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서 오래 살아남는 연극의 4대 요소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2.07.10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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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의 입소문이 공연의 승패 갈라놓아…‘작품의 힘’ 중요하지만 입소문 날 때까지 버틸 ‘체력’도 중요

ⓒ 뮤지컬해븐 제공

대학로는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연극 공간으로 불린다. 좁은 지역에 1백50개가 넘는 작은 극장이 모여 있고 그만큼의 공연이 매일같이 올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연극의 개그화, 황색 연극, 공연장 호객 행위, 하루에 3회 이상 올리는 극장 쇼’ 같은 부정적인 요소도 비판받지만, 대학로라는 연극의 우주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실험이 벌어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대학로의 1백54개 공연장 중 오픈런이라는 이름의 장기 공연을 벌이는 사례가 56편에 달한다는 점이다(소극장협회 조사 자료). <라이어> <옥탑방 고양이> <보잉보잉> <김종욱 찾기> <스페셜 레터> 등이 그런 경우이고, <염쟁이 유씨>나 <빨래> 같은 작품은 사실상 1년 내내 돌아가지만 자체 공연장이 없이 공연장을 바꿔가면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경우이다. 이런 사례까지 더하면 대학로에서 장기 공연 중인 작품이 전체 대학로 공연의 3분의 1 이상인 셈이다.   

대표적인 장기 공연 작품인 <라이어> 시리즈는 제작사인 파파프로덕션에서 대학로 두 팀, 신촌, 강남, 신도림 등 다섯 팀을 동시에 돌리고 있을 정도로 탄탄한 흥행 몰이를 몇 년째 계속하면서 대학로의 절대 강자로 떠올랐다. <김종욱 찾기>의 제작사인 뮤지컬해븐은 이 작품 외에도 장기 공연물인 <메노포즈>를 오는 8월부터 다시 영등포 타임스퀘어 CGV팝아트홀에서 올리고 <쓰릴미>나 <쉬어매드니스> 같은 탄탄한 장기 흥행작을 보유해 공연 제작사 가운데 가장 활발히 창작물을 올리는 제작사로 발돋움했다.

“소극장 장기 공연물 되려면 우선은 3개월 정도 버티는 것이 중요”

ⓒ 뮤지컬해븐 제공
이같은 장기 공연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한국공연예술센터의 황금실씨는 “작은 극장의 공연 승패를 가르는 것은 결국 그 공연을 본 관객들의 입소문이다”라고 말한다. 때문에 소극장 장기 공연물 중에는 초반 3개월 정도를 버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있다. 입소문이 날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극장 대관료와 배우를 포함한 제작 스태프의 인건비도 포함된다. 물론 가장 큰 부분은 대관료이다.

소극장협회의 자료에 따르면 1백50석 규모의 소극장 대관료는 월 1천5백만원 선이다. 여기에 한 작품을 올리는 데 들어가는 평균 제작비를 더하면 한 작품을 한 달간 공연하는 데 들어가는 총 지출액은 5천만원 정도이다. 여기에 월 28회 공연, 평균 유료 객석 점유율 32.8%, 평균 티켓 가격 1만5천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티켓 매출이 2천만원이 조금 넘는다. 즉, 3천만원의 적자가 생긴다는 얘기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서는 유료 객석 점유율을 높이는 수밖에 없다.

‘성공적인 장기 공연 작품’의 경우 하루 두 번씩 공연한다. <라이어>도 하루 두 번씩 공연한다. 이런 작품은 낮 공연의 경우에도 유료 객석 점유율이 50%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낮 공연의 객석 점유율을 높이는 데는 학생들의 ‘단체 관람(약칭 단관)’도 한몫한다. <라이어>의 성공에는 중·고등학생의 문화 체험에 따른 ‘단관’이 큰 역할을 했다. 물론 직장인들의 단관도 많았다. 단관에 유리한 것은 지명도이고, 지명도는 입소문이 좌우하고, 여기에는 장기 공연물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처음 그 맛 그대로 유지하려고 최선 다해야”

대관료와 인건비가 고정비 성격이기에 공연 횟수가 많아지면 수익률이 올라간다. 장기 공연물은 그래서 승산이 있다. 소극장협회의 최윤우 기획실장은 “장기 공연의 가장 큰 이점은 무대 세트나 의상 등 제작비가 절감된다는 것이다. 대관료를 줄이는 게 공연의 수익성을 확보하는 관건이라 대부분 공연장을 장기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 3개월 이상 계속해야 어느 정도 수익성을 확보하기에, 초반에는 적자를 감수하고도 버틴다”라고 전했다. 그는 <점프>의 예를 들었다. “<점프>는 초반에는 빚만 지다가 에딘버러에서 호평받으면서 입소문을 타고 3년이 지나면서 수익 구조가 올라왔다.”

