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 라응찬, 이상득에게 정치자금 3억원 건넸다
  • 이철현·엄민우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2.07.1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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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은행 회장들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이상득 전 의원이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으로부터도 3억원을 받았다는 증언이 나왔다. 신상훈 전 신한지주 사장의 측근인 신한은행 한 고위 인사의 입을 통해서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일주일 전에 라응찬 전 회장의 지시를 받고 이 전 의원이 보낸것으로 보이는 인사에게 현금 3억원을 전달했다”라고 밝혔다. <시사저널>은 이 증언과 함께 사건 당사자들에 대한 인터뷰, 검찰 공소장, 변호인 의견서들을 종합해 이 전 의원의 금품 수수 의혹의 진상을 파헤쳤다.

저축은행에서 거액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7월10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이 이상득 전 국회의원에게 불법 정치자금 3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신상훈 전 신한지주 사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신한은행의 한 고위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취임하기 일주일 전인 2008년 2월15일경 라 전 회장의 지시를 받고 이 전 의원이 보낸 것으로 보이는 인사에게 현금 3억원을 건넸다”라고 말했다. 신한은행 비자금의 조성과 집행에 관여한 인물로 알려진 이 인사는 지시 주체, 자금 조성, 전달 방법까지 자세하게 밝혔다.

<시사저널>은 해당 인사를 비롯해 신상훈 전 사장, 박 아무개 신한은행 본부장, 송 아무개 신한은행 부지점장, 이 아무개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킹(PB)센터장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을 잇달아 인터뷰하고, 검찰 공소장과 변호인 의견서를 참고해 당시 현금 3억원의 전달 과정을 재구성했다.

2008년 1월 하순 이백순 당시 신한지주 부사장은 박 아무개 신한은행장 비서실장(현 신한은행 본부장)에게 전화해 “라응찬 회장 지시이니 외부 인사에게 건넬 현금 3억원을 마련하라”라고 지시했다. 박실장은 신한은행의 비자금 통장을 관리하고 있었다. 신한은행은 고 이희건 신한지주 명예회장에게 건넬 경영 자문료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이전 명예회장에게 건네거나 기밀성 업무추진비로 사용하고 있었다.

2008년 초에는 비자금 통장에 잔액이 남아 있지 않았다. 박실장은 신한지주의 재일교포 주주 2인에게 일부 빌리고 신상훈 사장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3억원을 마련하기로 했다. 당시 2천만원 이상 출금하면 금융정보분석원(FIU)에 포착되는 탓에 해당 계좌에서 2천만원 이하 금액으로 쪼개 여러 차례에 걸쳐 출금해야 했다. 이로 인해 1만원짜리 현금으로 3억원을 마련하느라 일주일이나 걸렸다. 박실장은 이부사장에게 ‘현금 3억원이 마련되었다’고 보고했다.

 

2010년 9월14일 라응찬 회장이 당시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에 대해 직무정지 결정을 내린 이사회를 마친 후 본사를 나서고 있다.@시사저널 유장훈

“1만원권으로 007 가방 세 개에 나누어 전달”

이백순 부사장은 “현금 3억원을 2008년 2월18일 오전 6시까지 서울 중구 장충동 2가 남산자유센터 웨딩홀 주차장으로 가져오라”라고 박실장에게 지시했다. 박실장은 1억원씩 나누어 담은 007 가방 3개를 부직포로 싸서 차 트렁크에 실었다. 박본부장은 “당시에는 5만원권이 없었던 탓에 전액 1만원권으로 3억원을 마련해야 했다. 007 가방 하나를 1만원권으로 꽉 채우면 정확히 1억원이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박실장은 송부지점장(당시 신한은행장 비서실 부실장)을 대동하고 현장에 도착했다. 이백순 부사장은 먼저 와서 기다렸다. 이부사장이 전화 통화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고 중형차 한 대가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이부사장이 차에 접근해 운전자와 몇 마디 나눈 뒤 “돈 가방을 옮겨 실어라”라고 지시했다. 박실장이 하나, 송부실장이 두 개씩 돈 가방을 중고차 트렁크에 옮겨 싣자 신원 미상의 운전자는 신라호텔 방향으로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박실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일주일을 앞둔 시점이라 대통령 측근에게 가는 당선 축하금일 것으로 추측했다”라고 말했다.박실장은 그로부터 3년쯤 지난 2010년 10월 현금 3억원이 간 곳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당시 라 전 회장과 신 전 사장 간의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고 있었다. 신한은행이 배임과 횡령 혐의로 신 전 사장을 고소했다. 이에 검찰은 신 전 사장과 이백순 전 행장을 비롯해 신한은행 비자금 조성과 연루된 인사들을 소환해 수사하고 있었다.

