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시중, 2008년 공천 헌금도 받았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12.04.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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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최고 실세 그룹으로 군림하던 ‘영포 라인’이 벼랑 끝에 섰다.

‘MB 멘토’로 불렸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인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과 관련해 거액을 받은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시중 전 위원장이 지난 2008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 헌금을 받았다는 증언이 여권의 한 중진 의원에게서 나왔다. 그 자세한 내막을 파헤쳤다.

4월25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파이시티측으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수수한 혐의에 대해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이른바 ‘영포 라인’의 몰락이다. 영일대군, 방통대군으로 불리던 ‘대군’들의 침몰이다. 이명박 정권 들어 무소불위의 힘을 과시했던 대구·경북 세력의 대표 주자들이 하나같이 담장 위를 걷고 있다. 이상득·최시중·박영준 등을 겨눈 검찰의 칼날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다. 총선 이후 여권 내의 권력 판도가 친이계에서 친박계로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현장이자 정권이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이명박 정권 실세들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신세가 되었다. 

지난 2007년 11월, 서울 서대문에 있는 한 한정식집. 훗날 방송통신위원장이 되어 언론·통신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휘두른 최시중 전 한국갤럽 회장이 10여 명의 기자들과 만났다. 한 달 뒤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언론인들과 정국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 이날 최 전 위원장은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앞으로의 인생을 걸었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대한민국이 발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국갤럽 회장에서 퇴임하면서 주식을 팔아 수십억 원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내 돈을 써가면서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나는 일체의 공직을 맡지 않고 표표히 외국에 나가 지낼 것이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최 전 위원장의 당시 말은 공허하다.

검찰은 지난 4월26일 서울 양재동 복합물류센터인 파이시티 인·허가 비리 의혹과 관련해 거액을 받은 혐의로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에 대해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알선 수재 혐의로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MB 멘토’라고 불린 인물이다. 검찰은 그가 이동율 이에이디자인 대표로부터 인·허가 문제와 관련해 최소 5억원 이상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정배 전 파이시티 대표는 “(이동율 이에이디자인 대표를 통해) 최시중·박영준 두 사람에게 건넨 돈이 30억~40억원에 이른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경우에 따라 수뢰 액수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최 전 위원장은 자신이 받은 돈의 액수가 2억원에 불과하고, 그것도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꼬리 물고 이어진 최시중 전 위원장 관련 소문

서울 강남구 양재동 예전 화물터미널 자리에 조성된 파이시티 부지. ⓒ 시사저널 전영기
지난 1월27일 돌연 방통위원장직에서 물러난 최 전 위원장과 관련해서는 그동안 온갖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특히 ‘최시중 양아들’로 불리다가 지난해 10월 해외로 간 그의 측근인 정용욱 전 보좌역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이 많았다. 두 사람은 실제 몸은 따로따로였지만 내용상 몸은 하나라는 말이 일반적이었다. 먼저 올해 초 지난 2009년 당시 정 전 보좌역이 해외 출장을 가는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약칭 방통위) 위원들 일부에게 5백만원씩을 돌린 사실이 불거졌다.

그러다가 <시사저널>이 제1163호(2월1일자)에서 ‘최 전 위원장이 2008년 추석 당시 일부 친이계 의원들에게 수천만 원을 뿌렸다’라고 보도하면서부터 최 전 위원장이 직접 사정권에 오르기 시작했다. 최 전 위원장을 잘 아는 한 친이계 의원은 당시 <시사저널>에 “2008년 촛불 집회 이후 만난 최 전 위원장이 ‘당선 축하금을 받지 않아 촛불 집회가 일어났다’라고 말했다.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 황당했다. 얼마 뒤 추석 무렵에 식사를 하고 헤어지는데 ‘차에 실었다’라고 말해 나중에 보니 쇼핑백에 현금 2천만원이 들어 있었다. 보좌관을 시켜 즉시 돌려주었다”라고 말했다. 최 전 위원장이 준 것이 현금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돌려준 당사자의 직접 증언이었다.

