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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 ‘호텔 전쟁’에 여인들이 나섰다

경영 능력 인정받아 그룹 내 역량 확대하려는 듯…‘반얀트리’ 인수전이 기폭제 역할

노진섭 기자 ㅣ no@sisapress.com | 승인 2012.06.25(Mon) 00: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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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왼쪽부터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대표, 정유경 신세계 부사장

호텔 사업을 두고 재벌가 여인들 사이에 신경전이 치열하다. 삼성가의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한진그룹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대표가 서울 사대문 내에서 삼파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신세계그룹과 현대·기아차그룹 여인들도 호텔 사업과 무관하지 않다. 내로라하는 국내 재벌가 여인네들은 호텔 사업에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아 유통 사업으로 역량을 확대하려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재벌가의 호텔 전쟁은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이하 반얀트리) 인수전이 기폭제가 되었다. 반얀트리는 서울 중구 장충동에 있는 옛 타워호텔을 부동산 개발업체 어반오아시스가 2007년 인수해 새로 단장한 6성급 호텔이다. 어반오아시스는 싱가포르 고급 호텔 체인 반얀트리와 20년 운영 계약을 맺고 2010년 6월 반얀트리서울을 열었다. 회원들 위주로 운영되는 최고급 호텔이다. 한 계좌당 1억3천만원에 달하는 개인 회원권 총 3천3백 계좌 중 47%만 분양되어 경영 압박을 받아오다 지난해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주판알을 굴렸다. 인수하면 신라호텔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영업이나 마케팅에 시너지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사장은 최종적으로 인수 의향서를 내지 않았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회원제로만 운용하는 조건이 남아 있는 점이 VIP 고객을 유치하려는 이사장의 호텔 사업 구상과 맞지 않아 인수를 고려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반얀트리는 현대그룹 품에 안겼다. 현정은 회장은 반얀트리를 최고급 가족형 호텔로 키우고자 한다. 신라호텔 옆에 현대그룹의 호텔이 있는 것은 이부진 사장 입장에서는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그래서일까? 이사장은 신라호텔 건물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4~5년마다 부분적으로 보수 작업을 해왔지만, 이번은 공사 규모의 차원이 다르다. 실내 인테리어는 물론 객실 크기까지 손을 댄다. 층별로 공사를 진행할 수 있지만 아예 영업을 중단하고 공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내년에 6개월가량 호텔 문을 닫으면서까지 대형 공사를 벌이는 만큼 국내 최고급 호텔로 거듭나기로 작심한 듯하다. 

이부진 사장은 현대그룹 계동 사옥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옛 대성산업 터에 호텔을 건립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다. 반얀트리의 경우와 반대라고 볼 수도 있어 현정은 회장으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 있다. 이부진 사장은 동시에 비즈니스 호텔 사업도 시작했다. 신라 스테이(stay)라는 비즈니스 호텔을 내년에 최소한 2~3곳 확정 지을 계획이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서울 강남 영동의 KT 지사 부지와 동탄 신도시 부지 두 곳을 계약했다. 신라호텔이 직접 호텔을 짓는 것은 아니다. 건물주는 따로 있고, 신라호텔은 위탁 경영을 하는 형태이다. 2014년부터 호텔을 운영하면서 그 수를 점차 늘려갈 것이다”라고 밝혔다.

   
왼쪽부터 조선호텔(신세계 ⓒ 시사저널 유장훈), 신라호텔(삼성 ⓒ 시사저널 유장훈), 하얏트리젠시인천(한진 ⓒ 대한항공), 반얀트리(현대 ⓒ 대한항공).

