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문재인 대세론’ 사그라지나
  • 이철희│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
  • 승인 2012.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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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배 탄 이해찬 전 총리, 전당대회에서 의외의 고전…당심은 ‘친노 프레임’ 탈피 원해

지난해 12월7일 열린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과의 회동에서 혁신과 통합 문재인·이해찬 상임대표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유장훈

예상 밖이다. 당 대표를 뽑는 지금 민주당의 전당대회 흥행은 언뜻 보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기현상이다. 총선에서 패배한 정당, 그것도 상대가 잘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잘 못해서 진 정당에게 대중적 관심이 쏠리기란 어렵다. 승리를 전망해볼 수 있는 변변한 대선 주자조차 하나 없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기에 ‘이해찬-박지원’ 담합 의혹까지 돌출했다. ‘나눠 먹기’와 ‘정체(停滯)’ 때문에 총선에서 졌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마당에 다시 ‘나눠 먹는 거래’가 이루어졌으니, 당원들조차 혀를 차는 지경이었다. 이런 판에 전대가 열렸다. 흥행이 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누가 보아도 무리였다.

그런데 흥행이 되었다. 흥행을 낳은 주 요인은 대선 주자들이 전대 게임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대선 정국에서 이루어지는 전대인 만큼 대선 주자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할 수는 없고, 이렇게 저렇게 영향력을 행사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사활을 걸고 개입하거나, 누구를 공공연하게 지지하는 것 역시 일종의 금기사항이다. 자칫 반대했던 인물이 당 대표가 될 경우 감내해야 할 위험도 적지 않고, 당 대표 선거를 대선 전초전으로 끌고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대선 주자들이 뛰어든 이유는 간단하다. ‘이해찬-박지원 연대’ 때문이다. 이 연대를 두고 ‘담합’이냐 ‘단합’이냐 하는 논란이 제기되었는데, 사실 핵심은 담합 여부가 아니었다. 이 연대가 문재인 상임고문을 당의 대선 후보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친노’ 진영의 좌장 역할을 해온 터이고, 문재인 고문은 친노 진영 대선 주자의 대표 격으로서의 위상을 누려왔다. 따라서 이 전 총리가 직접 당 대표 경선에 뛰어든 것부터가, 그렇지 않아도 당의 주류를 형성한 친노에서 당권을 장악해 본격적으로 ‘문재인 대통령 후보’ 만들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기대감 없었던 전당대회, 예상 밖 흥행몰이

6월1일 열린 민주통합당 인천시당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이해찬 전 총리가 연설하고 있다. ⓒ 뉴시스
타오르는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의심하던 차에 물증이 나왔다고 할까. 어쨌든 문재인 고문이 ‘이-박 연대’를 담합이 아니라 단합이라며 지원 사격하기 시작하자, 이 연대의 성격이 분명해졌다. 당 안팎에서 ‘문재인 후보 만들기 프로젝트’로 인식된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대선 주자들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대선에 개입해 이 프로젝트를 좌절시키는 것에 문고문을 제외한 다른 모든 대선 주자의 이해가 일치하게 되었다. 요컨대, 선두 주자인 문고문의 대세 형성을 막기 위해 나머지 대선 주자들이 ‘비노(非盧)’, ‘반(反)이해찬’ 진영에 적극 가담한 것이다.

당의 실세들인 대권 주자들이 뛰어들면서 판은 재미있어졌다. 대선과 무관하다면 자칫 밋밋하게 진행될 경선에 매우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생긴 셈이다. 대선 주자들 간의 힘겨루기가 그것이다. 이 때문에 지역별로 엎치락뒤치락하는 흥행 판세가 생겼다. 한 사람의 독주는 재미없다. 순위가 뒤바뀌는 숨 가쁜 드라마가 있어야 보는 재미가 있는 법이다. 대선 주자 간의 세(勢) 경쟁, 이것이 민주당 당 대표 경선 흥행의 키워드이다.

