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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년 후 남자’가 노인으로 살아가는 법

지난 삶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며 남과 비교하지 말고 집착 버려야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ㅣ 승인 2012.06.16(Sat) 23:3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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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papa@naver.com

남자의 노후에 필요한 다섯 가지는? ‘1. 마누라 2. 부인 3. 와이프 4. 아이 엄마 5. 안사람’이란다. 반면에 여자의 노후를 위해 필요한 다섯 가지는? ‘1. 돈 2. 머니 3. 연금 4. 오까네(‘돈’의 일본어) 5. 비상금’이라고 한다. 어이없는 얘기라고 할지 모르겠으나, 은퇴 후를 걱정하는 여자와 남자의 차이와 불안을 읽을 수 있다. 직장이 있을 때는 오로지 바깥일에만 집중하던 남자들의 경우 정년 후에는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다. 아내는 그런 남편이 마뜩찮다. 세 끼 밥치레에 쓸데없는 잔소리와 간섭이 싫은 것이다. 일본에서도 은퇴 후 남편의 신세를 ‘젖은 낙엽’이라고 표현한다. 남자들은 늙을 때까지 아내가 수발해주기를 원하는 반면, 빨리 서구화된 아내들은 그런 역할에 반기를 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반면에 아내들은 가정에 대한 책임보다는 이제는 자신들의 인생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집에서 살림만 하던 대다수 여성에게는 자신들이 기대하는 만큼 편안한 환경에서 돈을 벌 수 있는 확률은 높지 않다. 수십 년 동안 사회와 동떨어져 오로지 살림만 했으니, 눈만 높고 돈은 벌리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은퇴 후에는 남성과 여성 모두 생활비는 더 들고 남의 도움은 점점 더 받게 된다. 의료비, 품위 유지비, 경조사 등 자신의 용돈을 아무리 아껴도 꼭 써야 되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은퇴 후에 가장 원하는 것은 품위 있게 늙어서 자존감을 지키며 누군가의 수발을 받지 않으면서 사는 노년일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녀들을 잘 키우면 노후가 자동적으로 보장된다고 믿고, 아프면 당연히 자녀들이 수발해주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노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 베이비부머는 일찌감치 그렇지 않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자녀·배우자에 매달리는 퇴행 현상 겪을 수 있어

한국 보건사회연구원이 6월11일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세대 부모의 93.2%가 노후에 자녀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고 한다. 자녀들과 함께 살아보아야 얻을 것보다는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계산이다. 노부모와 자녀들에 대한 의무로 살아왔던 베이비부머들의 효도 사상과 가족에 대한 피로감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서른을 넘어 마흔을 바라보아도 자립할 생각을 않거나 못하는 자녀들에게 사실상 무언가를 기대하다가는 서로 상처만 입고 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고 연금 등을 사회가 보장을 해주는 것도 아니라, 베이비부머들은 70~80대까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당연히 불안하다. 지난해에 필자가 낸 졸저 <오십후애사전>이라는 책에도 그런 상황에 대해 정신과 의사로서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 있다.

그렇다면 과연 나름으로 당당하고 행복한 노년을 맞을 구체적인 지침은 무엇일까. 임상에서 보면 우선 극심한 경쟁과 엄청난 변화 속에서 생존하느라 동분서주했던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인정하고 자부심을 잃지 않는 태도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일을 그만두게 되면, 수십 년 동안 몸담고 노력했던 직장이 마치 자신을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갑자기 인생 전체가 무의미하고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느낌에 빠질 수 있다. 나름으로 희생하고 노력했건만, 물질에 대한 기대치만 높은 가족들이 그동안 뭐했느냐는 식으로 비난을 해서 상처를 받는 가장들도 적지 않다. 이럴 때, 남과 비교하면서 열심히 앞만 보며 살아왔던 과거의 습관은 정말 해롭다고 말해 주고 싶다. 불필요한 열등감에 불만 붙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두 번째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고 조언하고 싶다. 가장들이 정년 후 마음 붙일 데가 없어 때로는 외도를 하거나, 오히려 아내에게 철저히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또, 열심히 뒷바라지를 하고 희생했건만 전혀 알아주지 않는 배우자와 자녀에게 큰 분노를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자녀나 배우자의 인생에 지나치게 개입하고 간섭할 수가 있다. 이런 마음을 들여다보면, 나와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별하지 못하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매달리고 있는 퇴행 현상을 오히려 관찰할 수 있다. “가족이 어떻게 타인이냐?”라고 하면서 가족 구성원에 대해 일일이 참견하고 나서는 것은 거꾸로 보자면 자기 자신의 생활이 텅 비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수록 나만의 삶을 가꾸지 않으면서 잔소리만 많고 별것도 아닌 일에 참견하는 귀찮은 노인네가 된다면 모두에게 외면당할 가능성만 다분해진다.

