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확산 따라 ‘고스트족’ 늘어났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2.04.23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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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등으로 외로움 달래…실제 인간관계 형성에는 미숙

ⓒ 시사저널 이종현
며칠 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 한 무리의 사람이 모였다. 각자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은 채 바쁜 손놀림으로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글을 주고받았다. 앞에 앉은 사람과 간간이 대화를 나눌 때조차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온라인에서건 현실에서건 눈에 보이지 않는 유령을 대하는 듯한 이들은 ‘고스트(ghost)’족이다. 인간관계 형성에 미숙한 점이 이들의 특징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학기마다 학생들에게 성공의 조건을 물어본다. 최근에도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상당수가 대인 관계라고 답했다. 예전에는 대인 관계라는 말조차 없었던 터라 깜짝 놀랐다. 그만큼 요즘 세대는 인간관계에 목말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관계 형성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상당수 학생의 고민거리는 친구를 사귀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통신기술의 발달로 온라인을 통해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었지만 그것과 반비례해서 친밀성은 고갈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인 관계 조언해주는 컨설팅회사 탄생 배경

사람이 사람 사귀는 법을 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지난 20년 동안 경제와 기술은 발전했지만,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없다고 느끼는 미국인이 세 배 증가했다고 한다. 한국에는, 영화 <시라노 연애 조작단>처럼 연애를 잘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원이 있고, 대인 관계를 조언해주는 컨설팅회사도 여럿 생겼다. 인간관계가 이슈거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갈등에서 찾는다. 곽교수는 “과거에는 형제가 많아서 걸핏하면 다툼이 일었다. 장난감을 가지려고 싸웠고, 과자를 더 많이 먹기 위해 눈치도 보았다. 이런 과정에서 협상하고 설득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이것이 학교와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맺는 기술로 작용했다. 그런데 요즘 세대는 대부분 한두 자녀 가정에서 자랐다. 대가족에서 자랐더라도 할아버지나 할머니보다 아이가 중심인 시기에 성장한 이들이다. ‘나’ 중심의 세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갈등이 없다. 그러니 남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갈지 모르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흔히 학창 시절의 친구와 사회에서 관계를 맺은 친구는 다르다고 한다. 사회 친구는 거의 매일 만나지만 정이 들지 않는다. 학교 친구는 1년에 한두 번 만날 정도이지만 늘 정겹고 그립다. 이것도 갈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김봉섭 한국정보화진흥원 수석연구원은 “학창 시절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갈등과 해소를 반복하면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물론 사회 친구와도 갈등을 겪는다. 그러나 그 갈등은 계층 간 갈등이다. 나이, 학력, 지역 등으로 구분된 계층이 갈등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반면, 학교 친구와의 갈등은 동료로서의 갈등이다. 아무런 계층이나 조건이 없는 갈등을 기반으로 진정한 인간관계가 만들어진다”라고 말했다.

현실 세계에서 대인 관계에 미숙하지만 인간관계를 맺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은 숨길 수가 없다. 이 본성을 적절한 시기에 건드린 것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이다. 이는 대인 관계의 폭을 넓히는 데에 효과가 있다. 클릭 한 번으로 친구 맺기가 가능하다. 하루에 수백 명의 사람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런데 수십만 명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실제 인간관계도 좋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지난해 유진기업이 임직원 4백여 명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채널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 중 과반수가 SNS와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간관계의 폭은 넓어졌지만 깊이는 얕아졌다고 답했다. 출근 후 퇴근할 때까지 동료나 상사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시간은 응답자의 72%가 하루 한 시간 미만이라고 했다. IT 기술 발달이 인간관계의 확장성은 가져왔지만 관계의 질적 성장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낮에는 수많은 사람과 트위터로 대화를 나누던 사람들이 밤에는 외로움에 몸서리친다. 그렇게 많아 보이던 사람들이 모두 유령처럼 사라지고 없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지만 공허함은 여전하다.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격이다.