국회의원 후보 공천 때 나돈 ‘최시중 명단’

최근 여권의 한 중진 의원은 <시사저널>에 최 전 위원장과 관련한 또 다른 의혹을 증언했다. “최시중 전 위원장이 2008년 18대 국회의원 공천과 관련해 공천 헌금을 받았다가 문제가 되자 돌려주었다”라는 것이다. 이 국회의원은 “돈을 준 사람은 경기도 지역에서 공천을 받으려던 인사였고 금액은 5억원으로 알고 있다. 돈을 주었는데도 공천을 받지 못해 여권 내에 논란이 일 조짐을 보이자 최 전 위원장이 두 차례에 걸쳐 2억5천만원씩 돈을 되돌려준 것으로 안다. 돈을 주었다는 인사가 당시 직접 내게 와서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다”라고 말했다. 2008년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최 전 위원장이 공천에 개입했다는 얘기였다.

또 다른 여권의 핵심 인사도 “그런 사실이 있다. 하지만 돈을 돌려주지 않았느냐”라며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투로 말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 자체가 돈과 관련한 ‘최시중 의혹’을 키운다.

2008년 국회의원 공천 작업을 앞두고 최 전 위원장은 공천을 받았으면 하는 인사들의 명단을 일부 친이계 의원에게 건네기도 했다. 당시 ‘최시중 명단’을 본 한 국회의원은 “명단 중에는 친박근혜계 인사도 들어 있었다. 어떤 기준이 없었다. 기준이 있다면 ‘돈’인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대규모로 건설 시행 사업을 한 인사의 이름 등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취재 수첩을 뒤져보니 여권의 한 친이계 핵심 의원은 2008년 7월에 기자와 만났을 때 “이상득 의원과 관련한 사건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관련한 사건이 먼저 터질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이미 집권 초부터 최 전 위원장이 언젠가 ‘화약고’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 전 위원장에 대한 검찰 수사가 여권의 대선 자금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을 것인가도 예민한 부분이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미루어보면 대선 자금에 대한 수사 계획이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 전 위원장 스스로가 돈의 용처와 관련해 “2007년 대선 당시 여론조사 비용 등에 썼다”라고 밝힌 바 있다. 검찰의 의지와 수사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대선 자금으로 수사 불똥이 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다.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대선 자금 모금 창구는 크게 세 갈래였다는 것이 당시 인사들의 증언이다. 당시 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 인사는 “대선 자금과 관련해서는 이상득·최시중·천신일 3인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캠프의 살림살이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책임졌지만, 기업 등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일은 이들 3인이 창구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자금을 모금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각자 아는 통로를 통해, 또는 찾아오는 이들을 통해 개별적으로 자금을 모았다는 것이다. 캠프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모은 것이 아니기에 당연히 전체 규모가 얼마인지도 알 수 없다. 또 다른 인사는 “우리에게도 자금을 주겠다는 이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당시 자금을 모금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고, 돈을 만지면 뒤탈이 날 수 있다는 생각에 원로 인사 쪽으로 창구를 만들어 찾아오는 이들을 그쪽으로 보냈다”라고 전했다.

