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비용 항공 ‘한·일전’ 코앞에 닥쳤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2.07.1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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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대형 항공사들, 5개 저비용 항공사 설립 예정…일본 저비용 항공사들은 한국 취항 계획

맨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진에어, 티웨이항공, 제주항공, 에어부산.

놀라운 매출 신장세를 보이며 순항하던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이 난기류를 만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대형 항공사들이 성장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올해 다섯 개의 저비용 항공사를 설립해 운항을 시작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일부 노선은 국내 저비용 항공사들과 같은 노선에 취항한다. 특히 일본 저비용 항공사들이 적극적으로 한국 취항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이미 첫 국제선 노선 대상국을 한국으로 정해 운항을 시작한 곳도 있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로서는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운항 거리 짧은 한국-일본 노선은 ‘골드라인’

일본 저비용 항공사가 한반도 상공을 날고 싶어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지리상의 이점이 가장 크다. 저비용 항공은 운항 거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설수록 승객들이 누릴 수 있는 효용이 감소한다. 일반 대형 항공에 비해 좌석이 좁고 제공되는 서비스도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인천공항을 기준으로 볼 때 저비용 항공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경우는 상하이 등 가까운 중국 지역이나 일본을 잇는 노선을 운항할 때이다. 운항 시간이 4시간 이상으로 길어지는 동남아 노선부터는 서비스나 편안함에서 우위를 갖는 대형 항공사를 선택하는 고객이 늘어난다. 이같은 점에서 국제선이면서도 운항 거리가 짧은 한국-일본 노선은 저비용 항공사들에게는 ‘골드라인’으로 여겨진다.

두 번째는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가운데 일본인의 비중이 가장 높다는 점이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외국인 수는 총 8백50만명이다. 그중에 일본인이 3백12만명으로 전체 입국 외국인의 37.1%를 차지한다. 19.1%를 기록한 중국인보다 두 배 가까이 많다. 한류 열풍 등에 따른 관광 목적의 방한이 많다는 점도 일본 저비용 항공사들이 한국을 매력적인 착륙지로 여기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항공 요금에 대한 수요 탄력성은 비즈니스보다 관광 목적일 경우에 크다. 비즈니스 목적일 경우 항공 운임은 기본적으로 회사에서 지불하는 반면 관광은 자비를 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비즈니스 방문객은 이동 중 업무를 보거나 휴식을 취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반면 관광객은 최대한 이동 비용을 아껴 여행 중에 소비하고 싶어 하는 바람이 크다.

올해 일본 저비용 항공사 중 가장 먼저 한국 상공으로 진출한 곳은 피치항공이다. 피치항공은 일본 대형 항공사 ANA가 총 출자액 1백50억 엔 중 38%의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저비용 항공사이다. 지난 3월 간사이와 후쿠오카를 잇는 국내 노선을 개항하며 첫 날갯짓을 시작했다. 개항 후 일본 국내의 반응은 뜨거웠다. 취항한 지 한 달 만에 6만7천여 명을 태우며 83%의 높은 탑승률을 기록했다. 피치 영업팀 강경화 차장은 “별 다른 광고도 없이 입소문과 기사로만 얻은 결과이다. 취항 당시 일본에서의 선전은 가히 폭발적이었다”라고 전했다.

탄력을 받은 피치는 첫 취항을 한 지 두 달 후인 5월 곧바로 국제선 운항을 시작했다. 첫 번째 국제 노선 취항지로 꼽은 곳이 바로 인천공항이다. 인천공항과 일본 주요 공항인 간사이 공항을 잇는 노선을 취항했다. 간사이 공항은 오사카 도심에서 40㎞ 떨어진 국제 공항이다. 피치항공 관계자는 “인천공항과 간사이 공항을 잇는 노선은 아직 잠재적 여행 수요가 많아 국제선에서 가장 중요한 노선이라고 볼 수 있다”라고 전했다.

피치항공 “초저가가 답이다”

피치항공은 인천-간사이를 오가는 국제선 노선을 매일 3편씩 운항하고 있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 중에서는 이스타항공과 제주항공이 인천-간사이 노선을 운항한다. 특히 국내 저비용 항공사 중 맏형 격인 제주항공과 피치항공 간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제주항공은 여유로운 모습이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아직 피치가 운항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무어라 말할 단계는 아니다. 다만 모든 서비스에 요금을 책정하는 방식의 피치와 기본적인 서비스는 제공하는 우리는 수요자층이 다를 수 있다”라고 전했다.

단순히 운임 가격만 놓고 보면 피치항공이 제주항공보다 유리해 보인다. 비성수기에는 5만원, 성수기에는 10만원까지 피치항공 운임이 저렴하다. 그러나 단순히 요금 자체만으로 두 회사를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운영 방식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피치항공의 운임료는 저비용 항공사 중에서도 저렴한 편에 속한다. 영국 초저비용 항공사인 라이언 항공을 벤치마킹했다. 라이언 항공은 승객들에게 제공하는 일체의 서비스를 최소화하며 원가를 절감했다. 심지어 좌석 머리 커버, 무료 잡지를 넣는 주머니, 창문 가리개까지 없앴다. 그 대신 운임을 초저비용으로 낮췄다. 라이언 항공의 마이클 오레리 회장은 화장실 유료화, 입석 도입 등 원가 절감을 위한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또 “라이언에서 항공권을 싸게 못 구하면 바보이다”라고 강조하며 가격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는 것 외의 모든 서비스는 유료로 제공되며 환불은 불가하다.

