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미래 앞에 둔 ‘세 번째 귀환’
  • 조홍래│편집위원 ()
  • 승인 2012.05.12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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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러시아 대통령 자리에 다시 올라…부정 선거 의혹 등 제기하는 반정 시위에 강경 진압 ‘악순환’

지난 5월7일 러시아 모스크바의 크렘린 궁에서 블라디미르 푸틴(가운데 왼쪽)이 그의 세 번째 대통령 취임식을 치르고 있다. ⓒ AP연합

블라디미르 푸틴이 5월7일 러시아 대통령에 취임했다. 세 번째 대통령 취임이다. 그는 오른손을 헌법에 올려놓고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존중하며 보호하겠다”라고 서약했다. 러시아 국민들이 감동할 만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감동은커녕 푸틴이 국민의 권리를 유린했다고 비난했다. 취임식이 열리는 크렘린 궁으로 가는 연도에 운집한 반(反)푸틴 시위대는, 푸틴을 표를 훔친 ‘도둑’이라고 몰아세우며 ‘푸틴 없는 러시아’를 외쳐댔다. 취임식 전날인 6일부터 시작된 반푸틴 시위는 수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9일까지 연 4일째 계속되고 있다. 야당 인사를 포함해 수백 명이 체포되었다.

푸틴은 2000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번 역임하고 총리로 내려앉았다가 4년 만에 대통령 자리로 돌아왔다. 그가 6년 임기의 대통령을 두 번 더 하면  2024년까지 총 24년간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그래서인지 21세기의 차르(Czar)가 나타났다고 조롱하는 소리가 들린다. 차르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황제이다. 취임식은 옛날 황제들의 대관식이 열리던 크렘린 궁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금으로 장식된 식장은 우아하고 찬란했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거기에는 차르에 대한 존경도, 존엄도, 권위도 없었다. 조롱과 야유 그리고 푸틴의 앞날을 어둡게 하는 흉조가 넘실댔다.

국민들,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와 비교하기도

푸틴이 4년 만에 돌아온 대통령 자리는 옛날의 그 자리가 아니었다. 지지도는 추락했고 국민은 단호해졌다. 푸틴이 옛 소련 해체 이후 거의 파탄된 러시아 경제를 회복하고 정국을 안정시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는 퇴색하고 인권은 유린되었다. 국민은 푸틴에게 지친 모습이다. 안정도 좋고 경제 성장도 필요하지만 민주주의와 개혁을 먼저 하라고 요구한다. 푸틴은 무자비한 탄압으로 반정 소요를 진압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시위는 그럭저럭 진정되고 3월에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었다. 바로 이 선거가 푸틴 치세의 종언을 예고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이 선거에서 조직적인 부정이 있었다는 것이 야당의 주장이다. 국제 참관단도 이에 동의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러시아 전문가 블라디미르 파추코프 교수는 푸틴으로서는 강경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그 다음 날 1만2천개의 칼이 그의 목을 노리는 사태가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푸틴의 명운이 경각에 달렸다는 말이다. 푸틴은 2000년부터 러시아를 지배했다. 지난 4년간은 총리를 맡았다. 이 기간 중 러시아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강력한 통치의 필요성을 적당히 조화시키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부유해진 소수의 중산층이 봉기했다. 이들은 부정으로 얼룩진 12월의 의회 선거에 분통을 터뜨리며 더 이상의 타협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섰다. 푸틴이 통치의 기본으로 삼았던 ‘수직형 권력’ 구조, 즉 크렘린의 명령이 시골 구석까지 일사불란하게 하달되는 질서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푸틴은 64%의 지지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푸틴 대통령의 적법성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었다. 수시로 일어나는 반정 시위와 이를 분쇄하는 강경 진압의 악순환 속에서 국민들은 민주주의적 개혁에 대한 희망을 포기했다. 국민은 좌절하고 푸틴은 독해졌다. 푸틴 대통령의 6년 임기 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예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확실성이 너무 많다.

