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숙해져버린 우리 아이들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할까
  • 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
  • 승인 2012.07.16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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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이유

ⓒ honeypapa@naver.com

학교도 가지 않고 돈도 벌지 않고, 죽을 때까지 부모에게 생활비를 받아 사는 어른들을 보고 흔히 ‘캥거루족’이라고 한다. 그러나 더 심란한 것은 이제는 어린아이들까지 그 대열에 합류하겠다고 선언한다는 점이다.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점점 똑똑해진(?) 아이들 중에는 마치 자기들이 채권자인 것처럼 부모를 포함한 어른들의 의무만 강조하는 경우가 많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부동산을 통해, 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돈을 땀 흘리지 않고 벌었고, 그 덕에 부모가 집도 사고, 생활도 풍족하게 한다는 것을 잘 아는 아이들은 이제 더는 순수하지 않다.  부모가 돈에 대해 잔소리라도 할라치면 그게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 돈이지, 당신 돈이냐고 주장하기도 한다. 많은 여성이 돈 많은 집안의 며느리가 되어 ‘○○동 며느리룩’을 즐기며 우아하게 살다가, 이른바 시부모 장학금으로 영어 유치원에서부터 유학 자금까지 보내는 게 꿈이지만, 결국 그렇게 키운 아이들의 비뚤어진 노동관이 부메랑이 되어 부모를 우습게 아는 것이다. 독립적으로 살면서 땀 흘려 고단하게 일하는 어른들을 보지 않았기 때문에, 열심히 산다는 것에 대한 개념이 없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이렇게 어려서는 별 문제 없이 풍족하게 지내는 듯했던 아이들이 중학교를 가고 성적이 나올 때쯤 문제는 심각하게 불거진다. 조부모들은 자신의 의무도 아닌 손주들에게 아주 많은 돈을 썼으니, 그에 부응해 공부를 잘해야 하지 않느냐고 아이들과 그 부모에게 압력을 가한다. 아이들의 성적은 조부모들에게 검사받는 성적표가 된다. 이쯤 되면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공부하는 것이 마치 부모들을 위해 뭔가를 베푸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대개 자수성가해 큰 부자가 된 조부모들은 예쁜 손주들에게 아낌없이 무언가를 사주므로, 상대적으로 능력 없는 부모들은 때론 아이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한다. 아이들은 조부모 앞에 꼼짝도 하지 못하는 부모들의 약점을 잡아 공부로 부모들과 거래를 한다.

또 부모들이 자신들의 체면 때문에 자녀들이 공부 잘하는 것을 바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공부하는 대신, 전자 기기를 사 달라, 외국으로 놀러가게 해달라 하는 식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돈 개념이 어른들보다는 단순한 아이들은 부모나 조부모의 재산으로 자신들이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 수 있다고 편하게 짐작한다. 그러니 공부하라는 부모가 우습고 귀찮은 것이다. 조부모와 부모가 기대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아 매우 불안해 성적이 나올 때쯤 되면 겁이 나서, 지레 폭력적으로 부모에게 대드는 아이도 많다. 이래저래 점점 더 공부에 흥미를 잃고 결국 학교를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이다.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등 빈곤 국가의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너무나 좋아한다. 공책이 없어도 땅바닥에 계산을 하고, 학생 수가 많아 칠판 글씨가 보이지 않아도 불평이 없다. 지붕이 없어서 비 맞고 바람 불어도 그저 학교에만 갈 수 있다면 행복하다. 끼니를 제대로 못 먹어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다녀도, 몇 시간을 걸어 학교를 가도, 돌아와서는 힘든 노동을 해도, 아이들의 얼굴은 해맑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불과 몇십 년 전까지 그랬다. 학교에 가고 싶어도 집안이 어려워 돈 버느라고 중퇴해야 했던 한을 아직까지 안고 사는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선진국 아이들 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학교에 다니기 싫다는 아이가 많다. 다만 서양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공부하기 싫어하면 “네 인생이니 네 마음대로 해라”라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고, 한국에서는 아이들에게 애원을 해가며 억지로라도 학교에 보내려 한다는 것이 차이라면 차이이다.