횡령 사건 수사 대상에는 현금 3억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검찰은 관계자를 상대로 3억원이 간 곳과 건넨 목적을 추궁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2010년 10월13일 정치권 인맥이 두터운 이 아무개 신한은행 PB센터장이 일본 도쿄로 건너갔다. 당시 박실장과 송부실장은 신한은행 일본지점(SBJ)으로 자리를 옮겨 각각 지점장과 부지점장을 맡고 있었다.

이센터장은 일본 도쿄 술집에서 평소 친분이 두터운 송부지점장을 만나 술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센터장은 송부지점장에게 “현금 3억원에 대해 함구해라. 그 돈은 SD에게 갔다.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넘어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송부지점장은 “SD가 누구냐?”라고 물었다. 이에 이센터장은 “대통령 형 이상득 의원이다”라고 말했다. 박지점장은 “당시 송부지점장이나 나는 일본에서 일하고 있었던 터라 SD가 누구를 지칭하는지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센터장은 이같은 주장을 부인한다. 이센터장은 “당시 일본 도쿄로 송부지점장을 만나러 간 것은 맞다. 하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했던 송부지점장이 신한지주 사태에 연루되면서 곤란한 지경에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격려와 위로 차원에서 찾은 것이지 그자리에서 회유나 협박성 발언은 없었다. 더욱이 SD라는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신한은행 고위 인사는 “당시 이센터장은 회사에 휴가원도 내지 않고 사흘간 무단 결근하며 일본에 서 2박 3일 일정을 보냈다. 회사 차원에서 양해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신 전 사장을 횡령 혐의로 고소하면서 비자금 사용 내역이 드러나자 이센터장은 회사 지시를 받고 송부지점장의 입을 막기 위해 일본에 간 것이다”라고 말다. 이센터장은 “라 전 회장과 신 전 사장 양측과 친분이 있다 보니 두 어른의 화해를 추진했으나 양측으로부터 욕만 얻어먹었다. 회사 앞날을 걱정해 자비로 일본에 간 것이지 누구 편을 들어 협박하거나 회유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센터장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를 둔 덕에 정치권 인사와 인맥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21일 신한은행 본점에서 열린 이희건 신한지주 명예회장 추모식에 정몽준 의원(오른쪽 세 번째) 등과 함께 앉아 있는 이상득 전 의원(오른쪽 네 번째).12-

"SD 등과 부부 동반 모임 가졌다 과시

"신한은행 안팎에서는 “라 전 회장이 정권 실세로 분류되는 인사와 친분이 두텁다”라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신상훈 전 사장은 “라응찬 회장이 재임 당시 고위 임원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얼마 전 이상득 의원,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등과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가졌다’고 과시하더라. 여러 차례 부부 동반으로 모임을 갖는 것으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이름 밝히기를 꺼리는 신한은행 고위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전인 데다가 회사 지시로 센터장이 일본까지가서 현금을 전달한 인사에게 자금이 간 곳을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이상득 전 의원에게 현금 3억원이 가지 않았겠느냐”라고 말했다.

박본부장이나 송부지점장은 당시 검찰에는 ‘현금 3억원은 민감하고 높은 곳에 전달되었다’라고만 진술했다. 이에 ‘검찰 조사에서 돈 가방이 간 곳을 구체적으로 진술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냐’고 추궁하자 박본부장은 “돈 가방이 넘어간 곳을 거론해보았자 사건만 꼬이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지 의문이 들었다”라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고위 인사는 “해당 사건은 라 전 회장 지시로 박실장이 자금을 조성하고 이백순 전 행장이 신원 미상인 제3자에게 전달한 사건이다.

