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결과도 안 나왔는데 왜 ‘실족사’로 급마무리했을까
  • 박정민│국제신문 사회부 기자 ()
  • 승인 2012.04.23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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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부산 여대생 사망 사건 의문점들 밝히지 못한 채 수사 종결

실종되었던 부산 여대생이 익사체로 발견된 대천공원 호수는 1.2m 높이의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있다.

부산에서 21세 여대생이 산책하러 간다고 집을 나선 지 8일 만에 집 근처 공원 호수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20대 여성이 잔인하게 살해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또 다른 20대 여성이 의문의 죽음을 맞자 전국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경찰은 이 여성이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에 대해 무엇 하나 속 시원히 밝혀내지 못한 채 서둘러 수사를 종결했다.

부산 해운대경찰서에 따르면, 부산에 있는 한 대학의 2학년생인 문 아무개씨(21)는 지난 4월4일 밤 11시20분께 집에서 도보로 15분가량 떨어진 해운대구 좌동 대천공원 주변으로 산책하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문씨는 해운대도서관에서 공부하다 산책을 나서기 10분 전쯤 집으로 돌아왔다. 문씨는 밤 11시54분께 어머니에게서 걸려온 휴대전화에 “강가(대천공원에서 문씨 집까지 이어지는 ‘춘천(春川)’으로 추정)를 걷고 있는데 곧 들어간다”라는 말을 남긴 뒤 연락이 끊겼다.

문씨의 시신은 8일 뒤인 4월12일 오후 3시20분께 대천공원 호수의 수심 5m 지점에서 부산시 소방본부에 의해 발견되었다. 곧이어 문씨의 휴대전화도 시신과 멀지 않은 지점에서 발견되었다. 산책 나갔을 때의 옷차림 그대로 검은색 바지, 보라색 카디건을 입고 검은색 캔버스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왼쪽 귀에는 이어폰을 꽂은 채 목에는 주황색 목도리를 느슨하게 매고 있었다. 당일 실시된 부검 결과, 문씨의 사인은 ‘전형적인 익사’였다. 검안의는 ‘외상이 없어 손상사나 경부 압박(목 졸림) 질식사 가능성은 희박하다’라는 소견을 내놓았다. 7℃ 이하인 수온과 시신 상태로 미루어 숨진 지 일주일가량 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익사에 이르게 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다. 타살, 자살, 사고사 등 무엇 하나로 좁히기에는 의문이 많았다. 경찰은 처음부터 타살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다가, 지난 4월16일 ‘실족사’로 결론 내리며 사실상 수사를 마무리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호수에 가까이 접근했다가 실수로 물에 빠져 숨졌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실족사로 보기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풀리지 않는 의혹들 여전히 남아

대천공원 호수 옆 산책로(맨 위). 위는 사망한 여대생이 아파트를 나가는 모습이 찍힌 CCTV 화면. ⓒ 부산경찰청 제공
먼저, 귀에 꽂혀 있던 이어폰이다. 문씨는 왼쪽 귀에 이어폰을 낀 채 발견되었다. 인양 과정에서 다른 한쪽이 귀에서 빠졌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수영을 전혀 하지 못하는 문씨가 어떤 이유로든 물에 빠져 허우적댔다면 이어폰이 귀에서 빠질 확률이 높았다. 이어폰을 낀 채 발견되자 실족사가 아닐 수 있다는 의혹도 일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어폰을 낀 채 물에 뛰어들어 허우적대는 시뮬레이션을 모두 20차례에 걸쳐 실시한 결과, 이어폰이 양쪽 귀에 꽂혀 있는 경우가 11번, 한쪽 귀에만 꽂혀 있는 경우가 6번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수영에 능숙한 경찰 직원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지 않은 상황에서 실시한 실험 결과를 실제 죽음에 이르는 상황에 접목시키는 것은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두 번째 의혹은 대천공원 호수가 높이 1.2m의 철제 펜스로 둘러싸여 실족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이다. 키가 1백63㎝인 문씨에게는 가슴까지 오는 높이이다. 이 때문에 경찰은 문씨 시신이 발견된 지점과 멀지 않은 펜스 쪽을 주목했다. 이곳은 화단이 도톰하게 조성되어 실제 펜스 높이가 77㎝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경찰은 문씨가 이곳에서 원하는 사진을 찍으려고 무리하게 펜스로 접근했다가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씨가 지난 2월 화단 근처에서 찍은 야경 사진과 “난간에 바짝 붙어 눈이 내리는 장면을 찍는 모습을 보았다”라는 친척의 진술을 근거로 내놓았다. 문씨가 평소 무리한 다이어트 탓에 쓰러질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았고, 신발 밑창이 닳아 접지력이 약했던 점, 당일 강풍이 불었던 점도 정황 증거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펜스 뒤, 즉 호수 경계에서 호숫물까지는 2.3m 길이의 콘크리트 경사면이다. 만약 펜스 뒤로 넘어졌다면 작은 상처라도 남아 있어야 할 텐데 문씨의 시신에는 타박상이나 외상이 전혀 없었다. 또 화단에는 철쭉나무류의 키 작은 수풀이 무성하다. 화단 안에 들어갔다가는 상처가 날 수 있다. 목격자가 없는 것으로 미루어 당시 호수 산책로에 아무도 없었다고 가정하면, 강풍이 부는 날,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스물한 살의 여성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화단 안에 들어가, 펜스에 기대 사진을 찍는 장면은 쉽게 그려지지 않는다. 문씨가 화단 근처에서 찍었다는 사진도 자세히 보면 화단 밖에서 찍은 구도이다.

