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게 보면 '치정극', 깊이 보면 '서정극'
  • 황진미 ㅣ 영화평론가 ()
  • 승인 2012.04.27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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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교>, 통속적 욕망을 이야기하면서도 삶의 회한 그려내

<은교>는 거칠게 보면 성애와 질투의 치정극이다. 그러나 깊이 보면 젊음과 늙음에 관한 영화이고, 삶의 유한성과 회한을 그린 영화이다. 통속적 욕망에 대한 ‘내재적 접근법’을 도입한 영화랄까. 정지우 감독의 전작 <해피앤드>나 <사랑니>도 그러했다. 치정과 질투가 난무하지만, 그 더러운 인간 욕망을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게 그린 영화가 아니었던가.

‘국민 시인’이라 불리는 노년의 이적요는 집에 칩거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젊은 제자 서지우는 이적요의 집에 드나들며, 식사 등을 챙긴다. 어느 날 이웃집 여고생 은교가 느닷없이 그들 눈앞에 나타난다. 그녀가 뿜어내는 싱싱한 젊음과 거리낌 없는 행동에 이적요는 사그라졌던 욕망이 되살아남을 느낀다. 그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은교 역시 이적요의 문학성과 이해심에 호감을 느낀다.

스승의 변화에 놀란 서지우는 질투에 사로잡힌다. 일생 이적요의 재능을 탐하던 서지우는 이제 은교로 인해 애정의 질투로 들끓는다. 이적요가 은교에 대한 연정을 담아 쓴 단편 <은교>의 원고를 발견한 서지우는 급기야 자기 이름으로 소설을 발표해버리고, 은교는 자신을 그토록 예쁘게 써준 작가가 서지우인 줄 알고 감정이 흔들리는데….

<은교>는 박범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지만, 영화화 과정에서 새로운 작품성을 획득했다. 각색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 은교의 캐릭터와 이를 연기한 신예 김고은의 매력은 관객의 눈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특수 분장이라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노인의 역할에 박해일을 캐스팅한 감독의 선택도 주효했다.

늙은 배우와 젊은 배우의 더블 캐스팅으로 연기했던들, ‘노년의 몸속에 살아 있는 청년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얼마나 직접적으로, 또한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랴. ‘노인의 연정’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각과 이성은, ‘이승과 저승만큼이나’ 멀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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