푸틴은 충성을 얻기 위해 군부의 고질적 부패를 묵인하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상대가 누구이든, 어떤 기관이든 자신에게 충성을 하는 한 푸틴은 그 상대를 포용했다. 드디어 권력 내부에서 마찰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강경파는 철권 통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개혁파는 점진적인 개혁을 주문한다. 푸틴은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졌다. 정보와 군수 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강경파와 대립하면 반푸틴 쿠데타가 일어날까 두렵고, 반정 소요를 진압하지 않으면 민중 봉기가 날까 겁이 난다. 결국 푸틴이 기댈 곳은 권력과 총을 가진 정보기관 및 군부 세력뿐이다. 올해 초 공명 선거를 관철하기 위해 결성된 유권자연대의 창설자 드미트리 오레슈킨은 설사 푸틴이 그런 세력의 지지를 확보한다 하더라도 옛 소련 시절 스탈린의 권위를 갖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5년 전보다는 더 강경해졌다. 

지난 5월4일 모스크바에서 1천여 ㎞ 떨어진 시골 도시에서는 모스크바행 열차를 타려던 10여 명의 반정부 인사들이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이들은 일요일인 5월6일에 예정된 모스크바 시위에 참석하려던 참이었다. 그 외의 지방에서도 모스크바행 열차 승객들은 경찰의 철저한 검문을 받고 선택적으로 여행을 저지당했다. 반정부 단체의 지도자 보리스 마카렝코는 “크렘린으로 돌아온 푸틴은 4년 전 그곳을 떠날 때의 푸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천도 변하고 푸틴도 변했다는 말이다. 푸틴이 대통령직을 떠날 때는 경제도 잘 돌아가고 번영에 대한 기대도 높아 인기가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세계 경제의 침체로 경제는 어둡고 국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소련 비밀경찰 KGB 출신인 푸틴은 만사를 KGB식으로 하고 싶으나 더 이상 영이 서지 않는다.

올가을 지방선거에서 ‘완패’할 가능성 커

지난 5월7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푸틴의 대통령 취임 직전 시위를 벌이던 시민을 경찰이 붙잡아가고 있다. ⓒ AP연합
러시아 국민들은 푸틴을 옛 소련의 마지막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와 비교하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제국을 붕괴시키고 조국을 가난과 굴욕 속에 빠뜨린 실패한 지도자의 상징으로 지탄받는 정치인이다. 그 고르바초프가 이제 와서 반면교사로 등장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고르바초프는 25년 전 이른바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을 폈다. 그가 의도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변경이 아니라 강화였다. 그러나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는 바람에 개혁은 소련의 해체를 초래했다. 모스크바 소재 국가전략연구소의 스탄리슬라브 벨코프스키 소장은 러시아가 ‘페레스트로이카 2’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카네기평화지원재단의 소련 전문가 릴리야 세프초바의 분석이 이채롭다. 러시아 지도자들은 통제를 완화하면 권력을 잃고, 탄압을 강화하면 저항에 직면하는 처지에 놓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일본식 자살 의식인 하라키리(할복)를 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먼저 이와 유사한 딜레마를 경험한 고르바초프를 연상한다는 것이다.

푸틴이 국민의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개혁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잘못하면 고르바초프 꼴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쉽게 결단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권력은 저절로 소멸한다. 러시아 정부는 부패와 무능에도 고유가 덕분에 명맥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서 반푸틴 정서는 확산되고 있다. 푸틴은 고유가만 지속되면 모든 것이 해결되리라고 확신하고 있다. 또 하나의 정치적 고비가 푸틴을 기다리고 있다. 올가을로 예정된 시장 및 지방의회 선거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푸틴의 여당은 완패할 위험이 크다. 경우에 따라서는 선거 자체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국민과 사생결단을 하는 마지막 도박이다.

이른바 수직형 권력 구조에 의존한 러시아 혁명은 70년을 견뎠다. 유사한 권력 체계에 입각한 푸틴 시대가 얼마나 지탱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실현 가능성은 없으나 하나의 대안은 푸틴에 비해 합리적이고 개혁 마인드가 강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을 표면에 내세우고 푸틴은 뒤에서 섭정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안을 시험할 기회는 이미 사라졌다. 분명한 점은 푸틴의 치세에 일대 변화가 오는 것은 확실한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오는가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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