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위에 얼룩진 수상한 돈의 그림자
  • 김지영·이규대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2.05.2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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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갤러리업계 1위로 평가되는 서미갤러리가 탈세 의혹에 휩싸였다.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대표는 최근 미래저축은행과 솔로몬저축은행 간 불법 교차 대출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는 인물이다. <시사저널>은, 국세청이 지난 2011년 말에 작성한 대외비 문건을 단독 입수해 탈세와 관련한 내용을 파악했다. 이 문건에는 ‘홍송원 대표가 자신의 장남인 박원재씨가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그림을 구입해주는 방식으로 변칙 증여를 하고 있다’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서미갤러리를 둘러싼 1천억원대 세금 탈루 의혹을 단독 취재했다.

서울 가회동에 있는 서미갤리리와 이 갤러리의 홍송원 대표. 문구는 국세청 문건 속 내용임. ⓒ 시사저널 박은숙·연합뉴스
갤러리(화랑)는 언론의 문화면을 채우는 주요 취재처이다. 그런데 잊을 만하면 언론 사회면에 ‘불쑥불쑥’ 등장하는 갤러리가 있다. 바로 국내 갤러리업계에서 외형상 1위로 평가되는 ‘서미갤러리’이다. 엄밀히 말하면 서미갤러리의 홍송원 대표이다.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과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 로비 그리고 오리온그룹 비자금 사건 등으로 홍대표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최근에는 미래저축은행과 솔로몬저축은행 간의 불법 교차 대출에 개입한 혐의까지 받고 있다. 갤러리 화랑주가 다른 것도 아닌 ‘돈 문제’로 검찰청사를 수시로 드나드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또 연출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홍대표의 서미갤러리는 거액의 탈세 의혹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사저널>은 국세청이 2011년 말 작성한, ‘서미갤러리의 탈세 의혹’과 관련된 대외비 문건을 단독 입수했다. A4용지 8장 분량이다. 이 문건에서 국세청은 홍대표의 △변칙 증여 △수입 금액 탈루 의혹 등을 강하게 제기했다. 문건에서는 ‘홍송원 대표는 자신의 장남인 박원재씨가 운영하는 ‘원앤제이(One&J)갤러리’에서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그림을 구입해주는 방식으로 변칙 증여를 하고 있으며, 서미갤러리에서 수입한 법인 그림을 사적으로 팔아 거액의 부당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분석했고 모두가 사실임을 알았다’라고 적시했다.

법인 그림 팔아 부당 이익 챙긴 의혹도

우선 국세청이 제기한 변칙 증여 의혹부터 들여다보자. 홍대표는 지난 2005년 8월19일 당시 29세였던 장남 박원재씨에게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신의 땅(129의 1번지)에 건물을 신축했다. 그곳에 ‘원앤제이갤러리’(가회동 130의 1번지)를 개설해주었다. 이후 홍대표는 ‘서미갤러리’와 ‘서미 앤(&) 투스’를 이용해 원앤제이의 그림을 시세보다 비싸게 구입해준 것으로 국세청은 파악했다. 문건은 ‘(홍대표가) 장남 회사를 5년 동안 매출 9백10억원, 2010년 당기순이익 60억원의 탄탄한 중견 기업으로 만들어준 사실이 있다. 매출 9백10억원 가운데 96.9%(8백82억원)는 서미갤러리와 서미 앤 투스와 거래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특히 2010년에는 서미갤러리가 원앤제이의 그림 4백50억원어치를 구입했는데, 당시 서미갤러리는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문건에서는 ‘2009년 7백60억원이었던 (서미갤러리의) 부채가, 2010년에는 1천5백60억원으로 두 배나 급증’했으며 ‘같은 해 원앤제이의 매출처는 오로지 ‘서미갤러리’ 한 곳이었다’라고 명시했다.

이처럼 서미갤러리가 어려운 처지였음에도 4백50억원어치의 그림을 구입해 줄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문건에서는 이에 대해 ‘원앤제이의 재고가 5백억원을 초과하고, 그러다 보니 그동안 자신(홍대표)이 지불해주던 연간 15억원대의 이자 비용을 회계상으로 더는 변칙 처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때 아들 회사의 그림을 시세보다 비싸게 구입해줌으로써 원앤제이는 2010년에 6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렸다’라고 분석했다.

국세청이 서미갤러리와 원앤제이의 부가율을 비교·분석한 결과 ‘이는 명백한 부당 행위이며, 63억원의 부당 행위 대상 가액을 산출할 수 있다’라는 판단을 내렸다. 홍대표가 장남에게 변칙 증여하면서 63억원을 탈루했다는 것이다. 

