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 충족 UX가 ‘100년 기업’ 만든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4.23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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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경험’ 적용한 제품·서비스에 고객 몰리는 시대 / IT업계에 성공 사례 많았는데 최근 금융권에까지 확산

휴대전화를 만지지 않고도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기능도 UX를 적용한 것이다.

과거에는 좋은 물건을 만들면 팔렸다. 매몰차게 연구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든 기업은 장수했다. 1890년 토마스 에디슨이 세운 GE는 전구부터 항공기 엔진까지 만들면서 100년 이상을 이어왔다. 그동안 사용자는 기업이 만든 제품에 맞춰 생활했다. 예를 들어 전구는 깨지기 쉬운 유리 제품이다. 소비자는 깨지지 않는 전구를 사용하고 싶지만, 현재로서는  유리로 만든 전구를 사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른 대체품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깨지지 않는 데다 주변 밝기에 따라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전구가 발명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당연히 그 전구는 불티나게 팔릴 것이다.

일상생활 속 행동·무의식·심리까지 파악해

건축계에 이런 일화가 있다. 한 건축가가 집 앞 정원을 만들고는 길을 따로 내지 않았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잔디를 밟고 다녀야 했다. 비 오는 날에는 축축해서 구두를 버리기 일쑤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곳에 잔디가 죽고 길이 났다. 그제야 건축가는 그 길을 따라 사람이 다니는 길을 정비했다. 미리 길을 만들어놓으면 편리할 것 같지만 사실 사람의 행동이란 예측할 수 없는 것이어서 그 길로만 다니지 않을 수 있다. 사람이 자주 다녀서 길이 새로 나면 기존에 만든 길을 없애고 새로 길을 내야 한다.

이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사람의 행동, 무의식, 심리 상태까지 파악하는 것을 UX(사용자 경험)라고 한다. 디자인을 바꿔 편리성을 높이거나 색상에 변화를 주어 예쁘게 만드는 정도가 아니다. UX가 적용된 제품과 서비스는 편리함은 기본이고, 기존에 느끼지 못했던 경험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예를 들어, 컴퓨터가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인간은 키보드를 두들겨 컴퓨터에 명령을 내렸다. 그나마 사람의 말과 다른, 해괴망측한 기계 언어를 배워야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윈도라는 것이 나온 후로는 마우스라는 장치로 모니터에 그래픽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기존에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UX의 힘이다.

HUD(헤드업 디스플레이)는 운전자의 시선과 편리성을 고려한 UX의 사례이다. ⓒ 현대·기아차그룹

혁신을 일으키는 UX의 힘

1990년대에 이론이 정립된 UX는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애플의 아이폰(iphone)이다. 아이폰 이전의 휴대전화는 고만고만했다. 제품 크기, 화면 밝기, 배터리 용량, 버튼 조작의 편리성 정도로 휴대전화 제조회사들은 도토리 키 재기를 했다. 아이폰은 전화번호 버튼을 아예 없앴고, 화면도 터치스크린으로 바꾸었다. 무엇보다 휴대전화의 개념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버렸다. 기존의 휴대전화는 통화가 기본이고 나머지는 부가 기능이었다. 그러나 아이폰에서는 통화가 부가 기능일 정도로 인터넷, 게임 등 수많은 재주가 돋보였다. 게다가 전혀 새로운 경험을 소비자에게 선보였다. 작은 사진이나 지도를 두 손가락으로 넓히고 좁히는 동작(핀치 기능)은 세계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통했다. “그래, 이런 것이 필요했어”라는 탄성이 나왔다. 그 배경이 UX이다.