다른 집과 비교하고 눈치 보는 부모들도 문제

못사는 국가에서 아이들은 하나의 노동력으로 간주된다. 선진국에서는 이를 두고 아동 착취라고 하지만, 후진국에서는 꽃제비를 하든, 구걸을 하든, 농사를 짓든, 아이들이 일을 해야 생계가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잘사는 국가의 아이들은 대개 자신이 일을 하고 싶어도 아예 할 수가 없어 오히려 답답하다.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라는 부모와 미성년자의 고용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는 사업장으로 가득 찬 사회에서, 성인이 되기 전의 아이들 중에 공부에 흥미가 없어 일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일하는 것까지 불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벌써 중학생 때쯤에 어른들보다 더 영악하고, 영양 상태까지 좋아서 어른들보다 훨씬 건장하고 체력이 좋다. 어쩌면 그 넘치는 혈기를 일에 풀지 못해 성관계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노골적으로 이성 관계에 탐닉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힘이 남아도는 아이들에게, 하고 싶지도 않는 공부를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 하는 의문이 솔직히 든다.

다 떠나서, 아이들을 공부시킨다고 부모의 노후가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조부모 세대가 남는 돈을 들여 손주 공부시키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고, 앞날이 불확실한 젊은 부모들까지 굳이 자식 교육과 뒷바라지에 지나치게 투자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적지 않은 젊은이들이 아예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대다수 어머니가 주장하는 것처럼, 가진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마음이 부모 마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의식 속에까지 깊이 들어가 보면, 그와 같은 부모의 맹목적 희생이 반드시 아름답고 순수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예컨대 아버지들은 가능한 한 자식에게 돈을 덜 쓰려고 하고, 어머니들은 과외부터 시작해 결혼 비용까지 더 많이 쓰려 한다. 이는 자신들의 인생이 텅 비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자식들의 외형과 스펙에 더 목숨 거는 것은 아닌지. 또 여성들의 수명이 남성들보다 10년 정도 더 길기 때문에, 남편이 죽은 후, 자신의 노후를 자녀들에게 의탁하고 싶은 계산 때문은 혹시 아닌 것인지(물론, 요즘 아이들이 혼자 남은 어머니를 얼마나 잘 모시고 살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지만).

우리의 교육에 대해 워낙 말들이 많아, 아예 근본부터 다시 생각해본다. 도대체 왜 우리가 자녀들을 그렇게 공부시키고 싶어 하는 것인가. 혹시 ‘남들은 다 이렇게 하는데…’라는 식으로 비교하고 눈치 보는 것을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별난 현상 가운데 하나인 이른바 엄친아·엄친딸 때문에 자식과 부모 모두 불안하고 불행한 것은 아닌지. 유학 갔다 오고, 석·박사 다 따 와도 한 달에 수십만 원도 제대로 벌지 못하는 고학력 실업자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게 된다. 어쩌면 남 따라 하느라 정신없는 부모를 못 견뎌 학교를 포기하겠다는 아이들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닌지. 내 아이, 내 손주를 끔찍이 사랑한다는 미명으로 사실은 자녀들을 폐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른들이 왜 돈을 벌고 쓰는지 모르는 채 습관적으로 살고 있는 것처럼, 아이들도 공부해야 할 이유 없이 하는 척만 하고 자신과 부모를 속이고 있다면 불행한 일이 아닐까. 그런 와중에 과연 어떤 꿈을 자유롭게 꿀 수 있겠는가.

많은 사람이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로 양극화, 낮은 고용률, 빈곤층의 증가, 정의롭지 못한 사회 등을 꼽는다. 물론 다 바로잡아야 할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더 못사는 나라보다 우리가 더 불행하고, 지금보다 훨씬 더 못살던 과거보다 오히려 지금 훨씬 더 불행하다면, 이른바 ‘상대적 빈곤감’이나 ‘위화감’의 뿌리인 ‘남과 비교하기’에 대해 반성해보는 작업도 같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어른들의 엄친아·엄친딸 등살에 마지못해 공부하는 아이들, 무엇이 중요한지도 모르고 남 눈치 보느라 호화 혼수에 목숨 거는 젊은 부부와 그 부모들, 한편으로는 배울 만큼 배웠는데도 독립적인 삶에 대한 기본적 자존심조차 포기하고 캥거루족으로 사는 젊은이들을 보면서 무기력한 한국의 미래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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