홍대표는 수입(輸入) 금액을 탈루한 의혹도 받고 있다. 국세청은 서미갤러리의 ‘VAT(부가세) 신고서’를 분석했고, 그 결과 ‘(2010년) 그림 판매에 따른 면세 수입 금액은 5천1백12억원이다. 그런데 계산서 수취액을 보면 매입은 그 두 배인 1조2천2백30억원이고, 기말 재고 역시 1천4백16억원에 불과하다. (따라서) 마진 없이 팔았다고 하더라도 5천7백2억원의 초과 매입이 발생했다’라고 밝혔다.

이런 기현상이 일어나는 까닭은 무엇일까. 문건에서는 ‘미술계 지인들을 탐문한 결과, 이구동성으로 홍송원이 홍라희(삼성 이건희 회장 부인·리움미술관장), 이명희(신세계 회장), 박현주(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 부인·대상홀딩스 부회장) 등 재벌가 사람들에게 법인 그림을 사적으로 팔아 차익을 남긴 후 이를 회사 재고에서 누락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라고 덧붙였다.

‘홍송원-홍라희’의 그림 거래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6월에는 홍대표가 홍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50억원의 물품 대금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홍대표는 소장에서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 사이 6개월 동안 홍라희 관장에게 판매한 14점의 미술품 가격은 총 7백81억8천만원이었는데, 5백31억8천만원을 받지 못했다. 홍관장을 상대로 잔금 중 50억원을 우선 청구했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홍관장은 “그림값은 2백50억원이었고, 이미 다 지급했다”라고 반박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지난해 11월 홍대표는 갑자기 소송을 취하했다. 거액의 변호사 비용까지 들었을 텐데, 왜 갑자기 소송을 취하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국세청이 분석한 ‘홍송원-홍라희 소송 배경’

서울 가회동 서미갤러리와 나란히 위치해 있는 원앤제이갤러리. ⓒ 시사저널 박은숙
국세청 문건에서는 홍송원-홍라희 소송 배경에 대해 ‘서미갤러리가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되면서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자 그 불똥이 자신에게 튈 것을 염려한 홍라희가 친자매처럼 지내던 홍송원을 버리고 거래선을 바꾸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마디로, 홍관장이 거래선을 바꾼 것에 대한 불만을 홍대표가 소송 제기로 표출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홍송원-홍라희’ 소송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일부 언론에서는 ‘홍대표와 홍관장의 총 거래액은 수천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라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문건은 ‘언론이 (총 거래액으로) 예상한 수천억 원은 단지 추정치일 뿐이고, (서미갤러리의) 장부에서 사라진 (앞서 언급한) 5천7백2억원을 매출로 환산해야 비로소 정확한 탈루 수입 금액을 산출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문건에서는 ‘미술계 지인들 얘기로는 ‘수입 그림은 통상 두 배의 마진을 남긴다’라고 하므로 서미갤러리의 추정 탈루 수입 금액을 매입 누락액의 두 배인 1조1천4백4억원으로 추정하고자 한다’라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서 ‘홍송원은 경매나 통관 절차상 필요에 의해 단지 명의만 빌렸을 뿐, 실은 홍라희 등 컬렉터들의 주문을 받아 위탁 판매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지만, 이는 법인은 과세되고, 개인은 비과세되는 현행법의 맹점을 악용하는 강변일 뿐이다. 수입과 관련한 모든 핸들링(조정)이 법인을 통해서 이루어졌으므로 매출 누락에 따른 법인세를 과세함이 타당하다’라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국세청은 문건에서 ‘①장남의 그림을 고가에 구입해준 데 따른 부당 행위 대상 가액 63억원과 ②서미갤러리의 수입 금액 탈루가 1조1천4백4억원이므로, 법인세 탈루 혐의 세액은 1천2백54억원’이라고 적시했다.

서미갤러리는 지난 2006년 2월22일부터 3월15일까지 부가세 세무조사를 받아 2백만원을, 2011년 2월22일부터 3월15일까지는 자료상 혐의로 조사를 받아 1천6백만원을 각각 추징당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런데 본지가 입수한 문건을 통해 무려 1천2백54억원에 달하는 법인세 탈루 혐의가 포착된 것이다. 다만 국세청이 이 문건을 토대로 실제로 서미갤러리에 대한 세무 조사를 지난해 말 이후 추가로 실시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 밖에 국세청은 홍대표의 증여세 포탈 의혹도 제기했다. 문건에 따르면, 2005년 영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당시 29세의 장남 박원재씨에게 ‘원앤제이’(그림만 수십억 원)를 차려준 후 이듬해에는 서울 성북동에 21억원 상당의 고급 주택을 구입해주었다. 또한 2008년 당시 29세이던 차남에게도 서울 성북동에 16억5천만원짜리 고급 빌라와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19억원 상당의 하이페리온을 구입해주었다. 하지만 증여세 신고 납부 실적이 없다.