이같은 라이언 항공을 모티브로 한 피치항공 역시 운임을 초저비용으로 맞추고 최소한의 서비스만 제공하고 있다. 환불은 불가하며 대다수 항공사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수하물 위탁도 따로 요금을 받고 있다. 좌석 지정도 불가능하다. 특정 좌석을 원할 경우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예를 들어 탑승 수속을 할 때 공간이 넓은 출입문 쪽 자리를 요구할 경우에도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피치항공 영업팀 김우걸 이사는 “피치항공은 모든 서비스를 유료화해 원가를 절감했다. 이로써 고객들이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피치항공은 새 항공기를 구입해 운영하는 등 안전성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 일부 저비용 항공사는 중고 항공기를 구입하거나 리스하기도 한다. 피치항공에서 운행 중인 기종은 에어버스 A320이다. 미국교통안전위원회(NTSB) 자료에 따르면 에어버스 A320의 사고율(100만 착륙당 사망 사고 건수)은 0.12이다. 다른 대다수 기종이 0.5~1 사이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당 모델의 안전성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피치항공의 운영 방식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뭇매를 맞기도 했다. 피치항공 영업팀 강경화 차장은 “운항 초기 국내 소비자들이 인터넷상에 올리는 불만 글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무래도 다른 항공사에 비해 간소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환불을 해주지 않는 것이 한국 정서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피치항공의 벤치마킹 대상인 라이언 항공 역시 같은 문제로 비난받은 바 있다. 심지어 휠체어 사용료를 징수했다가 영국장애인위원회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서비스에 대한 논란은 초저비용 항공으로서는 피하기 힘든 부분이다.  

올해 설립된 일본 저비용 항공사 중 가장 먼저 한국 상공에 진출한 피치항공. 왼쪽 아래는 피치항공 승무원들.

제주항공 “한국식이 이긴다”

제주항공의 운영 방식은 피치항공과 차이가 있다. 운임은 피치항공보다 높은 편이지만 별도 비용 없이 좌석 지정이 가능하고 기내식 등 기본적인 서비스도 제공된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우리는 초저비용 항공사와는 달리 다양한 부가 서비스를 무료화하며 한국 정서에 맞는 저비용 항공사로 시장에 안착했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제주항공은 국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저비용 항공사 중 최초로 매출 2천억원을 돌파했고, 취항 첫해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85%의 매출 신장세를 보였다. 이처럼 제주항공이 ‘한국형 저비용 항공사’로서 입지를 굳혀가고 있지만 마냥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피치항공이 운임을 더 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겼기 때문이다. 김우걸 피치항공 영업팀 이사는 “오는 10월 간사이 공항에 저비용 항공사 전용 터미널이 생기면 1회 사용료가 50만원에 달하는 비행기 견인차를 이용하지 않아도 되는 등 여러 면에서 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전했다.

한편 오는 10월에는 일본 ANA와 에어아시아가 합작해 설립하는 에어아시아재팬이 한국 항로로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나리타를 기점으로 삼아 부산, 인천을 잇는 노선에 취항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저비용 항공사 중에서는 에어부산이 부산-나리타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에어부산 홍보팀의 한 관계자는 “부산-나리타 노선은 지난해 대지진 여파가 있었음에도 평균 70~80%의 탑승률을 보이는 인기 노선이다. 최근 NHK와 아사히 신문에서 직접 에어부산의 운영 방식 등에 대해 취재를 했다. 아마도 부산-나리타 노선에 대해 사전 학습을 하기 위해서 온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했다. 에어부산 역시 한국 정서에 맞춰 저비용 항공사답지 않은 고급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따뜻한 음식과 신문을 제공하는 서비스는 국내 저비용 항공사 중에서도 유일하다.

“서로 수요 달라 크게 타격받지는 않을 전망”

일본항공이 출자한 저비용 항공사 제트스타재팬 역시 2013년 한국과 일본을 잇는 노선을 개설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스즈키 미유키 제트스타재팬 사장은 일본에서 열린 한 강연에서 “일본과 한국, 중국, 필리핀을 잇는 국제선을 내년에 개설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노선이나 계획은 잡혀 있지 않지만 나리타 공항과 간사이 공항을 거점으로 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과 한국의 ‘저비용 항공사 대전’은 어느 한 쪽의 승리를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이트레이드증권의 항공 분야 애널리스트 김민지 연구원은 “초저가 전략의 일본 저비용 항공사와 기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며 이미 한국 정서에 맞게 안정적으로 정착한 국내 저비용 항공사는 각각 수요가 다를 것으로 보여 어느 한 쪽이 크게 타격을 받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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