아이폰의 출현으로 세계 휴대전화 시장은 판도가 바뀌었고, 소니·도시바·닌텐도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은 몰락했다. 그만큼 UX는 힘이 세다. UX 컨설팅업체 UX1의 조성봉 대표는 “카약(kayak)이라는 항공 스케줄을 보여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다. 디자인도 예쁘고 편리해서 대박을 쳤다. 그런데 힙멍크(hipmunk)라는 애플리케이션이 나오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비행기 출발 시각과 도착 시각을 숫자로 보여주던 기종 방식을 그래프로 보여주었다. 사용자는 얼마나 비행기를 타야 하고 경유하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할 필요가 없어졌다. 여러 항공사의 비행시간을 한눈에 비교하기에도 편리해졌다. 이처럼 UX는 기존의 나쁜 점을 고치거나 좋은 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변화, 즉 혁신을 몰고 온다. 지금까지는 제품에 사용자가 맞춰야 했다면, 앞으로는 제품이 사용자에 맞추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UX의 힘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첫 번째는 단순함이다. 아무리 새로운 경험이라도 사용하기에 복잡하면 실패한다. 열쇠(키)로 자동차의 시동을 거는 행동은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당연하게 여긴다. 최근에 출시되는 자동차에는 키가 없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건다. 키를 찾아 꽂고 돌리는 행동을 삭제한 것이다. 또 UX는 직관적이다. 일반 휴대전화나 컴퓨터를 사면 사용설명서가 따라온다. 거의 책만큼 두툼하다. 소비자는 사용설명서를 ‘공부’해야 제품을 이용할 수 있다. 애플의 아이폰과 컴퓨터에는 사용설명서가 없거나 있더라도 한두 페이지에 불과하다. 사용설명서가 없어도 사용하는 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제품뿐만 아니라 서비스나 기능에도 UX를 접목하는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끄는 클라우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도 동기화라는 개념은 있었다. 이 컴퓨터에 있는 문서와 사진을 저 컴퓨터로 옮기려면 선을 연결하고 사람이 인위적인 조작을 했다. 그러나 클라우드는 무선인 데다 자동으로 동기화가 이루어진다. 서울에서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으면 부산에 있는 컴퓨터, 태블릿PC, TV에서도 그 사진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대화 중에 받기 곤란한 전화가 올 때 휴대전화를 뒤집으면 전화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 기능(정황 인식), 요리하던 손으로 전화를 받을 수 없을 때 허공에 손을 움직이면 전화를 받을 수 있는 기능(모션 인식)도 UX가 적용된 기술이다. 자료를 만들거나 사진을 찍으면 다른 장치로 이동시켜야 할 일이 생긴다. 또 대화 중이거나 요리할 때처럼 전화 받기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처럼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생활 속에서 행하는 행동이 반영된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자의 눈길을 받을 수밖에 없다. 편리한 데다 새로운 경험과 재미까지 주기 때문이다. 최강석 팬택 UX팀 차장은 “UX를 적용한 제품과 서비스는 사용하기 전부터 소비자의 오감을 만족시킨다. 또 사용할 때에는 새로운 경험을 맛보도록 한다. 사용한 후 다른 장비로 바꿀 때, 그 회사 제품을 구입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UX이다. 이처럼 최근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는 UX를 적용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최근 UX 전문가를 채용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팬택 등 IT 계열 회사는 이미 대규모의 UX 전문가 조직을 꾸렸고, 현대자동차도 조직 규모를 넓히고 있다. 한 기업에 많게는 수백 명 단위의 UX 전문가가 움직이고 있다.

IT업계를 중심으로 불기 시작했던 UX 바람은 최근 금융업계와 유통업계 등으로 그 범위를 넓히고 있다. 실제로 자동차회사 볼보는 몇 해 전 여성용 자동차(볼보 YCC)를 내놓아 큰 인기를 끌었다. 몇 가지만 고쳐놓고 여성을 위한 차라고 주장하는 다른 회사와 달리 볼보는 여성 전문가가 제작에서부터 참여했다. 여성 운전자들은 자동차가 고장 나도 수리를 위해 보닛을 여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해 후드를 아예 없앴다. 또 뒷좌석에 승객을 태우기보다 가방을 두는 여성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뒷부분에 소품 보관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머리를 뒤로 땋은 여성을 위해 시트 머리 부분에 움푹 들어간 홈을 마련했다. 굽 높은 구두나 긴 드레스를 착용한 여성이 차를 쉽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위로 열리는 날개식 문을 채택했다. 차 시트가 더러워지면 세탁할 수 있도록 8가지 시트로 교체할 수 있게 했다. 여성 운전자가 주차할 때 가장 어려워하는 방식이 일렬 주차라는 점을 알아내고, 차와 차 사이에 일렬로 주차하는 것을 도와주는 평행 일렬 주차 보조 장치를 설치하기도 했다. 이런 UX 적용으로 볼보는 자사 미국 고객 중 54%를 여성으로 채웠다.