<김종욱 찾기>나 <쉬어매드니스> <메노포즈> 같은 장기 공연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는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장기 공연의 성공 비결로 “음식처럼 처음 그 맛 그대로를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완성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최실장 역시 장기 공연에 성공하는 비결로 ‘작품의 힘’을 들었다. <염쟁이 유씨>나 <라이어>가 성공하는 데 작품의 완성도가 큰 몫을 했다는 얘기이다. 그는 “<염쟁이 유씨>는 장년들이 보아도, 청년들이 봐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룬다. 완성도가 있고, 제작비도 적게 든다. <라이어>는 유쾌하다. 이런 연극은 삐끼 같은 호객 행위도 하지 않는다. <라이어>를 제작한 파파프로덕션은 그렇게 번 돈을 다시 연극에 투자했다. 연극으로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장기 공연물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현실적인 개런티’를 받게 된다. 소극장 연극에서 개런티는 명목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장기 공연물에 출연하는 전업 배우에게는 숨통이 트여진다. 또 다른 무대 진출의 발판이 되기도 한다.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펄펄 날고 있는 배우 이문식과 안내상은 <라이어> 초기 출연진이다.

이런 장기 공연물들도 불황을 뚫기 위해 여러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부작용도 나오고 있다. 뮤지컬해븐의 박용호 대표는 “지난 2년 사이 배우 인건비 중 주·조역 인건비가 적어도 두 배 올랐다. 반면 관객은 3분의 1로 줄었다. 결국 티켓 할인전으로 돌입하면서 유통망이 무너졌다. 제조업처럼 공연에서도 박리다매 원리가 통하기 시작했다. 소셜 네트워크의 할인 판매망을 통해 공연 티켓이 단기 어음처럼 굴러다닌다”라고 비판했다.


ⓒ 시사저널 전영기

1992년 2월, 인천에 사는 권혁준군은 미대에 응시했다 낙방하자 고교 졸업식이 끝난 직후 친구 한 명과 무작정 서울 대학로로 향했다. “재수를 하기도 그렇고 공부가 안 어울리는 것은 확실하고, 그러면 연극을 해볼까. 교회에서 연극도 해봤는데…. 연극의 메카를 가자.” 그래서 내린 결론이 대학로행이었다. 1호선을 타고 서울역에서 4호선을 갈아타고 혜화역에서 내려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서 포스터에 쓰여 있는 극단에 전화를 걸었다. “아무런 사전 지식도 없었고 그것이 제일 빠른 것 같았다. 친구와는 우리 둘이 같이 가면 경쟁이 되니까 서로 다른 극단에 가자고 했다.” 

그는 극단 신화에 들어갔다가 반년 만에 배우극장으로 옮겼다. 포스터 붙이기, 전단지 돌리기, 사무실 청소 같은 일부터 시작했다. 1년 정도 지나 아동극 무대에 처음 섰다. 그러다가 군대에 갔다. 제대하자 누가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석처럼 그의 걸음은 대학로로 향했다. “20대 때는 개런티라는 것이 없었지만 굶지는 않았다. 사무실에서 자기도 하고. 그런데 그것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하면 즐거우니까 했다.”

그가 처음 방 한 칸을 얻은 것은 10년 전인 서른쯤 때였다. 그 무렵부터 그가 <라이어>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03년 3월부터 그는 <라이어>에 참가해 무시무시한 기록을 쌓아갔다. 지금도 계속 <라이어>에 출연 중인 그는 10년간 2천회의 무대에 섰고 <라이어> 1, 2, 3탄을 하면서 14개의 역할 중 여덟 개의 역할을 했다. 여름부터 부산에서 막을 올리는 <라이어>의 연출을 맡고 있기도 하다. <라이어>는 세상 물정과 담을 쌓고 연극만 바라보고 산 그에게 방 한 칸을 얻어주었고, 배우라는 자존감도 안겨주었으며, 세상이 그를 알아보게 만들었다.

