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상으로 돌아온 조현오의 무리수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2.06.12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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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 계좌’ 발언, 허위로 결론…몇 번 회생할 기회 놓치고 ‘몰락’ 자초

지난 5월9일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 계좌 발언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조현오 전 경찰청장(57)은 자신이 뽑은 칼날에 치명상을 입었다. 무심코 던진 말이 돌이킬 수 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2010년 3월 말 서울경찰청 기동대 특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 계좌’ 발언을 했다. 그해 8월 유족과 노무현재단이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고소·고발하면서 법적 심판대에도 섰다. 이때부터 그는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칼날 위에 올랐다. 노무현재단도 마찬가지였다. 차명 계좌의 존재 여부에 따라 조 전 청장이 매장되거나 노무현재단이 해체되는 기로에 설 수도 있었다. 양측의 물러날 수 없는 ‘명예 싸움’이 시작된 이유이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끝날 싸움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당장 조사하라”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눈에 띄는 수사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조 전 청장은 지난해 4월 검찰에 1차로 진술서를 제출하고 6월에 서면 조사를 받았을 뿐이다. 소환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1년9개월이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이 현직에서 물러나자 곧바로 칼을 뺐다. 5월9일에 1차로 소환해 조사를 벌였고, 6월5일에는 2차 조사를 했다. 결과는 “차명 계좌는 없다”였다. 조 전 청장의 차명 계좌 발언은 허위였다는 결론이 났다. 검찰은 조 전 청장을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다. 조 전 청장은 도덕·윤리적인 치명타를 피할 수 없게 생겼다.

향후 행보도 험난하다. 재판에서 유죄가 나올 경우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죽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양측의 승부는 끝이 났다. 조현오는 죽고, 노무현재단은 살았다.

더불어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몰락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 차명 계좌 발언을 할 당시만 해도 이런 상황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결과적으로 말 한마디에 인생의 발목을 잡힌 셈이다. 이런 상황은 조현오 전 청장이 자초했다는 시각이 많다. 

그동안 조 전 청장에게는 화를 면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처신으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면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속앓이를 해온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의 한 간부는 “내가 알기로 조 전 청장은 ‘차명 계좌’와 관련해 참모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다. 지근거리에 있던 사람들도 정말 있는지 없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도 청장이 있다고 했으니 ‘뭐가 있기는 있을 것이다’라고 짐작했을 뿐이다”라고 전했다.

증거는 없이 ‘말’만 믿고 임기 내내 속앓이

지난 5월10일 문성근 민주통합당 전 대표 대행과 노무현재단 관계자 등이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조현오 전 청장에 대한 엄중 수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 전 청장의 심리는 그가 한 발언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유족에게 사과한다” “(발언을) 후회한다”라고 몇 번에 걸쳐서 말했다. 그러면서 차명 계좌의 존재에 대해서는 “있다”라고 확신했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유족과 노무현재단측의 분노를 사게 했다. 조 전 청장은 5월9일 1차 소환 조사를 받기 전에도 “검찰 조사에서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 당시 기자와 통화한 한 경찰 정보통은 “(조 전 청장이) ‘모두 까겠다’라고 했으니 내일 둘 중 하나는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 전 청장은 차명 계좌와 관련해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이때부터 기자들 사이에서도 “차명 계좌는 없다”라는 말이 돌았다. 조 전 청장이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은 지인의 말뿐이었다. 그는 한 지인에게 “2009년 3월부터 시작된 수사 당시 검찰에서 이상한 돈의 흐름인 10만원짜리 수표 약 20장을 발견했다. 그것을 단서로 계좌 추적해서 압수영장을 신청했고, 열흘 정도 계좌 추적을 해 상당 부분 밝혀졌다. 권양숙 여사가 청와대 제2부속실 직원에게 ‘시장을 봐오라’며 생활비로 10만원권 수표 20장을 건넸고, 당시 직원이 신용카드로 구입하는 대신 자신의 계좌에 수표를 입금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조 전 청장은 이 말을 사실로 믿고 기동대 특강에서 옮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입증할 만한 아무런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검찰 조사에서도 지인에게 들었던 말을 번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서초경찰서 경찰관들은 검찰청사에서 조 전 청장을 과잉 경호하다 물의를 빚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전직 총수를 어떻게 하라고 우리가 말한 적은 없다”라고 말했다. 서초경찰서장에게 묻기 위해 전화를 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메모를 남겼으나 답변이 없었다. 조 전 청장이 탄 차량은 검찰 청사를 나오면서 방송국 여기자의 발을 깔고 지나갔으나 아무런 응급조치도 하지 않았다. ‘뺑소니 혐의’까지 받고 있다.