현정은 회장이 반얀트리에 공들인 까닭은

삼성이 포기한 반얀트리를 현대그룹은 1천6백억원에 사들였다. 일각에서는 너무 비싼 가격이라고 말한다. 반얀트리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타워호텔에서 반얀트리로 재탄생할 당시 가격이 1천억원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반얀트리 인수에 공을 들였다. 업계 관계자는 “무엇보다 서울 한복판에 현대 계열의 호텔이 없는 데다 금강산 호텔 사업이 장기간 중단된 점 때문에 현회장은 자존심이 상한 상태이다. 마침 신라호텔 코앞에 고급 호텔이 매물로 나오니 현회장이 적극 달려든 것이다”라고 전했다. 현대그룹 관계자도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현회장이 조문을 위해 방북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 당시 입찰 연기를 요청할 정도로 반얀트리 인수에 신경을 썼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숙제가 있다. 회원권 분양을 어떻게 할 것인가와 호텔 경영 주체를 정하는 일이다. 회원권은 현대 계열사가 법인 명의로 자체 소화하는 방법이 있다. 경영 주체로는 업계의 예상과 달리 현대백화점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금강산 호텔 사업이 중단된 지 오래고, 롯데호텔 출신 장경작 사장이 있다는 점을 들어 현대아산이 반얀트리의 경영 주체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현대아산은 개성공단, 4대강, 포승산업단지, 도시형 오피스텔 등 건설 사업을 벌이고 있다. 오히려 현대호텔을 운영했던 현대백화점이 반얀트리 경영을 맡을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2008년 삼성생명으로부터 사들인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갤러리, 공연장, 한옥 호텔 등을 포함한 문화복합단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미국 대사관 직원 숙소로 쓰였던 이곳은 주변에 경복궁, 창덕궁, 인사동, 북촌 등이 있어 외국 관광객의 왕래가 많은 곳이다. 제주 칼호텔, 서귀포 칼호텔, 하얏트리젠시인천, 하와이 와이키키호텔, 로스앤젤레스 윌셔그랜드호텔 등을 담당하는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대표(대한항공 전무 겸직)는 한옥 호텔에 관심을 쏟았다. 그런데 왕복 2차선을 사이에 두고 풍문여고 등 학교가 있는 것이 문제였다. 서울 중부교육청은 학교보건법을 들어 학교 인근에 숙박 시설을 건립하는 것을 반대했다. 고등법원까지 가는 행정소송에서 대한항공은 패했고, 현재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조대표는 해외 호텔 사업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올해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15층짜리 윌셔그랜드호텔을 헐고 2017년까지 70층짜리 건물을 올릴 계획이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본래 사무실 건물과 호텔 건물을 따로 지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무용보다 호텔 사업이 이롭다는 판단에 따라 호텔 한 개만 세우기로 했다. 대부분 호텔 객실로 이용하고 일부는 사무실로 사용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예산 확보가 어려워 건물 설립을 두 개에서 한 개로 줄인 것으로 오해하는데, 사실은 건물 높이가 높아지면서 소요되는 예산은 10억 달러로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은 인천국제공항 인근에 하얏트리젠시호텔도 운영하고 있다. 최근 그 옆에 2014년 완공을 목표로 같은 규모의 12층짜리 호텔을 짓고 있다.

이들 외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딸들도 호텔 사업과 무관하지 않다. 장녀 정성이씨와 막내딸 정윤이씨가 해비치호텔앤리조트 전무로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전무 직함을 달고 있지만, 경영에 직접 관여하고 있지는 않다. 호텔 사업을 확대할 계획도 없다”라고 말했다.

호텔 사업 발판으로 유통 사업 확대가 목표

재계 여인들이 호텔 사업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면세점과 소매점 등 바로바로 돈이 되는 유통 사업에 탄력을 받기 위해서다. 특히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은 내수 시장을 벗어나 외국 시장으로까지 유통 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신라호텔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마카오 쇼핑 단지에 화장품 매장(스위트메이)을 열었다. 국내 화장품업체 대다수가 입주했는데, 반응이 좋아 올 하반기 그 지역에 2호점을 낸다. 면세점 사업의 중심축도 해외로 옮기고 있다. 홍콩 첵랍콥 공항과 미국 로스앤젤레스공항의 면세점 입찰에도 뛰어들었다. 앞으로 면세점·소매점 등 유통 사업을 아시아·미국 등 환태평양 지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신세계그룹의 정유경 부사장도 호텔 사업에 이어 명품 유통 사업에 뛰어들었다. 정부사장은 1996년 조선호텔 마케팅 담당 상무보로 입사해서 12년 동안 호텔에서 잔뼈가 굵은 여성 호텔경영인이다. 그래픽디자인 전공을 살려 객실, 인테리어 개선 작업을 진두지휘했다. 호텔 경력을 기반으로 2009년부터는 백화점을 담당하며 경영의 폭을 넓히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정부사장이 요즘 명품 매장에 신경을 쓰고 있다. 비즈니스 호텔 사업은 검토 중에 있다. 이를 위해 명동 밀리오레를 인수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지난해 제빵 사업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재벌가 여인들은 현재 호텔 사업으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 다른 사업의 성장이 지지부진하고 기업의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향후 수요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호텔 사업은 경영 능력을 입증할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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