금융권에서도 UX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요즘 은행이나 카드사 홈페이지를 보면 단순히 디자인이 변한 것이 아니라 놀이터처럼 변했다. 또 은행 홈페이지를 방문하는 사람은 계좌 조회와 이체가 주목적이다. 따라서 이체 단계를 10단계에서 5단계로 대폭 줄였다. 애플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윈도 OS 기반뿐만 아니라 애플 컴퓨터 사용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에도 변화를 주었다. 소비자가 편리함을 느끼면 점점 특정 기업에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기업에 이익을 안겨준다. 이민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면도기 제조사인 질레트는 여성용 면도기(질레트 비너스)를 만들어 히트를 쳤다. UX는 매출과도 직결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일부 마니아층이 사용하는 전자제품 일부에만 적용되던 UX가 지금은 일반 전자제품으로 확대되고 있다. 또 UX를 채택하는 회사도 과거 전자업계에서 다른 산업군으로 확대되고 있다. 앞으로 UX가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용자는 웬만한 변화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찾는다. 즉, 개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에 UX가 적합하다”라고 전망했다.

영화 에서 주인공이 홀로그램을 손으로 만지고 있다. UX를 적용한 미래의 모습이다.

좋은 UX라도 트렌드 반영해야 호응

영화 <아이언맨>에서는 주인공이 3차원 홀로그램을 손으로 만지고 조립하고, 쓸모없는 것은 쓰레기통에 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UX로 구현될 미래의 모습이다. 인공 지능과 3차원 그래픽이 결합되면 3D 안경이나 전자 장갑 없이 맨손으로 홀로그램을 만지면서 촉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기업의 UX팀은 사람의 심리까지 연구한다. 예컨대 사람 눈동자의 미세한 움직임도 감지해서 분석한다. 도박을 하더라도 눈동자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이를 적용해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한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소비자가 티셔츠를 산다고 하자. 한 소비자가 티셔츠만 구매한다고 하지만 눈동자는 자신도 모르게 다른 상품을 기웃거린다. 실제로 그 소비자가 관심을 가질 만한 상품을 눈동자의 움직임이 가는 곳에 배치했더니 클릭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또, 행동경제학도 UX팀의 연구 분야이다. 특정 상황에서 소비자는 이런 행동을 보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행동을 보인다. 무의식적인 패턴이 있는 것인데, 이를 집어내 제품과 서비스에 적용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UX 기반의 제품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몇 년 전에 의자의 방향을 뒤로 돌릴 수 있는 차가 개발되었다. 여행하는 사람끼리 마주 보며 대화를 나누기에 편리했지만 사고가 나면 서로 머리를 부딪혀 큰 부상을 입을 위험성이 대두되었다. 이 차는 더는 생산되지 않고 있다. 노키아는 공개 프로젝트 모집까지 할 정도로 UX 수용에 적극적이다. 그렇지만 너무 사용자 욕구에만 몰두했다. 휘는 디스플레이가 필요하다는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 제품을 개발했다. 그러나 그 두께가 두툼해서 시장에서의 평가는 냉혹했다. 또 소니에릭슨은 2010년 엑스페리아라는 스마트폰을 출시하면서 기존 게임기(XBOX)에 적용했던 3D 기술을 도입했지만 소비자에게 외면받았다. 최강석 팬택 UX팀 차장은 “소니에릭슨의 스마트폰은 게임기에 적용한 기술을 휴대전화라는 다른 장치에서 구현한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처럼 좋은 UX라도 시대 흐름, 소비 트렌드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미래의 100년 기업은 물건만 잘 만들어서는 안 된다. 브랜드의 충성도와 기업의 자본력도 100년 기업의 기본 조건이다. 그러나 이런 요소는 점자 약화되거나 제한되어간다. 미래에 살아남는 기업은 UX를 어떻게 읽어내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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