조현오 전 청장은 경찰 조직에도 큰 생채기를 냈다. 조 전 청장은 자신의 임기 내내 검찰과 ‘수사권 조정’을 두고 마찰을 빚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검찰에 의해 기소될 운명에 처했다. 경찰의 ‘수사권 조정’ 주장이 맥이 빠질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한 그는 임기 중에 지나친 성과주의로 인해 조직 내부로부터 반발을 샀다. 경찰 내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내부 통신망 등에 쓴소리를 한 경찰관들을 무더기로 파면하거나 징계했다. 그로 인해 경찰관들의 언로가 꽉 막혔었다. 그런 그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수원 토막 살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현오 전 청장의 전임자였던 강희락 전 청장도 함바집 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었다. 조 전 청장이 기소되면 전직 경찰청장 두 명이 잇달아 ‘범죄자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경찰 조직에게는 크나큰 비운이다. 때문에 조 전 청장을 보는 현직 경찰관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일선 경찰서 지구대의 한 경찰관은 “조현오씨는 공과 사가 분명하다. 경찰 조직을 청렴하게 만들려고 노력한 것은 공에 속한다. 하지만 민생 치안을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참모들을 통해 인의 장막을 쳤다. 내부 소통을 틀어막고 조직을 독선적으로 운영했다. 결국 경찰 조직을 후퇴시켰다”라고 비판했다. 

‘불명예’ 퇴임한 경찰청장, 청소년 폭력 예방에는 ‘명예’롭게 뛸까

조현오 전 경찰청장의 공식 직함은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고문이다. 조 전 청장은 현직에서 물러난 후인 5월2일 이 단체의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청예단은 지난 1995년 6월에 설립된 비영리 단체(NGO)이다. 명예이사장인 김종기씨가 사재를 털어 세웠다. 여기에는 아픔이 있다. 김명예이사장의 외아들은 학교 폭력을 견디다 못해 16세의 나이에 자살했다. 그는 이런 아들을 기리고 학교 폭력을 막기 위해 온몸을 바쳤다. 청예단은 ‘사회적 약자와 고통받는 아이들의 인권 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조현오 전 청장이 이 단체의 고문을 맡을 자격이 있는가 하는 논란이 일 소지가 있다. 조 전 청장 재임 시절에 학교 폭력이 극성을 부렸다. 대구를 포함한 전국 곳곳에서 학생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또 경찰의 잘못된 대처로 인해 20대 여성이 살해되었고, 그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여기에다 전직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될 운명에 처했다는 것 등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옥식 청예단 사무총장은 “학교 폭력은 오래전부터 계속되고 있다. 조현오 전 청장은 역대 청장과는 달리 재임 시절에 학교 폭력에 많은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우리는 이것을 진정성 있게 보았다. 퇴임 후에 찾아와서 ‘재단에서 봉사할 것이 없겠느냐’라고 묻기에 이사회를 거쳐 고문으로 위촉한 것이다. 우리는 학교 폭력 예방에 대한 그분의 의지와 진정성만 보았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좀 더 지켜보고 (거취 문제를) 결정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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