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덧나는 중국 ‘한 자녀 정책’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2.07.02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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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아이 가진 임신부 강제 낙태 사건 실상 알려져 충격 / 벌금제는 서민에게 큰 고통…부자들에겐 통제 수단 못 돼

ⓒ AP 연합

지난 6월2일 새벽 중국 내륙 산시(陝西) 성 안캉(安康) 시 쩡자(曾家) 진의 한 마을. 임신부 펑젠메이(馮建梅·23) 씨가 사는 집에 공무원 10여 명이 들이닥쳤다. 공무원들은 눈에 확 띌 정도로 몸이 무거운 펑 씨의 머리에 옷을 뒤집어씌운 뒤 ‘계획생육(計劃生育)’ 병원으로 끌고 갔다. 서슬 퍼런 공무원의 협박과 강요에 펑 씨는 어쩔 수 없이 수술대에 누워야 했다. 이미 7개월 반이 된 태아는 의료진에 의해 강제로 꺼내어져 사산되었다. 출산을 불과 두 달여 앞두고 당한 만행이었다.

뒤늦게 비보를 접한 남편 덩지위안(鄧吉元·29) 씨는 격노했다. 그는 당시 돈을 벌기 위해 네이멍구(內蒙古)에 나가 있었다. 덩씨는 외지로 떠나기 전 펑 씨의 친정 가족에게 출산 허가 서류 수속을 부탁해놓았었다. 덩 씨와 가족들은 안캉 시 정부를 찾아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소용없었다. 이에 6월11일 숨이 끊어진 핏덩어리 태아와 넋을 놓고 누워 있는 펑 씨의 사진과 사연을 인터넷에 올렸다. 펑 씨 부부의 딱한 사정은 중국인들을 분노케 했다. 들끓어오르는 민심에 놀란 지방 정부는 안캉 시 부시장을 보내 입원 중인 펑 씨를 위로하며 사과했다.

시간의 편린 속으로 사라질 듯했던 이 사건은 2주일여가 지난 뒤 다시 주목을 받았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微博)를 통해 퍼진 사진 때문이었다. 6월24일 펑 씨가 퇴원하려 하자 정체를 알 수 없는 40여 명이 ‘매국노를 때려잡자’ ‘쩡자 진에서 쫓아내자’ 등의 현수막을 들고 몰려들어 길을 막았다. 이들은 펑 씨 부부가 일본 매체의 취재에 응해 매국 행위를 했고, 마을의 체면을 깎았다며 비난했다. 덩 씨는 웨이보에 “우리가 무슨 나라를 팔아먹었나.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라고 호소했다.

펑젠메이 부부가 당한 고통과 비극은 지난 32년간 중국에서 다반사처럼 벌어져온 사건 가운데 하나이다. 그 근원은 중국 정부의 ‘한 가정 한 자녀(獨生子女)’ 정책이었다. 1980년 9월 중국공산당은 소수 민족과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중국의 모든 가정에서 자녀를 한 명밖에 낳지 못하게 하는 산아 제한 정책을 공식 실시했다. 정책 목표는 선명했다. 농업 생산력이 감당하기 힘들 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억제해보자는 것이었다.

자료: 중국 국가통계국

농촌 지역에 심각한 ‘남초’ 현상 벌어져

중국은 땅 넓고 인구 많고 물산이 풍부한 나라이다. 기원전 221년 춘추 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처음 전국적인 조사를 할 당시 인구는 2천만명이었다. 17~18세기 청나라 전성기 때 인구 수는 1억~2억명을 훌쩍 넘어섰다. 1912년 신해혁명 직후 4억4천2백만명에 달하더니, 1949년 사회주의 정권 수립 당시에는 5억4천100만명을 기록했다. 1950~60년대 마오쩌둥이 주창한 ‘사람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그릇된 다산 장려 정책에 따라 중국 인구는 급증했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한 자녀 정책이라는 칼을 사정없이 휘둘렀다.