하지만 검찰은 자금 조성과 전달을 지시한 라 전 회장은 기소하지 않고 보고 선상에 있는 자(신상훈)와 전달한 자(이백순)만 처벌하겠다고 나서더라. 이런 상황에서 검찰이 대통령 형이자 정권 실세를 제대로 수사할지의심스러웠다”라고 말했다
.
이백순 전 행장 “돈 건넨 자리에 나는 없었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라 전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7월11일 오후 1시30분 그가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서울 방배동 ㅊ빌라로 찾아갔다. 해당 빌라의 경비원은 “라 전 회장의 우편물은 여전히 이곳으로 오고 있다. 라 전 회장은 한 달에 한두 번 방문하고 지금은 아들 부부가 살고 있다”라고 전했다.

자택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취재진은 비자금 전달 의혹과 관련한 질문지가 담긴 서류 봉투와 기자 명함을 경비원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라 전 회장이나 가족에게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오후 6시경 다시 방문했을 때 경비원은 “라 전 회장의 아들이 명함과 서류 봉투를 건네받고 올라갔다가 다시 나갔다”라고 전했다. 취재진은 7월13일 다시 한번 방문해 같은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라 전 회장으로부터는 7월13일 마감이 끝날 때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이상득 전 의원측에는 문성곤 보좌관을 통해 질의서를 보냈으나 이 전 의원이 구속된 탓인지 답변이 없었다. 문보좌관은 “이 전 의원이 라 전 회장으로부터 3억원을 받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전달 방식이나 시기를 보더라도 가능성이 크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과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 6억원가량을 받은 혐의로 지난 7월10일 구속 수감되었다.

현금 3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이백순 전 신한은행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해당 질문에 대해 답변할 수 없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처지라서 재판 과정에서 관련 사실에 대해 진술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백순 전 행장은 7월13일 서울중앙지법 320호 법정 복도에서 기자와 만나 “현금 3억원을 만들라고 지시하지 않았고, 돈 가방이 건네진 장소에도 간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백순 전 행장과 박본부장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검찰은 두 인사를 포함해 해당 사건 관련자 전원을 소환해 조사한 뒤 이백순 전 행장을 3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했다.

신상훈 전 사장은 “현금 3억원이 건네졌다는 보고를 한참 후에 받았다”라고 말했다. 박 본부장도 “(이희건) 명예회장 경영 자문료는 비서실이 자율적으로 집행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가끔 라회장 지시를 받고 출금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라회장 지시라고 하니까 (현금 3억원에 대해) 신상훈 당시 신한은행장에게는 바로 보고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신 전 사장은 “경영 자문료는 명예회장이 한국에 올 때마다 건네지는 터라 행장인 내가 통제할 수 없고 사후에 보고받는 일이 다반사였다. 현금 3억원 수수 사건도 나중에야 알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신 전 사장이 현금 3억원 전달을 사전에 보고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한다. 행장 비서실장이 당시 행장 명의의 계좌에서 상당액을 인출하면서 행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은행 관행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검찰은 ‘신상훈 사장이 현금 3억원 조성 지시와 전달 과정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이백순 전 행장과 같이 횡령 혐의로 신 전 사장을 기소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상득 전 국회의원이 지난 7월10일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다. 이 전 국회의원은 지금까지 세 곳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번에 추가로 신한지주로부터 3억원을 받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이 전 의원은 모두 네 곳으로부터 정치자금을 제공받았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전 의원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은 정치자금의 경우 금액, 수수 형태, 전달 방법이 비슷하다.

우선 금융기관 세 곳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알려진 자금 액수는 기관별로 3억원 안팎이라고 한다. 이 전 의원은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과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각각 3억원씩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신한은행 고위 관계자는 “라응찬 전 신한지주 회장이 SD(이상득 전 의원)에게 건넨 것으로 추정되는 정치자금 금액도 3억원이다. SD에게 건네는 인사성 정치자금의 공정 가액이 3억원이 아니냐 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하다”라고 말했다
.
라응찬 전 회장이 이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 3억원을 건넨 것이 맞다면, 이 전 의원은 3개 금융기관으로부터 각각 1만원권으로 바꾼 현금 3억원을 가방에 담아 차량 트렁크에 싣는 방식으로 수수했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임석 회장으로부터 3억원가량을 받을 때 동석한 정두언 의원이 그 돈을 자신의 차량 트렁크에 실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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