자신의 노화·결핍·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지녀야

다음으로 나이가 들었으니 이제는 좀 대접받으면서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려야 노년이 오히려 편해질 수 있다. 예전, 노인의 숫자가 워낙 드물고 무언가 전수해줄 지혜와 재산도 있던 농경 사회에서는 고령이라는 자체가 힘이자 재산일 수 있었다. 그러나 노령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노인들의 사회’로 접어들면서 ‘나이 듦’의 희소성이나 물질적 가치는 절대 크지 않다. 빠르게 변화하는 첨단 기술 사회에서 나이 든 사람들이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기여하겠는가. 물론 모든 것을 경제적 논리로 판단하는 자체가 바람직한 태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경제적 기여도가 없는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정신적인 힘을 갖추는 것은 또 그리 쉬운가. 젊은이들은 별로 존경할 만한 부분도 없는 미숙한 노인들이 싫을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고 젊은이들에게만 고리타분한 윤리를 강요하는 노인들을 경멸하는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마지막으로 베이비부머들의 건강한 노후를 방해하는 태도는 ‘건강하고 젊은 자아’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프지도 늙지도 않겠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오히려 더 아프고 더 늙을 수 있다는 것은 역설 같지만 사실이다. 모든 생명체에게 나고 병들어 죽는 것은 순리이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되어도 늙거나 병들거나 다치지 않고 죽는 인간은 없다. 이를 거스를 때 오히려 많은 병이 찾아오고, 삶의 질이 떨어진다.

성형수술, 피부 관리, 태반 주사 등등으로 젊음을 유지하느라 고달프고 고민이 많아진 노인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불로초를 찾겠다는 진시황이나, 유전자 조작이나 장기 이식 등을 통해 영원히 늙지 않겠다는 21세기의 한국인이나,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려고 한다는 점에서 똑같다. 물론 건강하게 살기 위해 자기 관리를 하는 것은 몸을 가진 사람의 의무이다. 그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은 내팽개치고 어설프게 젊은이들 흉내를 내는 태도는 건강에 해만 끼친다. 늙어가는 자신에 대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왜 나만 아파야 하느냐, 왜 나만 늙어야 하느냐 하고 따지는 대신, 내가 현재 겪는 아픔과 노화와 또 궁극적으로는 만나야 할 죽음의 순간이 현재의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지 잘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만 아프지 않아야 하고, 나만 늙지 말아야 하고, 나만 꼭 행복해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은 세 살배기 아이의 마음일 뿐이다. 자신의 노화와 결핍과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지닐 때만이, 칼 융이 말하는 ‘노현자(Old wise man)’의 원형을 만날 수 있다.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서빙하는 ‘삼가연정’이라는 카페가 있다고 한다. 평범한 노인들의 작은 실천이지만, 큰 울림을 주는 좋은 소식이다. 우울한 소식도 있다. 홈플러스나 롯데쇼핑 같은 곳에서 불황 때문에 실버 채용을 줄인다는 것이다. 정년 후에도 여전히 왕성하게 일하고 싶어 하는 베이비부머들은 죽을 때까지 경쟁 속에서 쉬지 않고 발버둥쳐야 하는 운명을 지닌 채 태어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봉사’와 ‘베풂’을 실천하고 싶어도 그 길이 자꾸 막힌다면, 구체적으로 과연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제도를 정비하고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꼭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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