검찰 수사, 대선 자금까지 겨눌지 주목

당시 여권에 돈이 넘쳐흘렀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08년 설 명절 때 이들 중 한 인사에게 세배를 갔던 한 언론인은 당혹스러운 일을 경험했다. 세뱃돈으로 봉투를 주었는데 나중에 보니 2백만원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뱃돈치고는 액수가 크다고 생각한 그는 정치권의 아는 지인의 조언을 들어 20만원을 뺀 1백80만원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야권에서는 ‘파이시티 게이트’와 관련해 “대선 자금 쪽으로 수사 범위를 넓혀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MB 대선 자금 전반을 파헤쳐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이다. ‘파이시티 게이트’가 최시중·박영준 두 실세를 낙마시키는 것에서 그칠지, 아니면 대선 자금 전반에 대한 수사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상득(ⓒ 시사저널 이종현)
국회의원 이상득과 그의 보좌관이었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현 정권 최고 실세로 군림했던 두 ‘군신(君臣)’이 파이시티 게이트가 불거지면서 백척간두의 위기에 몰렸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우선 박영준 전 차관이 파이시티 로비스트 이동율씨를 통해 이정배 전 대표로부터 거액을 받은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검찰이 수사하고 있는 박 전 차관의 수상한 돈 흐름은 크게 세 갈래이다. 먼저 이 전 대표가 이씨를 통해 박 전 차관의 부동산 매입 자금으로 10억원을 실제로 전달했느냐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2008년 1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비서실 총괄팀장이던 박 전 차관측에서 부동산을 구입하는 데 돈이 필요하다고 요구해 이동율씨를 통해 10억원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씨는 “10억원은 내가 하는 사업 대가로 받은 돈이다”라며 박 전 차관에 돈을 전달한 의혹을 부인했다.

박 전 차관은 2006년부터 2007년까지 매달 1천만원씩을 받은 의혹도 사고 있다. 당시는 박 전 차관이 이대통령의 외곽 조직인 선진국민연대에서 활동하던 시기이다. 검찰은 이 전 대표가 이씨에게 계좌를 통해 돈을 전달한 정황은 확인했다. 하지만 그 돈이 박 전 차관에게 실제로 전달된 물증은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선 2005년에도 박 전 차관이 이 전 대표 등으로부터 몇 차례 2천만~3천만원씩 받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당시 박 전 차관은 서울시 정무국장이었다. 이에 대한 박 전 차관의 입장을 듣고자 여러 차례 전화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박 전 차관의 공직자 재산 신고 내역이 처음 공개된 것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08년 5월이었다. 대통령실 기획조정비서관으로 ‘청와대 실세’ ‘왕비서관’ 등의 별칭이 따라붙던 시기였다. 그는 당시 총 11억2천7백53만원을 신고했다. 2007년 아파트 재개발 입주권을 받기 위해 사들인 서울 용산구 신계동 지역의 무허가 주택값으로 7억3천36만원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예금으로 1억3백20만원을 보유하고 있었다.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으로 근무하던 2010년도에는 전년도보다 3천4백여 만원 증가한 11억5천6백만원을 신고했다. 지난해 3월, 지식경제부 제2차관으로 재직할 때는 전년보다 3천8백52만원 증가한 11억9천5백42만원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공직자 재산 신고 부분에서는 ‘파이시티의 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해마다 3천만원 정도씩 차곡차곡 쌓인 것으로만 드러났다. 따라서 향후 검찰 수사를 통해 의문의 파이시티 돈을 실제로 받았던 정황이 드러나면 박 전 차관에게는 공직자 재산 신고 누락 혐의도 덧씌워지게 된다.

박영준(ⓒ 시사저널 유장훈)
파이시티 게이트와 관련해 이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의 그림자도 어른거린다. 중수부가 압수한 로비스트 이동율씨의 수첩 등에 이의원과 이씨가 여러 차례 만났다는 정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4월27일 현재까지 파이시티의 돈이 이의원이나 그의 측근에게 전달된 정황을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원측은 “이의원은 (이동율의) 이름과 얼굴을 전혀 모른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의원은 지난해 12월 최측근인 박배수 보좌관이 이국철 SLS그룹 회장과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 등으로부터 7억5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선 불출마와 정계 은퇴를 선언한 바 있다. 하지만 이의원의 돈 문제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의원의 여비서 계좌에서 발견된 7억원의 출처가 아직도 물음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영일대군’‘상왕(上王)’‘만사형통(萬事兄通)’ 등으로 불리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이의원의 운명도 예측하기 힘든 안갯속에 가려져 있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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