“연극하면서 생활이 안 되니까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랬지만 어떻게든 살게 되기는 하더라. 은행 잔고가 없어서 그렇지, 연극하면서 후회해본 적도 없다. 어릴 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는데 하다 보니까 내가 원하던 직업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행복하다. 마누라를 만나서 지난해에 결혼도 하고, 올 초에 예쁜 아이도 태어나고, 전셋집도 마련하고…. 다 <라이어>를 만나서 생긴 일이다.”

그는 “코미디도 정극처럼 절실해야 사람을 웃길 수가 있다. 절박하지 않으면 남을 웃길 수 없다. 관객 중에는 ‘한번 웃겨봐’라는 마음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을 넘어오게 하려면 배우가 절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 한강 아트컴퍼니제공

7월부터 마포아트센터에서 재공연에 들어가는 <염쟁이 유씨>는 여러모로 특이한 작품이다. ‘서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무명의 지방 배우가 청주에서 시작한 공연이 서울로 올라와 성공하고 전국 투어를 다니는 경우는 전무후무할 것이다. 누적 공연 횟수가 1천8백회, 올가을이면 2천회에 달한다. 이 작품은 모노드라마이고 이 작품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주연 배우 유순웅씨는 이 작품 무대에 1천5백회 정도 섰다. 1년 전부터 임형택 배우가 가세하고 있다.

올해 쉰 살인 유씨는 스무 살부터 연기를 시작해 계속 청주 쪽에서 활동했다. <염쟁이 유씨>는 2004년 5월 청주의 한 소극장에서 공연되었는데 입소문이 이어지고 2006년 서울에 진출해 그해 서울연극제에서 인기상을 타면서 전국구 배우가 되었다. 

인기는 돈에 비례하지 않을까. 그는 “초기 몇 년 동안의 인기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손해 보고 공연을 올리는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작품의 장기 공연이 가능했던 이유에 대해 “좋은 작품은 보는 사람이 위로받고 힘을 내게 해준다. 이 작품의 소재가 대중과 공감할 수 있었고 대본도 탄탄하고 재미도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작품은 뚝배기에 끓인 된장 같은 맛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잘생긴 대학로에 된장맛 나는 연극이 없으니까 더 인기인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인기 있는 작품이다 보니 에피소드도 많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 염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염이라는 절차에는 각각의 행위 하나하나에 우리 조상들이 삶에 대해 이런 의미를 부여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요소가 많다. 그래서 염의 순서나 절차를 놓고 옥신각신하는 경우가 많다. 나이 든 관객 중에는 그 절차를 놓고 따지는 관객도 있고, 이것이 연극이 아니라 진짜 염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 연극이 끝나고 스태프에게 내가 어디서 염하는 사람이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전국의 염쟁이들이 다 이 공연을 보러 왔었다. 재벌가의 염을 한다는 이도 왔었고, 성철 스님 염할 때 전국의 내로라하는 염쟁이가 다 모여서 함께 도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는 아들이 대학에 진학한 2년 전 청주에서 괴산으로 이사 갔다.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온 동네에 다 울리는 한적한 동네이다. “내가 서울에서는 흔한 50대 배우 중 하나이고, 청주에서는 3~4명의 50대 배우 중 하나이다. 괴산에서는 유일무이한 50대 배우이다. 잘 뛰고 있는 심장(서울)에 내가 보탠다고 뭐가 달라지나. 여기서는 할 일이 많다.”

그는 <염쟁이 유씨>를 10년 정도 더 하고 싶어 했다. “내가 40대 초반에 이 연극을 시작했다. 극 중 배역이 60대 후반이다. 초연을 하면서 내가 극 중 나이까지 이 연극을 할 수 있으면 정말 경륜 있는 연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10년이 흘렀다. 내 꿈은 60대까지 이 연극을 하면서 무대에 서는 것이다.”

유씨는 <염쟁이 유씨>와 병행해 틈틈이 2인극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대전에 사는 극작가가 대본을 쓰고 대구에 사는 배우가 청주 연고의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그래서 이번에도 서울은 ‘왕따’를 당한다. 초연 무대는 대전과 대구, 청주 세 군데에서 할 예정이다. 서울 공연은 그 다음 순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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