“인간관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다”

영국의 문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 옥스퍼드 대학 교수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1990년대 초 침팬지나 원숭이 등 영장류 30여 종의 사교성을 연구하다가 대뇌의 신피질이 클수록 교류하는 친구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신피질은 대뇌의 표면을 덮고 있는 층으로 학습·감정·의지·지각 등 고등한 정신 작용을 관리하는 영역이다. 이 크기를 고려할 때 인간은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수가 약 1백50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호주, 뉴기니, 그린란드 등의 오지에 남아 있는 원시 부족 형태 마을의 구성원이 평균 1백50명 안팎이고, 효과적인 전투를 수행하기 위한 중대 규모도 1백50명 선이라는 점도 그 결론을 뒷받침했다. 아무리 발이 넓고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온전한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한계는 1백50명이라는 것이다. 이른바 던바의 법칙이다.

던바 교수는 이 법칙을 소셜 네트워크상의 친구 맺기에도 적용해보았다. 수천 명에 이르는 인맥을 관리하는 ‘사교적인 사람’과 수백 명 정도인 ‘보통 사람’을 비교했다. 친구의 기준은 1년에 한 번 이상 연락하거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삼았다. 결론은 두 부류 간 진정한 친구의 수는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만 명에 달하는 인맥을 자랑하는 유명 인사도 실제로는 약 1백50명과만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인간관계는 양이 아니라 질이 문제라는 것이다. 따라서 가상 세계에서 맺은 인간관계를 현실인 양 착각하지 않아야 한다. 심지어 온라인 가상 공간에서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은 사람은 인간성도 좋을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또 ‘수락’ 버튼을 클릭하는 것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되었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오히려 ‘거절’ 버튼을 클릭하면 쉽게 네트워크가 단절된다. 온라인상의 대인 관계는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의 김봉섭 수석연구원은 “미국인은 하루 평균 4시간 반 동안 TV를 시청한다. 일과 시간과 잠자는 시간 외에 대부분의 시간을 TV 시청에 쏟는 셈이다. 이는 가족 간의 대화 단절을 의미한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가상 세계에서 인간관계 형성에 매달리면 현실에서의 대인 관계가 소홀해진다. 온라인은 인간관계 형성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고 인식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현실에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부터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고민한다. 그렇다면 우선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이라도 하라. 이런 행동만으로도 사람 관계를 열 수 있다. 또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존재감을 확인받고자 한다. 예전에는 동네에서 ‘누구네 자식’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녔다. 이 꼬리표는 존재감을 의미한다. 그러나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요즘에 나의 존재감을 찾기란 쉽지 않다.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 온라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짙어지기도 한다. 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곰곰이 생각해보라. 경쟁 사회일수록 나보다 남을 보고 의식한다. 그리고 내 부정적인 면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이는 인간관계를 멀리 하는 역기능으로 작용한다. 나의 긍정적인 면을 개발하면 부정적인 면을 보완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대인 관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장인들은 현실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한다. 김윤기 서울시북부병원 정신과장은 “젊은 부하 직원은 온라인으로 서류를 주고받는 것이 효율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상사는 종이로 된 보고서를 원한다. 직장에서는 이런 갈등이 존재한다. 여기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현실력이 떨어진다. 게임 중독자가 현실과 가상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직장인은 현실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 내가 바뀌거나 다른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으므로 냉정하게 현실을 놓고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상사가 바뀔 것 같지 않다면 자신을 바꾸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부부는 지지고 볶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대응 방법을 터득한다. 이런 부부는 유령이 아닌 사람을 대하면서 한평생을 살아간다.


“인간관계는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미국 브링검영 대학 연구팀은 30만8천명을 대상으로 한 1백48건의 대인 관계 관련 연구를 분석했더니 사회생활에서 인간관계가 좋은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먼저 죽을 확률이 50%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관계 형성이 건강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이유 중의 하나도 인간관계 형성에 적극적이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연구를 주도한 줄리안 홀트-룬스타드 교수는 “대인 관계 부족은 하루에 담배를 15개비 피우는 것과 같다. 대인 관계가 적은 것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것과 맞먹는 나쁜 영향이 있으며, 비만보다도 두 배나 해롭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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