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멈추니 제조업마저 ‘비틀비틀’
  • 도쿄·임수택│편집위원 ()
  • 승인 2012.05.12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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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기요금 상승 여파로 생산 시설 해외 이전 등 검토…고용 줄고 산업 공동화 현실화될 조짐도

일본 도마리 원전 3호기가 지난 5월5일 정기 점검에 들어감으로써 일본 내 원자로 50기가 42년 만에 모두 전력 생산을 중단했다. 사진은 이날 도쿄에서 원전 반대 행진을 벌이는 시민들. ⓒ AP연합

지난 5월5일 홋카이도 도마리 원자력발전소의 가동이 중지되었다. 일본 전체 원전 50기 가운데 마지막이다. 1970년 원전 가동 이후 42년 만에 처음으로 모든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었다. 이로써 일본은 전체 전원의 30%가 중지되는 사태를 맞이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3월11일 동일본 대지진에 의해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 안전을 점검하는 차원이다.

지진과 원전 문제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원전 가동 중지는 바로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벌써 전기요금 상승 폭 얘기가 나온다. 기업은 원가 상승을 걱정하고 있다. 일본경제단체연합회(약칭 경단련)의 조사에 따르면 제조업의 70% 정도가 전력 공급이 부족하면 감산을 하겠다고 했다.

소형 모터 분야의 세계적인 기업인 일본전산은 전기 소모가 많은 생산 시설을 해외로 이전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전산뿐 만이 아니다. 많은 기업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고 있거나, 이전을 계획하고 있다. 고용이 줄고 산업 공동화가 현실화될 조짐이 보이고 있다. 그동안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이런저런 정책들을 강구해왔으나 원전 가동이 중지되면서 문제가 해결되기보다는 오히려 가중되고 있다.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화력발전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화력발전 연료비가 연간 3조~4조 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국내총생산(GDP)의 0.6%에 해당하는 국부가 유출된다.

영향은 경제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 고령자와 신체 부자유자들의 건강도 걱정이다. 절전으로 실내 온도가 올라가게 되면 환자가 증가할 수 있다. 특히 인공호흡기 등 전력을 쓰는 기기가 필요한 환자는 급작스럽게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생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소비에도 영향을 미쳐 약 3천억 엔(5조2천억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 침체의 악순환이 당분간 계속될 시나리오이다.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음에도 원전 가동을 중지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생존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수 km 이내 지역은 무인 지대가 되었다. 실제는 정부에서 권장하는 지역보다 더 넓은 지역에서까지 사람들이 살기를 기피하고 있다.

최근 잇달아 발표된 수도 직하형 대지진과 도쿄 근처 가나가와 현에서 규슈의 미야자키 현에 걸쳐 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연구기관의 발표도 원전 가동을 반대하는 이유이다. 특히 1천년에 한 번 온다고 하는 대지진 예고가 국민들을 더욱 불안하게 하고 있다. 일본 산업기술종합연구소의 지진고고학자인 산가와 아키라 연구원은 헤이안 시대의 죠간 지진, 관동 직하형 지진, 닌나 지진이 모두 9세기에 발생했는데 그 유형이 한신 대지진 이후 발생한 지진의 상황과 유사하다며 “1천년에 한 번 있는 대지진의 세기가 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태양광발전 등 대책 내놓지만 실효성 없어

원전 가동을 중지하라고 주장하는 목소리만큼이나 이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당장 가동을 중지할 경우 대체 전력에 관한 대책은 있는 것일까? 노다 정부는 원전을 점검한 후 안정성이 확보되면 재가동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일단 중단된 원전을 재가동하는 것이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한 사례로 후쿠이 현의 오오이 원전 3·4호기는 안전 점검을 마치고 재가동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에다노 유기오 경제산업성 장관은 처음에는 “현 시점에서 반대이다”라고 했다가 원전 반대파들의 강한 반발에 못 이겨 하루 만에 “어제의 시점에서 정밀하게 살펴보지 못했다”라고 한 발짝 물러섰다. 후쿠이 현의 니시가와 지사도 “원전 의존을 제로로 하겠다”라고 했다가 다시 “계속해서 중요한 전원으로서 활용한다”라고 번복했다. 정부, 여야 그리고 해당 지역 자치단체장의 입장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마이니치 신문이 지난 5월5~6일 오오이 원전 재가동에 대해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대가 63%이고 찬성이 31%에 불과했다. 무엇보다도 정부 정책에 대해 77%가 신뢰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큰 문제이다. 원전 가동에 반대하고 있는 오사카 시의 하시모토 시장도 조세 혜택을 주자는 정도 외에는 눈에 띄는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묘책 아닌 묘책이라고 하면 지난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처럼 기업과 가정에서 절전 캠페인을 하는 정도이다. 정부 정책을 믿을 수 없는 국민들이 자체적인 자구책을 강구하고 나섰다. 각종 절전 제품을 구입하기 시작하고 있다. 최근 한 절전 상품 양판점에 나타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휴대하며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솔라 LED 열쇠였다. 그 다음으로 스마트 휴대용 선풍기, 차가운 컵 등이다.

근본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 속에서 최근 메가솔라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태양광발전소를 설치해 원전의 전력을 대체하자는 프로젝트이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 앞장섰다. 손정의 회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의 치명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며 사재 10억 엔(1천4백억원)으로 자연에너지 재단을 만들었다. 당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동일본 지역에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동일본 솔라벨트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 프로젝트의 연장선에서 20메가와트급 태양광발전소를 전국 10개 지역에 건설하는 ‘메가솔라’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여서 성과를 내기에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원전 가동 중지에 따른 구체적인 대책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런데 태양광발전 사업이 좋은 대책임에도 발전 단가가 높아 걱정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높은 가격으로 사들인 부담 부분이 결국 전기요금을 상승시켜 기업과 국민에게 돌아가리라는 이유 때문이다. 

원전 재가동을 둘러싸고 찬반 의견이 분분하다. 원자력공학의 대가인 홋카이도 대학의 나라바야시 다다시 교수는 “우크라이나는 옛 소련 시절 체르노빌 사고로 1990년에 12개의 원전을 중지시켰다. 그 결과 전력 부족이 만성화되어 계획 정전을 실시하고 정전이 자주 일어나 경제가 침체되어 결국 1993년에 원전을 재가동하게 되었다. 원전 가동 중지로 결국 경제가 몰락했다”라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에서 대지진이 언제 일어날지 정확하게 모르지만 일어날 확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원전 가동 반대보다 더 심각한 점은 국민들이 정부의 원전 정책과 정보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전 정책에서 신뢰만큼 중요한 정책은 없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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