경찰은 “평소 성인 남녀들이 펜스 안쪽으로 들어가는 사례가 종종 있었다”라며 문씨가 스스로 펜스를 넘어갔을 가능성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인근 주민과 대천공원 관리사무소 직원은 “한 번도 펜스 안에 사람이 들어가 있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라고 정반대 주장을 했다.

문씨가 실종된 지 나흘이 지난 4월9~10일에 휴대전화 신호가 잡힌 점도 의문이다. 경찰은 4월6일부터 문씨의 휴대전화에 대해 실시간 위치 추적을 했는데, 내내 신호가 잡히지 않다가 4월9~10일 세 차례 해운대교육지원청 기지국에 신호가 잡혔다. 휴대전화가 세 차례 켜졌다고 해석할 수 있어 관심이 집중되었다. 문씨가 당시까지 살아 있었거나, 누군가 휴대전화를 소지하고 있다가 나중에 호수 사고 지점에 버렸다는 가정도 가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기지국 오류이다. 휴대전화가 비정상적으로 꺼진 경우(배터리 강제 분리나 침수 등) 위치 추적을 해도 마지막으로 신호를 확인한 지역을 가리키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문씨 사건은 타살이나 실족사로 보기에 무리가 있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문씨의 평소 생활과 당일 행적을 보면 이것도 설득력이 약하다. 문씨는 실종 당일, 3주 남은 중간고사에 대비해 도서관에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 공부할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다. 장례식에서 만난 문씨의 친척은 “학교와 집만 오갈 정도로 착실한 아이였다. 실종 당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적금을 모아서 엄마 여행 보내줄 거야’라고 말했다”라며 자살 가능성에 고개를 내저었다. 실제로 문씨는 이날 한 은행에서 매달 5만원씩 2년간 넣는 적금에 가입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수사 종결, 이해 못해”

경찰은 4월16일 브리핑을 갖고 “문씨가 시신 발견 지점 부근에서 실족해 익사한 것으로 판단된다”라며 사실상 수사를 종결했다. 문제는 아직 정밀 부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4월12일 문씨 시신을 부검하면서 위 내용물 등을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 약물 중독, 성폭행 여부 등은 국과수 분석이 끝나야 정확히 알 수 있다. 부검 결과가 나오려면 2~3주가량 걸리는데, 경찰이 성급하게 실족사로 마무리한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경찰 내부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한 경찰은 “사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변사 사건에 대해 부검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수사를 종결하는 경우는 드물다”라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는 수원 20대 여성 피살 사건을 의식한 경찰이 더는 이 사건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더는 수사를 해도 나올 것이 없는데, 언론과 인터넷에서 매일같이 의문점을 제시하니 부담을 느낀 상부가 조속히 마무리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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