중문화 생성하는 에너지로 활용할 수도

문제는 상대방이 내 말 때문에 상처받는다는 것에 아파하지 않는 공감 능력 부족이다.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며 국가의 품격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많다. 사실 막말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보다 미국이 더 심하다. 미국의 대표적 보수 방송인 러쉬 림보(Rush Limbaugh)의 설화(舌禍)는 요란하다. 예컨대 노예 해방 전, 흑인을 경멸적으로 부르던 용어를 쓰지 않나, 환경 단체를 환경에 미친 사람(Environmental wacko)이라 부르고 여성주의 나치(Femi-nazi)라는 말을 쓰더니 급기야는 피임약을 보험에 적용하게 해달라는 법대생에게 성생활 할 때마다 돈받는 창녀라는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역시 욕설 가사로 유명한 래퍼 에미넴(Eminem)은 <The way I am>이라는 노래에서 각종 비속어를 써가며 자신을 비난하는 미디어와 지식인들을 조롱한다. ‘바로 그들 덕에 열정이 생겨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Cause I am whatever you say I am)’라고 말한다. 아마 점잖은 사람들의 잔소리가 꽤 지겨웠던 모양이다.

사실 대중문화를 생성하는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주류의 점잖은 지식인 문화와 섞일 수 없는 분노와 불만에서 나온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 양주 별산대 놀이, 고성 오광대 놀이에는 ‘등신 같은’ 양반과 승려를 경멸하고 ‘벨꼬라지!’ 같은 세상을 욕하는 대목이 많다. 물론 서로 덕담만 주고받는 세상이 훨씬 평화롭기는 할 것이다. 수로부인에게 꽃을 꺾어준 남정네는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라는 멋진 말을 남겼다. 프로이트도 “말은 마술 같은 힘을 가졌다”라고 했다. <예기(禮記)>는 앵무새와 원숭이는 말은 하지만 금수(鸚鵡能言 不離飛鳥 猩猩能言 不離禽獸)이고, 예의를 모르면 부자가 한 마리와 교접하는 금수(人而無禮 夫惟禽獸 無禮父子聚?)와 다름없다고 했다. 하지만, 예를 배울 기회가 없었던 평민과 노비들이 욕도 하지 못하고 산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하다. 욕하는 남만 욕할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쓰는 나 자신 역시 내 세 치 혀와 오그라든 손으로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준 적이 많았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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