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자기 거짓말에 자기가 속아 넘어갈까
  •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 승인 2012.06.24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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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상상과 실제 잘 구분 못해…시간 지난 뒤 뇌가 오판하기도

ⓒ honeypapa@naver.com

“허약한 사람들에 의한, 허약한 사람들을 위한 헬스트레이너, ‘간꽁치’입니다. 우리같이 허약한 사람들, 쭈그려앉아서 발톱 깎다가 갑자기 튄 발톱에 귓방망이 맞고 기절하신 경험, 이거 한 번씩들 있으시죠? 저는 아직도 얼얼합니다. 세상이 이렇게 위험합니다. 운동으로 몸을 보호해야 합니다. 저는 어떻게 했냐고요? 지금부터 그 비법을 공개합니다.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들이 천장에 매달린 두꺼운 로프를 타고 오르는 사진을 보여주면서) 레슬링 선수들은 이런 로프를 이용해서 당기는 힘을 키운다고 합니다. 이런 것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가느다란 실 같은 줄이 스위치의 역할을 하는 형광등을 가리키면서) 바로 줄 달린 형광등! 그동안 이런 형광등을 못 켜서 일찍 잠자리에 드는 바람에 자식 한 12명씩 낳고 하셨을 텐데, 저도 원래 계획에 없던 놈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고 따라하세요.” <개그콘서트>의 추억의 캐릭터 중 하나인 ‘간꽁치 트레이너’가 보디빌딩을 하는 방식이다.

 ‘간꽁치 트레이너’는 얼굴이 빨갛게 될 정도로 낑낑대면서 형광등 줄을 잡아당긴다. 드디어 형광등 불을 켜는 데 가까스로 성공한 ‘간꽁치 트레이너’는 관객들에게 이 훈련법을 열심히 따라하면 자기처럼 멋진 몸매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빼빼 마르고 허약해 보이는 사람이 아마추어 레슬링 선수들의 약간 민망해 보이는 운동복을 입고 나와서 형광등 줄 같은 도구를 이용해서 보디빌딩을 하는 것이 ‘간꽁치 트레이너’가 웃음을 만들어내는 방법이다.

운동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지율신경계에 변화 일으켜

‘간꽁치 트레이너’로 나오는 개그맨 신종령은 누구나 쉽게 당길 수 있는 형광등의 줄을 마치 엄청난 근력의 소유자만 당길 수 있는 것처럼 연기한다. 그의 연기가 너무 생생해서 실제로 형광등 줄 당기기 훈련을 반복하면 근육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혹시, ‘간꽁치 트레이너’의 주장처럼 형광등 줄을 열심히 잡아당기면 진짜로 근육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데세티(Decety) 등의 연구자들은, 운동하는 것을 상상하면 실제 운동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자율신경계에 변화가 발생하는지 알아보았다. 2주에 걸쳐서 실시된 실험의 첫날에 연구자들은 모든 참가자에게 러닝머신에서 가볍게 뛰도록 한 후에 심박 수, 폐의 환기량 등을 측정했다. 참가자들은 러닝머신에서 시속 5km, 8km, 12km의 속도로 약 3분 동안 실제로 뛰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 연구자들은 다시 모인 참가자들에게 이전에 뛰었던 속도와 동일한 시속 5km, 8km, 12km의 속도로 러닝머신에서 뛰는 것을 상상하도록 했다. 참가자들의 상상을 돕기 위해, 상상하는 동안에 각각의 속도에 해당하는 러닝머신의 소리를 이어폰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들려주었다. 비교 기준을 설정하기 위해서 참가자들 중에는 뛰는 것을 상상하지 않은 상태에서 러닝머신 소리만 이어폰을 통해서 들었던 사람도 있었다.

참가자들의 자율신경계 반응들을 측정한 결과, 뛰는 것을 상상하기만 해도 우리의 몸은 실제로 뛰고 있을 때와 유사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실제로 몸은 정지된 상태였지만, 상상 속에서 달리기를 하면 우리의 몸은 우리가 실제로 뛰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러닝머신에서 달리기를 하기 전의 심박 수가 분당 84.8회였다면, 시속 12km로 뛰고 있다고 상상했을 때의 심박 수는 분당 1백1.3회로 증가했다. 물론 상상만 했을 때보다는 실제로 뛰었을 때 심박 수가 더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러닝머신 소리만 듣고, 뛰는 것을 상상하지 않았던 참가자의 심박 수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상 운동에서의 심박 수 증가는 상상 운동이 실제 자율신경계의 변화를 발생시켰다는 것을 보여준다. 1분 동안 폐에 공기가 들어오고 나가는 폐 환기량을 분석한 결과도 비슷했다. 뛰는 것을 상상하지 않고 러닝머신의 소리만 들었던 참가자의 경우에는 폐 환기량에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 반면에, 러닝머신 소리를 듣고 뛰는 것을 상상했던 참가자들의 경우에는 상상 속의 러닝머신 속도가 빨라질수록 폐 환기량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데세티 등의 연구는 운동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자율신경계의 변화가 발생하고, 특히 운동하는 양과 비례해 자율신경계의 변화량도 증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이 연구가 ‘간꽁치 트레이너’의 주장처럼 형광등 줄 당기기를 반복하면 근육이 생긴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상의 힘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우리의 몸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거짓말하기 전 시나리오 만들다가 스스로 속아

우리의 뇌는 상상과 실제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 결과 상상이라는, 스스로 만들어낸 거짓말에 우리의 뇌가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어쩌면 ‘간꽁치 트레이너’처럼 자신이 당기고 있는 줄에 엄청나게 무거운 추가 달려 있다고 상상하면서 형광등 줄을 잡아당기면, 우리의 뇌가 힘겨운 일을 하고 있는 근육을 더 키워야겠다고 결정할지도 모른다.

상상이라는 거짓말에 우리의 뇌가 속아 넘어가기도 하지만, 자신이 했던 거짓말에 자기 스스로가 속아 넘어가기도 한다. 스물세 살 되던 해, 제시카 베가는 백혈병 말기암 판정을 받았다. 미국 뉴욕 주의 지역 언론에 따르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그녀에게 남겨진 시간은 1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 꿈이 사랑하는 남자와 작별을 고하기 전에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지역 주민들이 나서서 결혼식을 추진해준 것이다. 주민들은 결혼식에 필요한 드레스, 예물, 음식을 장만해주었고, 결혼식에 하객으로 참석해서 축의금도 전달했다.

하지만 기적은 거기까지였다.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다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었다. 심지어 남편까지도 베가의 거짓말에 속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가 치료를 받았다던 병원에도 같은 이름의 환자는 없었다. 남편은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주민들은 그를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거짓말을 진짜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거짓말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거짓말로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는 거짓말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마음속에 떠올려서 시뮬레이션을 해보아야 한다. 거짓말 속의 사건과 이야기들이 그럴듯하게 연결되는지를 상상을 통해 점검하는 것이다. 그래야 부족한 점을 메우고 좀 더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시나리오를 자주 상상하면 할수록 시나리오 속의 사건들이 더욱 그럴듯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시뮬레이션 휴리스틱(simulation heuristic)’이라고 하는데, 시뮬레이션을 자주할수록 시나리오의 내용이 더 그럴듯해 보이고, 그 결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커지게 된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듯이, 작고 엉성했던 거짓말을 그냥 놓아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거짓말은 점점 더 커지고 정교해져서 결국에는 자기가 만들어낸 거짓말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내 마음도 몰라주는 당신, 이유는 내 행동에 있다>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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