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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여자가 주도권 쥔 베드신이 대세

한국 영화 속에 나타난 성(性)의 시대적 흐름 / 출발은 섹스를 사는 남자를 다룬 호스티스물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ㅣ | 승인 2012.04.23(Mon) 00: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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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돈의 맛>

봄 스크린이 뜨겁다. 간통 사건을 조사하다 살인 누명을 쓰게 된 한 형사의 사연을 그린 <간기남>을 출발점으로 과감한 노출을 담은 영화가 바통을 이어받는다.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옮긴 <은교>가 개봉(4월28일)하고, 재벌가의 감추고 싶은 사생활을 묘사한 <돈의 맛>이 5월 극장가를 찾는다. 궁중 비사를 그린 <후궁: 제왕의 첩>도 6월에 관객을 찾는다.

<은교>는 노시인과 그의 소설가 제자, 여고생 사이의 삼각관계를 그린다. 결핍된 사람들의 욕망이  빚어내는 치정이 가슴을 애틋하게 하는 영화. 여고생과 두 남자가 사랑을 나눈다는 파격적인 설정답게 노출도 과감하다. <돈의 맛>은 재벌가 회장역을 연기한 윤여정과 그의 뒷일을 봐주는 젊은 사내의 침실 장면만으로도 벌써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이다. <후궁: 제왕의 첩>은 궁중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비극을 에로를 지렛대 삼아 들추는 사극이다. 노골적인 성 묘사가 영화를 대변하지는 않지만, 주요 소재와 모티브로 사용된 작품이다. 성에 대해 한동안 점잖았던 충무로에 다시 한번 에로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1970년대, 호스티스 영화로 사회의 어두운 풍속도 그려

한국 영화는 보수적인 유교의 영향으로 성에 대해서는 관대하지 않았다. 남녀의 첫 키스 장면이 등장(<운명의 손>)해 화제를 모았던 것이 1954년이다. 충무로에 성 묘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는 1970년대이다. 이때 유신이라는 암울한 정치적 상황과 압축 성장에 따른 향락 산업의 번창 등으로 사회의 어두운 풍속도를 그린 ‘호스티스 영화’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별들의 고향>(1974)과 <영자의 전성시대>(1975)가 기폭제 역할을 했다. 특히 밑바닥 인생 윤락녀의 삶을 그린 <영자의 전성시대>는 이후 쏟아져 나온 호스티스 영화의 원형으로 꼽힌다. <O양의 아파트>와 <나는 77번 아가씨> <겨울여자>(1977)도 1970년대의 성을 코드로 삼은 대표작이다. 한 여대생이 여러 남성과의 관계를 거쳐 사랑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당대의 성 개방 풍조를 상징한다. <겨울여자>가 엄청난 흥행을 하자 충무로에는 여자 시리즈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버린 여자>와 <아침에 퇴근하는 여자> <꽃띠 여자> <목마 위의 여자> <아스팔트의 여자> 등이 대표적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충무로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김기영 감독의 성 묘사도 빼놓을 수 없다. 김감독은 1960년 <하녀>로 집 주인과 하녀의 부적절한 관계를 통해 중산층의 허위를 고발했는데, 그는 이후 성을 코드로 인간의 욕망을 곧잘 묘사했다. 김감독이 <하녀>를 리메이크한 <화녀>(1971)는 지금도 영화인들의 입에 곧잘 회자되는 베드신으로 화제를 모았다. <충녀>(1972)도 과감하게 성적 묘사를 했던 작품. <이어도>(1977)는 시체와 성관계를 갖는 모습을 자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1980년대는 에로영화 전성시대

   
영화 <간기남>
충무로 에로영화는 1980년대에 전성기를 연다. 민주화의 실패와 새로운 군사 정권의 등장은 좀 더 퇴폐적인 영화의 양산으로 이어졌다. <애마부인>이 1980년대 에로영화 전성시대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안소영이라는 걸출한 에로 배우를 탄생시킨 이 영화는 오수비 등이 출연한 시리즈로 이어지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섹스 미스터리 <여자는 안개처럼 속삭인다>(1982)의 흥행도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다.

1980년대 에로영화는 주로 궁중 사극이나 토속 에로 두 갈래로 나뉘어 만들어졌다. 궁중 사극은 사대부가 여인의 스캔들을 그린 <어우동>(1985)이 대표적이다. <어우동>의 성공은 <깜동> 등 유사 영화의 제작으로 이어졌다. 토속 에로로는 <뽕>(1985)과 <변강쇠>(1986)가 상징적인 영화로 꼽힌다. 두 작품은 시리즈로 만들어지면서 1980년대 토속 에로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토속적인 에로를 표출하면서도 높은 작품성을 인정받아 해외에서 호평받은 영화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두용 감독의 <피막>(1980)과 <물레야 물레야>(1984), 임권택 감독의 <씨받이>(1986), 하명중 감독의 <땡볕> 등이 그런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애란>(1986)은 형부와 처제, 기모노가 등장하는 이색적인 성애 묘사로 화제를 모았다.

1987년 민주화 바람을 타고 에로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대거 등장했다. <매춘>(1988)이 그 출발점으로서,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노출 장면이 담겨 있었다. <매춘>의 상업적 성공은 <매매춘> 등 유사 영화의 제작을 불렀다.