강력한 산아 제한 정책은 성공적이었다. 1970년 5.5명에 달했던 출산율은 2010년 1.54명으로 감소했다. 연평균 인구 증가율은 1990년대 1.07%, 2000년대 0.57%로 꾸준히 낮아졌다. 지난 2010년 제6차 인구 통계조사 결과 중국 인구 수는 2000년 12.7억명에서 2010년 13.4억명으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중국 정부는 한 자녀 정책이 약 4억명의 인구 증가를 예방함으로써 지금의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인구 증가가 억제되면서 식량·식수난이 완화되고 환경 오염도 줄어드는 등 국가·사회적 비용 부담이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의 부작용은 만만치 않았다. 먼저 인민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강제로 빼앗았다.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한 농촌 지역에서는 딸을 임신하면 낙태하는 경우가 많아, 여아 100명당 남아 1백19명에 이르는 심각한 남초(男招) 현상을 유발했다. 둘째를 출산할 경우 연간 수입의 6~7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고 무상교육·의료 혜택 등을 박탈했다. 이런 제재는 부유층에게는 별다른 부담이 되지 않지만 서민에게는 큰 고통이 되어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했다. 둘째를 임신한 여성에게 중절 수술을 하도록 해서 인권 침해를 야기했다.

펑젠메이 씨도 사정은 다를 바 없었다. 펑 씨가 둘째를 임신한 뒤 쩡자 진이 속한 전핑(鎭坪) 현 계획생육국 관리들은 수시로 찾아와 “벌금 4만 위안(약 7백30만원)을 내라”라고 협박했다. 펑 씨 부부에게는 이미 다섯 살 난 딸이 있었다. 공무원들은 펑 씨 부부가 정부 규정을 어겼기에 “단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다”라며 벌금을 요구했다. 덩지위안 씨가 외지에 나가 일하며 돈을 모았으나 가난한 농민에게는 너무나 큰 금액이었다. 이에 반해 부자들에게 이런 벌금은 껌값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둘째 아이 낳기가 부의 상징처럼 되어버렸다. 개혁·개방 이후 막대한 재산을 축적한 부호들에게 벌금제는 더는 통제 수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둘째 혹은 셋째를 낳아 자신의 경제적 부를 과시한다. 난징(南京) 대학의 한 교수는 “과거 빈부 격차가 작을 때는 벌금제가 다산을 억제하는 효과적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계층 간의 위화감을 키우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둘째 아이 낳기는 부자들에게 ‘부의 상징’

실제 중국 농민과 빈민 사이에는 벌금을 내지 못해 호적에 오르지 못한 ‘헤이하이즈(黑孩子)’가 무려 1천3백만명이나 된다. 지난해 5월 마젠탕(馬建堂) 중국 국가통계국장은 “제6차 인구 통계조사 결과 무호적자가 약 1천3백만명이었고 그 대다수는 정부의 한 자녀 정책을 어기고 태어난 경우이다”라고 밝혔다. 중국에서 호적이 없으면 학교에 가지 못하고 기초적인 사회보장 혜택도 받기 어렵다. 정상적으로 자라나지 못한 이들은 장기적으로 사회 불안 세력이 될 수 있다.

강압적인 한 자녀 정책은 이미 여러 차례의 집단적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2007년 5월 광시(廣西) 장족 자치구 위린(玉林) 시 보바이(博白) 현에서 일어난 유혈 시위가 대표적이다. 당시에 현지 주민 4만여 명은 현 정부가 두 자녀 이상을 둔 가정에게 2만6천 위안(한화 약 4백75만원)의 벌금과 사회부양비를 부과하고 강제로 집행하자 관공서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다. 주민 연평균 소득은 3천 위안(약 55만원)에 불과한데, 정부가 벌금 납부 기한을 지키지 못한 가정의 재산을 몰수하고 가재 도구마저 빼앗아 가자 민심이 폭발한 것이었다.

한 자녀 정책이 낳는 또 다른 어두운 그림자는 인구 구조의 불균형에 따른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5월 양옌쑤이 칭화(淸華) 대학 교수는 “2015년부터 중국의 노동 인구는 해마다 8백만명씩 감소하는 반면 65세 이상 노령 인구는 연간 8백만명씩 증가한다. 2035년에는 납세자 0.9명이 노인 1명을 부양해야 한다”라고 전망했다. 선진국이 40~100년간 고령화된 데 반해, 중국은 ‘가난한데도 먼저 늙어버리는(未富先老)’ 셈이다. 사회안전망이 턱없이 부족한 중국의 현실에서 사회적 부담이 너무 크다.

노동 생산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발전의 원동력을 상실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세계의 공장이라는 지위를 잃게 되고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게 된다. 물론 하루에 돼지 100만 마리, 계란 3억개를 먹어치우는 13억 중국인들의 출산율을 높이게 놓아둘 수는 없다. 그렇다고 출산을 무작정 제한할 경우 펑 씨와 같은 피해자는 계속해서 나타나게 된다. 중국의 앞날도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天下第一難事)’이라는 중국의 가족 계획 정책, 중국 정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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