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소외’와도 싸우며 대안 찾는 ‘캠퍼스 투사’들
  • 이규대 기자·이하늬 인턴기자 ()
  • 승인 2012.05.2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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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폭력 사태로 대학 내 운동권에 대한 관심 높아져 / 학술운동·퍼포먼스 등 새로운 방식 고민하는 ‘신운동권’도 눈길
1986년 4월30일 민민투 결성식을 마친 중앙대 학생들이 교문을 나서며 대치하고 있던 경찰들에게 화염병과 돌을 던지고 있다. ⓒ 연합뉴스


“1%. 대학에서 우리에게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이 그 정도 수치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면 인식할수록 더 힘들다. 절망적이고 참담하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중요하다. 포기해버리면 0%이니까.”

2012년 5월, 한 운동권 대학생의 자조 섞인 목소리이다.

지난 5월12일 통합진보당의 운영위원회 폭력 사태 때 운동권에 몸담고 있는 대학생들이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 학생운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NL(민족해방)이니, PD(민중민주)니 하는 과거 1980년대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시절에 거론되던 운동권 용어가 다시 언론에 등장했다.

1980~90년대에는 그야말로 깃발 아래에 수만 명의 대오가 모였다. ‘정파’의 세례를 받았고 단호한 결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학생운동 위기론 역시 뒤따랐다. 학생운동의 담론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해마다 제기되었다. 몰정세적이고 몰유행적인 학생운동은 점점 대학 사회에서 변방으로 밀려났다.
2012년, 대학을 둘러싼 환경은 변했다. 학부제는 전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올랐으며 취업은 전쟁이다. 대학이 시장만능주의로 변했다는 개탄이 흘러나온 지도 꽤 되었다. 이런 흐름에서 학생운동의 쇠퇴는 필연이었다.

오늘도 캠퍼스에는 여전히 깃발이 휘날린다. 하지만 깃발은 더는 대학 문화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비주류’이자 ‘아웃사이더’이다. ‘운동권’이라는 표찰은 고리타분하고 자기 논리를 고집한다는 이미지로 비치기 십상이다.

숭실대 행정학과에 다니는 이주영씨(25)는 숭실대 학생회관에 대자보를 붙였다. ‘나는 왜 5·18 광주에 가려고 하는가’라는 제목이었다. 이 대자보에서 이씨는 ‘숭실대 학생 사회는 그날의 광주를 지금과 상관없는 케케묵은 과거로 여기는지 당연한 듯 침묵한다. 숭실인으로서 부끄럽고 가슴이 답답하다’라고 말했다. ‘함께 광주에 가자’라는 제안이었다. 함께 가기 위해 전화번호까지 대자보에 남겼다.

2009년 대학에 입학한 이씨가 ‘운동’이라고 말할 만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때는 지난해부터다. 지금은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활동을 하고 있다. 운동에 뛰어든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선배들의 설득이 가장 크다. “2011년은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쌓여온 모순이 터지는 시기가 온다. 이때 활동을 해야 한다”라는 한 운동권 선배의 권유에 ‘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제 이씨가 운동권에 뛰어든 지 햇수로 2년째가 되었다. 주위 친구나 선배들은 2년째에 많이들 이 바닥을 떠나갔다. 학생운동의 ‘선도 투쟁’은 이제 옛말이다. 앞장서서 구호를 외치고 움직여도 학우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결국은 “대중과의 괴리감을 느낀다”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고립’, 그는 “이것을 견디지 못하면 그만두게 되고, 스스로 활동을 돌아보고 평가한 후 극복하면 계속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중간에 운동을 그만두고 떠나간 친구들 가운데는 자신들의 치열했던 시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다. ‘몸 대주기’ 투쟁이었다고 평가했다. “부속품처럼 이용당했다”라는 것이다. 이씨는 운동을 그만둘 생각은 없다. 다만 이어가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고민 중이다.

정파적 구분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앙대 안성원씨(24)는 NL이다. 한대련에 소속되어 있다. 한대련이라고 하면 세력화된 조직의 운동 방식이 떠오른다. 안씨는 “한대련 자체는 큰 단체이지만, 지금 학교에서 한대련 활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이 있으면 공개 토론 같은 행사를 준비하지만 평소에는 과 학생회나 소모임, 동아리 위주로 활동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5월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소공로에서 열린 청소년 단체 총파업 집회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과잉된 정치 운동에 부정적 평가 많아”

안씨는 학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명인이다. 커뮤니티에 ‘안성원’ 이름 석자를 넣고 검색해보면 ‘안성원 자보 찢기’ ‘원탁회의 반대’ ‘징계’ 등의 게시물이 검색된다. 안씨는 지난해 11월 중앙대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원탁회의를 열었다. 원탁회의 당일, 구조조정에 찬성하는 학생들이 원탁회의장에 몰려와 대자보를 찢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욕도 많이 먹었다. “실명이 거론된다. 북한으로 가라고도 했다. 학교 그만두고, 운동 그만두고, 돈 벌려고 했다.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면 내 욕을 하는 것 같아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선배는 후배를 보고 힘을 얻는다고 했다. 안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나를 옳은 일을 하는 선배라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있으니까 결국은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스스로가 고루한 운동권이라고 평가한다. 집회에 하늘하늘한 치마를 입고 나와서 힐을 벗고 뛰는 또래들을 보며 놀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 그도 새로운 운동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화 소모임, 연극 소모임을 하고 있다. 운동 방식을 바꾸었다. “대학 공동체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같이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꼭 집회가 아니더라도 내가 있는 공간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공동체적으로 하는 것이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학교를 다니는 곽동건씨 역시 새로운 운동을 모색 중이다. 그는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는 ‘자유인문캠프’(자캠) 기획단 일을 하고 있다. 자캠은 대학가에 만연한 ‘자기 계발 담론’에 저항한다. 대신 ‘자기-교육’을 모토로 학생들이 직접 방학 때마다 인문학 강좌를 개설한다.