문건은 특히 ‘홍송원은 미술품 거래, 비자금 조성 및 자금 차입의 원활한 조달을 위해 ‘파인아트 컬렉션’과 ‘서미 컬렉션’이라는 유한 회사를 설립했다. 그런데 이들 모두 페이퍼컴퍼니일 가능성이 농후하므로 필히 이들을 조사 대상에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단독 입수한 국세청의 대외비 문건.

서미갤러리측 “지금은 입장 표명 어렵다”

<시사저널>은 취재 과정에서 서미갤러리 및 원앤제이갤러리측의 입장을 듣기 위해 지난 4월부터 다섯 차례에 걸쳐 접촉했다. 홍송원 대표의 장남인 박원재 원앤제이 대표는 지난 4월 가진 기자와의 통화에서 “관련 의혹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좀 더 구체적인 답변을 듣기 위해 서미갤러리측 변호인에게도 질의서를 보냈다. 변호인은 “관련 의혹들이 객관적 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추측성 질의들로 보인다”라고 답했다.

<시사저널>은 5월23일 서미갤러리측에 다시 질문지를 보냈다. 변칙 증여 및 수입 금액 탈루 의혹 등 입수 문건에 담긴 상세한 정황을 설명하고, 이에 대한 입장을 요청했다. 당초 서미갤러리측은 기사 마감 직전인 5월24일 오전까지 문건 내용에 대한 해명 및 반박 자료를 보내오기로 했다. 그러나 당일 오전 “최근 저축은행과 관련해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언론 활동에 나선다는 인상을 심어주면 안 될 것 같다. 입장을 표명하기 어렵다“라고 알려왔다. 문건 내용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지금은 밝히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미술계 인사들이 말하는 ‘갤러리의 외화 밀반출’ 두 갈래 통로

1만 달러 이상을 아무런 신고 없이 해외로 반출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 행위이다. 이를 어기면 현행 외국환관리법에 의해 엄격히 처벌받는다.

그런데 미술계 인사들에 따르면, 미술품을 거래하는 과정에서 매우 손쉽게 외화를 밀반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갤러리가 마음만 먹으면 ‘식은 죽 먹기’라는 이야기이다. 만약 ㄱ갤러리가 재력가 ㄴ씨로부터 100만 달러 밀반출을 부탁받았다고 가정하자. 미술계 인사들이 말하는 밀반출 수법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그림을 수입하면서 외화를 밀반출하는 것이다. ㄱ갤러리가 미국에서 100만 달러짜리 그림을 수입하면서 미국 현지 갤러리와 짜고 2백만 달러 물품 매도 확약서(offer sheet)를 발행한다. 이것이 승인되면, ㄱ갤러리는 신용장을 개설해 2백만 달러를 송금한다. 그러면 ㄱ갤러리는 원래 그림값 100만 달러 및 수수료를 뺀 나머지 외화를 ㄴ씨에게 고스란히 전달할 수 있다. 정해진 가격이 없어 실거래가보다 몸집을 부풀리기 쉬운 미술품의 특성을 악용하는 것이다.

해외에서 벌어지는 경매를 통해서도 외화를 밀반출할 수 있다. ㄱ갤러리가 미국에서 열리는 미술품 경매에 자사가 소유한 그림을 올린다. 그리고 스스로 100만 달러에 낙찰을 받는다. 그림이 ㄱ갤러리 소유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다만 경매 과정을 한 번 거치면서, ㄱ갤러리가 국내에서 송금한 100만 달러는 외국환거래법의 제약에서 벗어난다. 그대로 해외로 흘러간 100만 달러는 수수료만 제외하고 고스란히 ㄴ씨의 손에 들어갈 수 있다. 그 대신 ㄴ씨는 ㄱ갤러리에 100만 달러에 상응하는 금액을 국내에서 지급하는 수법이다.

그동안 그림을 이용한 불법 비자금 조성, 변칙 증여 및 상속 등은 여러 차례 논란이 되어왔다. 그러나 이렇듯 그림을 이용한 외화 밀반출은 제대로 조명된 적이 거의 없었다. 현재 미술계 인사들은 이 문제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심각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미술계에서는 “외화가 필요하면 미술계에서 맹활약하는 ○○○씨에게 부탁하면 된다” “누구, 누구는 외화 밀반출의 ‘귀재’이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이다. 그만큼 미술계에서 외화 밀반출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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