1990년대 이후에는 비디오에 자리 내줘

1990년대 들어 영화 속 표현의 제한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성을 상업적 도구로 사용하는 영화는 되레 급속도로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오수비 주연의 <서울에서의 마지막 탱고>(1995) 등이 만들어지며 명맥을 유지했으나 힘을 받지는 못했다. 영화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영상 무기인 비디오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는 비디오의 전국적인 보급과 함께 에로비디오가 범람했다. 유호프로덕션과 한시네마타운으로 대변되는 에로비디오는 야한 영화를 공개적으로 극장에서 보기를 꺼리는 대다수 관객을 대상으로 급속히 세력을 확산했다. 1~2주가량의 짧은 촬영 기간과 저렴한 제작비 등도 무기였다. 전국의 비디오점을 배급망으로 깔고 대중을 유혹했다. <젖소 부인>이라는 노골적인 제목의 에로비디오에 출연한 진도희라는 배우가 스타로 탄생한 시기도 이때이다. 기존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에로비디오도 쏟아져 나왔다. 충무로가 극장가의 주류였다면, 에로비디오는 전국 비디오점의 대세였다. 때마침 전국적으로 유행한 비디오방의 등장도 에로비디오 활황에 힘을 더했다.

대신 충무로는 1980년대식 에로영화를 만들기보다 성을 표현의 한 도구로 이용하는 제작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치열한 논란을 일으킨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이 대표적이다. 두 남녀의 가학적·피학적 성관계를 그려낸 이 영화는 에로틱한 장면들로 관객들을 유혹한 면도 있지만, 성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의 주제 의식을 표현하는 데 성을 활용하는 추세

2000년대 들어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에로비디오는 급속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안방에서 해외 도색영화의 불법 다운로드가 가능해지면서 에로비디오는 경쟁력을 잃었다. 이에 따른 비디오와 DVD 시장의 몰락도 에로비디오의 침몰을 부추겼다. 에로비디오는 온라인 VOD용 등으로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으나 예전 전성기와는 비교하기 힘든 처지가 되었다.

반면 충무로는 대형 스크린과 섬세한 연출력을 무기로 여전히 성을 흥행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에로영화라 부를 만한 작품은 없었으나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바람난 가족> <스캔들> 등 성을 마케팅 도구로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 이들 작품은 주로 여성 해방이나 국내 중산층의 지리멸렬함 등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품격 있게 표현하는 데 성을 양념적 요소로 활용했다. 김기덕 감독처럼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그는 <나쁜 남자> 등으로 도발적인 성의 측면을 부각시켰지만 에로보다는 소수자의 정서를 반영하는 데 성을 이용했다. 라제기│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IPTV는 ‘야한 영화’의 새로운 후원자? 

   
“최근 야한 영화가 잇달아 개봉된 이유로 IPTV의 등장을 무시할 수 없다.” 한 영화 수입사 대표의 말이다. IPTV가 <간기남>과 <은교> 등 야한 영화가 등장하는 데에 바탕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IPTV의 도래로 충무로에 야한 영화 전성기가 열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감하게 성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나오게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영화계에서는 극장에서 죽을 쑤었다가 IPTV로 기사회생한 영화들의 사례가 최근 많이 거론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마이클 윈터보텀의 영국 영화 <나인송즈>(2004)이다. 주연 남녀 배우들이 실제 성관계를 맺는 장면을 자세히 묘사해 해외에서도 논란을 일으켰던 이 영화는 지난해 10월 늑장 개봉해 고작 87명이 극장을 찾았다. 매출액은 61만9천원이었다. 관객 4천명은 들어야 수지타산을 맞출 수 있었던 <나인송즈>는 IPTV에서 1회 다운로드당 1만원을 받으며 이익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개봉했던 <방자전>은 지난해 IPTV에서만 34만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극장 개봉에서 신통찮았던 <하녀>도 IPTV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남겼다는 후문이다.

야한 영화는 온라인 VOD 시장에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올 초 발표된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의 ‘2011년 한국 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VOD 한국 영화 순위 7, 9위에 <두 여자>와

<쌍화점>이 각각 올랐다. <두 여자>는 극장에서 좋은 흥행 성적을 얻지 못했던 영화이다. <쌍화점>도 2008년 말에 개봉한 영화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외국 영화 순위는 야한 영화의 소비 방식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극장에서 9만명이 채 보지 않은 홍콩 영화 <옥보단 3D>(아래 사진)가 3위에 올랐고, 2007년 개봉한 영화 <색, 계>가 5위를 차지했다. 지난해 극장 흥행 성적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온라인 부가 판권 시장에서 보여준 셈이다.

영진위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영화 부가 판권 시장 총 매출액(5백41억원)에서 IPTV(3백41억원)가 차지하는 비중은 63.1%였다. 지난해 가입자 수는 4백93만5천8백5명으로 2010년(3백65만9천5백74명)보다 무려 1백28만여 명이나 늘어났다. 통신업계 강자인 KT와 SK텔레콤 등이 인터넷과 인터넷 전화 등을 함께 묶은 결합 상품을 선보이면서 빠르게 가입자 수를 늘리고 있다.

IPTV의 장점은 여럿이다. 원하는 영화를 간단한 리모컨 조작을 통해 대형 TV 화면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기존 비디오나 DVD와는 달리 매출에 따른 수익 분배 방식을 주로 택하고 있는 점은 영화 제작자나 수입업자에게 매력적이다. 비디오나 DVD는 일정 금액을 주고 영화 판권을 확보한 사업자가 수익을 독차지하는 구조였다. 한 영화 수입사 대표는 “예전에는 극장에서 1만명은 보아야 수익이 남는 영화도 이제는 극장에서 2천~3천명이 보아도 충분히 승부를 걸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IPTV가 새로운 수익원으로 각광받으면서 영화 기획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중년 연기자 김혜선의 누드 연기로 화제를 모은 <완벽한 파트너>는 IPTV를 감안해 제작된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다. 극장과 IPTV에서 동시 개봉한 <완벽한 파트너>는 극장에서는 8만명 정도의 관객밖에 찾지 않아 흥행 참패를 겪었다. 그러나 극장 수익의 3~4배에 달하는 돈을 IPTV에서 벌어 손실을 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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