‘새로운 주체’ 내세운 청년 세대 운동도 

대학 내 운동권에서 붙인 대자보가 취업 정보나 문화제 포스터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있다. 현재 학생운동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 시사저널 이종현
곽씨는 군 제대 후 재단이 대기업으로 바뀌면서 달라진 캠퍼스와 활력을 잃어가는 학생사회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건강하지 못한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트위터에서 학내에 재미있는 일이 기획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멘션’을 보내 기획단이 되었다. 그는 진보신당 당원이다. 하지만 정당 운동보다는 학내 운동을 하기로 했다. “학교가 엉망인데 멀리 있는 것에 대해서만 말하는 것이 싫다”라는 이유에서다. 자캠 기획단에는 곽씨처럼 진보정당 당원도 있지만, 그냥 함께 책을 읽고 싶어서 참여하는 친구도 있다. 

자캠은 얼핏 보면 전통적인 의미의 ‘운동’은 아니다. 세력화된 투쟁은 더더욱 아니다. 자캠 기획단도 그런 부분을 알고 있다. 그가 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과거 학술 공동체에서 있었던 가치들을 복원하는 일이다. 고민은 운동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에 있다. 곽씨는 “낮은 수준의 요구이지만 계속해서 운영해갈 수 있는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대학에 만연한 자기 계발 담론에 저항하는 진지이다. 기존 운동권은 ‘자유 인문 캠프’를 급진적이지 않고, 실천력이 떨어진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어떻게 우리의 운동성을 지킬 것인가를 고민한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운동 방식은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을 뿐 대학 사회 구석구석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학생운동의 힘이 떨어지고 학생회나 동아리에 대한 정파 조직의 영향력도 약해지면서 학생 사회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전통적인 정파 운동에서 이탈하는 학생이 많아졌다. 정파 중심의 구(舊)운동권조차도 미시적 담론에 주목하거나 운동 방식을 바꾸는 등의 고민을 해야 했다. 동시에 새로운 신(新)운동권도 대학 운동의 한 축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신운동권은 정파의 세례를 받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운동을 찾으며 거대 담론보다는 미시 담론을 고민하는 이들이다.  

지난 4월14일 ‘대학생 사람연대’의 박정훈씨(26)는 ‘찍어줘도 개새끼라는 <나꼼수>와 386에게 작별을 고한다! 5월1일 대학생 총파업이다!’라는 성명서를 썼다. 성명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퍼져 순식간에 조회 수 2만을 훌쩍 넘겼다. 박씨는 “총선에서 못 되면 우리 탓, 잘 되면 자기(<나꼼수>와 386) 탓이라고 한다. 자신들의 맘에 안 들면 욕을 하고, 자신들의 맘에 들면 기특해한다. 이들의 이야기에 20대 주체는 없다. 이런 한계를 넘고자 성명서를 쓰고 새로운 주체의, 새로운 운동을 모색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주체’는 청년 세대이다. 박씨는 청년 세대는 신자유주의의 파도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힘겨운 세대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지난 노동절에 대학생 사람연대를 포함한 청년 3백여 명은 노동계의 집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명동에서 청년 세대가 주축이 된 행사를 진행했다. 그날 참가자들은 모두 “일하지 않는 자, 먹어라! 일하지 않는 자, 쉬어라! 일하지 않는 자, 놀아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주거도, 일자리도 불안한 청년 세대를 위로하는 구호였다.

이들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텐트를 쳤다. ‘텐트 설치’는 불안한 청년 세대를 보여주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운동이다. 대자보 같은 것보다는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박씨는 “대다수 사람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사회 문제, 구조 문제에 대해 알고 있다. 긴 글이 필요 없다. 거리로 나가서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지금 그 텐트에서 장기적으로 사는 청년들도 있다. 박씨는 그들을 ‘입주자’라고 표현했다.

구운동권도, 신운동권도 새로운 운동 방식을 고민한다. 이런 고민이 예전 학생운동의 힘을 복원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이제 대학생과 캠퍼스에서 볼 수 있는 힘은 거대하고 통일되고 강력하지 않다.
오히려 이들을 포괄하는 키워드는 ‘소수’이다. 이들은 고립과 싸운다. 개인 이익을 위해 하는 것도 아닌데 비난이 쏟아진다. 열심히 해도 이길 수 없다는 패배감이 학생운동가들에게서 나타난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들은 캠퍼스에 존재한다. 그리고 소박한 힘을 유지하기 위해 각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몇몇 정파로만 표상되던 과거를 뚫고 학생운동에도 새로운 꽃이 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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