중반을 넘어선 민주당 전대에서 눈에 띄는 것은 변화에 대한 갈망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혁신을 외면하고 정체되어 있었다. 그래서 총선에서 민주당이 진 것이다. 이-박 연대는 이런 정체의 흐름을 계승하는 것이었다. 새 인물, 새로운 흐름이 아니라 익숙한 인물에 의한 안정적 카드라 할 수 있다. 이번 전대에서 이-박 연대가 예상과 달리 고전하는 것은 대의원들이 안정 노선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민주당의 당권 다툼은 이해찬 전 총리와 김한길 전 문화부 장관의 양강 다툼으로 압축되고 있다. 사실 두 사람 간에 차이는 거의 없다. 둘의 차이가 드러나는 대목은 경력상의 우열이나 능력의 우열이 아니라 상징과 방향이다. 이 전 총리가 강한 리더십이라는 명분하에 안정을 내세운다면, 김 전 장관은 친노 프레임 탈피라는 변화를 말한다. 이 전 총리가 본의와 상관없이 문재인 고문을 대선 후보로 선호하는 것으로 비친다면, 김 전 장관은 누구라도 통합 경선을 통해 본선에서 이길 수 있는 후보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두 유력 후보가 가지고 있는 세력 기반을 볼 때, 김한길 전 장관은 이해찬 전 총리에게 도전하는 것조차 버거워 보였다. 하지만 실제 게임에서는 처음부터 김 전 장관이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해 판을 주도하고 있다. 이 전 총리는 방어하고, 해명하기에 바쁘다. 김 전 장관이 강세인 것은 민주당 대의원들의 생각, 즉 당심(黨心)이 그가 내세우는 변화와 통합적 공정 경선을 열망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당내 경선만 놓고 보면 문재인 고문에게 이해찬 전 총리는 ‘늪’이다. 이 전 총리가 그려놓은 틀 속에서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민심을 모르고, 흐름을 놓치고 있는 인물로 각인되고 있다. 경선에서 보이는 당 저변의 정서는 변화와 ‘탈노무현’ 프레임인데 그것을 완강하게 고집하면 문고문의 하락세는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의 주변에서 “지금이라도 이-박 담합 논란에 의해 형성된 포위 구도를 허물어야 한다”라는 주문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최근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전 대표 사례가 말해주듯이, 정파나 계파의 관점이 아니라, 당의 관점, 또는 당의 관점을 넘어서서 국민의 시선에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안주하면 김두관에 뒤처질 수도

지금 여권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된 여망은 강력한 대권 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꺾을 사람이 나와 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안철수 원장이든 문재인 고문이든 김두관 지사이든 손학규 전 대표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누가 되었든 이길 수만 있으면 밀겠다는 것이다. 판단의 잣대가 ‘호불호’의 차원이 아니라 ‘유불리’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문고문은 좀 더 넓고 과감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유력한 대선 주자로 만들어준 힘이나 기반이 있다면 이제는 그것을 과감하게 털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문고문이 이른바 ‘PK(부산·경남) 대통령 대망론’에 안주하면 끊임없이 김두관 지사의 도전에 시달릴 것이다. 어쩌면 조만간 그에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것이 정치·여론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이해찬 전 총리가 지금의 열세를 극복하고 설령 전대에서 간신히 승리한다 하더라도 문고문에게는 남는 것이 별로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 전 총리가 이기는 길은 모바일 투표에서 압도적인 격차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대의원의 표로 나타난 당심, 여론조사에서 확인되는 민심은 이미 이 전 총리가 아니라는 흐름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 전 총리가 이긴다면 조직의 힘으로 일반 흐름을 꺾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런 승리는 문고문에게 득이 아니라 실이고, 독이 될 것이라는 얘기이다. 따라서 문재인 고문으로서는 이해찬 전 총리의 종속 변수가 아니라 독립 변수로서 훨훨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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